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 아랫목은 따뜻했네, 간석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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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아랫목은 따뜻했네, 간석3동
  • 유광식
  • 승인 2022.12.19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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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 일기]
(94) 간석3동(만월산 남측)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간석자유시장 메인 간판, 2022ⓒ유광식
간석자유시장 메인 간판, 2022ⓒ유광식

 

눈이 내리고 어느덧 연말, 한 해의 시간을 돌아본다. 코로나 이야기가 가물거리지만 안심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회의 상처는 어느 해보다도 쓰라린 것 같다. 온 세계가 평온한 마음의 지도를 그리기보다는 과열과 경쟁,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보면 지구라는 커다란 포탄이 겁 없이 태양을 향해 쏘아진 형국이라고나 할까. 가까워질수록 언제 터질지 모르는 초조와 긴장이 흐르는 시대, 예전보다 좀 더 차갑고 거친 길을 걷는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까? 모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처음 인천이라는 겉옷을 입게 된 간석동을 찾았다. 만월산 남측 산 중턱을 오가며 첫눈 같았지만 매섭게 추웠던 시절을 떠올린다. 

 

눈 온 뒤 청명한 오후에, 2022ⓒ유광식
눈 온 뒤 청명한 오후에, 2022ⓒ유광식
맛깔스러운 간석자유시장 2번 출입구, 2022ⓒ유광식
맛깔스러운 간석자유시장 2번 출입구, 2022ⓒ유광식

 

주안산이라고도 불린 만월산(186.1m)을 보듬고 있는 곳이 간석3동이다. 여느 장소와 다름없이 가난의 형국이 산자락에 드러눕고 지내온 세월로 풍경이 차다. 이제는 장갑 없이 외출 나가기도 쉽지 않다. 요새를 닮은 간석자유시장 안으로 대피 아닌 대피를 한다. 좁은 시장길은 자주 드나드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해 주기도 한다.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니 서툰 드나듦이 금세 표가 난다. 추운 날에는 뭐니 뭐니 해도 떡볶이와 어묵 국물이 발목을 잡는다. 꼬불꼬불 어묵 꼬치까지 빠르게 먹으며 배를 채워본다. 상점 간판에는 전국 곳곳의 지명이 하나씩 있다. 각자 사연을 간판에 걸어두고 열심히 달려 온 느낌이다. 혹시 고향에 다시 돌아가고자 써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뭉클해졌다. 

 

시장 안 어느 상회, 2022ⓒ김주혜
시장 안 어느 상회, 2022ⓒ김주혜
방앗간과 떡집, 2022ⓒ김주혜
방앗간과 떡집, 2022ⓒ김주혜
3층 높이의 팬더빌라, 2022ⓒ유광식
3층 높이의 팬더빌라, 2022ⓒ유광식

 

동네는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았고 빙판길은 위태로워 보였다. 빙판길에 어르신들이 걱정된다. 고갯길 따라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쪽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5개 동의 팬더빌라가 힘겨움을 토닥거려 준다. 요새는 생활형 도시주택(아파트)이 우후죽순처럼 건설되면서 기존 주택들의 조망이 엉망이 되었다. 간석동 향나무(500살 추정)는 사방이 신축 건물로 둘러싸여 태양을 찾던 나침반 노릇을 그만둔 지 오래다. 고드름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날이라 더욱 조심한다.

노인종합문화회관에 들어서니 높은 중정형의 로비가 반겨준다. 카페에서 어르신들이 차 한잔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회관은 규모도 크고 다양한 종류의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별관엔 수영장도 있다. 다음 해 프로그램 신청자를 받고 있었는데, 마치 인천 노인문화복지의 아랫목 같았다. 한편 문화회관 건너편 옛 가천길대학 도서관이었던 인천사회복지회관(2007~)은 최근 좁은 업무공간과 장애인 시설 부족에 직면해 청사 이전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인천사회복지회관, 2022ⓒ유광식
인천사회복지회관, 2022ⓒ유광식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로비에서(개설 프로그램이 많다), 2022ⓒ유광식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로비에서(개설 프로그램이 많다), 2022ⓒ유광식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덕선이네 학교로 유명한 신명여고 앞도 지나고, 정원이 있는 고가의 주택 울타리를 엿보기도 한다. ‘신명’, ‘목화’, ‘약산’, ‘돌말’ 등의 명칭이 자주 눈에 띈다. 서쪽으로 게걸음 치듯 가다 보니 약사사에 다다랐다. 대한불교 화엄종의 총본산이라고 한다.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는 절인데, 세월 타고 많아진 시설과 건물에 놀라며 한 바퀴 돌아본다. 천천히 걷는 마음이지만 겨울철 경사로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위태로운 경사지에서 균형 감각을 지니며 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근처에는 부모님의 집도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늘 건강하고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절 안을 돌았다. 철없던 청년기에는 그저 맞서고 싸워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마음 편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스스로 잘 되는 방향은 주변의 평온함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살 비비며 지내 온 역량을 무시할 수 없듯이 예나 지금이나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절을 나선다.  

 

눈 녹은 골목 사거리, 2022ⓒ유광식
눈 녹은 골목 사거리, 2022ⓒ유광식
만월산 약사사 입구, 2022ⓒ유광식
만월산 약사사 입구, 2022ⓒ유광식

 

다시 간석자유시장 쪽으로 걷는다. 돌말경로당의 ‘돌말’을 곱씹다가 언젠가 ‘돌말맨션’ 반지하의 단체 사무실에 드나들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20년 가까이 지난 일인데, 순간 경로당 바로 맞은편이 그 맨션 건물이었다. (아~ 깜짝이야) 큰 규모를 자랑하던 영보유치원은 터만 남았다. 마을 빵집에 퐁당 빠져 요즘 즐겨 먹는 소금빵도 하나 샀다.

시장에는 저녁 찬거리 사러 나온 분들이 많다. 미용실 앞에서 잉어(빵)를 파는 모습이 이색적인 가운데, 수산물 상점 아저씨는 이 도시의 활어가 되어 생선 친구들을 소개한다. 영하의 매서운 기온이지만 조금은 시끄럽더라도 서로가 다가서며 높이는 온도야말로 뜨겁다. 엄마 손을 잡고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온 아이의 마음이나 저녁상에 내놓을 갈치를 사러 뒤뚱뒤뚱 걸어오신 어르신의 마음이나 모두 한결같다. 추운 겨울날의 오붓한 저녁 그 자체로 말이다.    

 

용천로 생활도로, 2022ⓒ유광식
용천로 생활도로, 2022ⓒ유광식
간석자유시장 내부(작은 요새 같았다), 2022ⓒ김주혜
간석자유시장 내부(작은 요새 같았다), 2022ⓒ김주혜

 

올 한해 다사다난했던 만큼 신년에는 모두에게 보람된 결실이 찾아올 것이다. 지치지 않을 만큼 이웃의 마음을 살피며 희망의 목록을 만들어 보길 바란다. 해피 뉴 이어 인천~!

 

한 겨울 보약 같은 친구, 2022ⓒ유광식
한 겨울 보약 같은 친구, 2022ⓒ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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