〈오후 세 시〉 부서진 세계의 틈으로 꿈꾸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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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 부서진 세계의 틈으로 꿈꾸는 시간
  • 이권형
  • 승인 2022.10.27 0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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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15)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의 〈오후 세 시〉(2012년)

생업을 위한 노동을 밤에 하는 관계로 퇴근을 아침에 합니다. 그래서 낮에 약속이 있는 날의 일정은 주로 오후 세 시 이후로 잡아요. 낮이 긴 한여름에나, 요즘처럼 낮이 짧아지는 계절에나, 오후 세 시는, 한창이지만 아주 이른 시간도 아니라서, 반대로 맞춰진 일상의 리듬을 도시가 굴러가는 속도와 맞춰갈 수 있는 일종의 중간 지대가 되어주기도 하는 거죠.

오후 세 시에 잠에서 깨어본 적 있으신가요. 나는 이제 깨어났는데 온 세상이 한창인 기분을 떠올려보세요. 어떻게 이 시간을 마주하는 게 최선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있다 보면 왠지 하루의 끝이 코앞에 와 있는듯한 그런 날이 있지 않았나요.

오후 세시는 태풍의 눈처럼 느긋하지만, 그래서 조급함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밤은 어둡습니다. 해가 뜨고 출근 시간이 되면 부랴부랴 차가 다니고, 퇴근 시간 지하철은 지긋지긋한 만원입니다. 점심시간 조금 지나서, 그 틈에 열리는 잠깐의 ‘오후 세 시’가 꿈처럼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그 시간을 어떻게 마주하시겠어요?

“꿈을 꿨다. 꿈속에서도 이 꿈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찾기 시작했고, 그동안 꿈은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거실을 기어다니면서 카메라를 찾다가 꿈이 끝나버렸다. 결국 카메라도 찾지 못했고, 꿈도 꾸지 못했다.”

밴드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의 음반 [소실] 소개 글엔 이런 문장들이 적혀있습니다. 음반은 시종일관 미칠 것처럼 당연하게 흘러가는 도시의 부서진 틈을 집요하게 바라봅니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나가서 / 이젠 어디로”(<비상구>) 가야 할지 찾아 헤매다가 “서교동 합정동 신사동 압구정동 삼청동 청담동 상수동 이태원동”의 “어제도 왔는데 여기 있었는데”(<476-20>) 사라져버린 풍경을 바라봐야만 하는 황망함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오후 세 시의 도시는 당연히 일하는 데 열심이고, 미칠 듯이 분주하기만 합니다. <오후 세 시>는 느닷없이 주어진, 밖으로 나가야 할지, 눈 감고 꿈을 꿔야 할지 선택해야만 하는 시간을 마주할 때의 설렘과 당혹감 사이를 가로질러 달려갑니다.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꿈도 꾸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마치 그 틈 사이엔 콘크리트처럼 견고한 도시 너머의 파라다이스가 웃으며 기다리고 있기라고 하다는 듯이.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요. 그가 결국 마주할 장소는 어떤 곳일까요. 확실한 사실 하나는, 그곳이 좁고 냄새나는 방 안이건, 이 세상 너머의 파라다이스이건,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이 남긴 음악과 이야기들엔 그곳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이들의 음악을 꾸준히 찾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실은 언제나 너무 적나라해서 균열을 내고 그 너머를 상상해야만 우리는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_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_의 음반 [소실]의 표지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의 음반 [소실]의 표지

 

 

 

 

 

 

 

 

 

 

 

 

 

 

 

 

"난 눈을 뜨네

시침은 오후 세 실 가리켜

오늘도 해는 머리 위에 있네

가물가물해

꿈속에 웃고 있던 네 모습

난 다시 보기 위해 눈을 감네

나는 오후 세 시를 향해

달려 가고 있어

어두운 밤은 싫어

널 볼 수 있는 오후 세 시

난 너를 만나기 위해

달려 가고 있어

내가 깨어날 수 없는 이유

난 눈을 뜨네

시침은 오후 세 실 가리켜

오늘도 해는 머리 위에 있네

가물가물해

꿈속에 웃고 있던 네 모습

난 다시 보기 위해 눈을 감네

나는 오후 세 시를 향해

달려 가고 있어

어두운 밤은 싫어

널 볼 수 있는 오후 세 시

난 너를 만나기 위해

달려 가고 있어

내가 깨어날 수 없는 이유

 

네가 좋아하던 너와 함께 하던

그곳에서 난 서 있어

꿈속에서라도 너를 볼 수 있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난 지금

이 노랠 불러

혹시라도 네가 와서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오후 세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 있어 있어

-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오후 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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