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동백의 봄날' - 선홍빛 꽃물결을 이루다
상태바
'겨울은 동백의 봄날' - 선홍빛 꽃물결을 이루다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2.12.22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 겨울여행] (2)
동양에서 가장 큰 동백수목원, 카멜리아 힐(Camellia Hill)
동백나무 꽃동산으로 사랑과 힐링의 숲, 카멜리아 힐.
동백나무 꽃동산으로 사랑과 힐링의 숲, 카멜리아 힐.

 

제주여행 이틀째, 변덕스러운 날씨이다. 이른 아침부터 가느다란 눈발이 휘날린다. 돌담 안 감귤 농장에 다닥다닥 달린 노란 감귤을 보면 이색적인 겨울 정취가 느껴진다.

 
오늘은 동백나무숲을 찾아간다. 한겨울에 아름다운 동백꽃을 볼 수 있다니 마음이 설렌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카멜리아 힐. 우리 말로 동백나무 언덕이다. 6만여 평 부지에 동양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동백나무 수목원이란다. 동백나무로 우거진 울창한 숲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우리나라 관광명소 100선에 꼽힐 정도이다.
 
카멜리아 힐에서의 돌하르방, 동백꽃 목걸이가 인상적이다.
카멜리아 힐에서의 돌하르방, 동백꽃 목걸이가 인상적이다.

동백꽃이 연상되는 목도리를 한 돌하르방과 동백꽃 조형물이 반긴다. 입구부터 예쁜 동백꽃이 만발했다. 꽃이 귀한 추운 한겨울에 이렇게 풍성하게 많은 꽃을 볼 수 있다니! 형형색색 화사한 동백꽃이 천지다.

 
코스 안내 길을 따라 곳곳에 여행자를 맞이하는 동백이 반갑다. 동백하면 빨간 동백꽃만 있는 줄 알았는데 종류가 가지가지이다. 이곳 수목원은 80여 나라, 500여 품종, 6000여 그루 동백이 심어 있다고 한다.
 
울창한 동백나무숲에 흐드러지게 동백꽃이 만발했다.
울창한 동백나무숲에 흐드러지게 동백꽃이 만발했다.
동백나무숲에서 다양한 품종의 동백을 만날 수 있다.
동백나무숲에서 다양한 품종의 동백을 만날 수 있다.

동양에서 가장 큰 동백수목원이라는 명성답게 우리 토종동백부터 애기동백, 유럽동백, 아시아-태평양동백 등 꽃의 크기, 모양, 색깔도 다른 다양한 동백꽃을 만난다. 피는 시기도 늦가을부터 피기 시작해 새봄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필자는 아무래도 우리나라 자생인 애기동백에 마음이 끌린다. 살알짝 눈이 쌓여 더 예쁘다.

 
울창한 숲을 이루며 피어있는 동백꽃을 보니 절로 탄성이 나온다. 화려함을 넘어 돋보이는 기품에 사랑스럽고 정이 간다.
 
아름다운 동백꽃의 모습.
아름다운 동백꽃의 모습.
눈을 맞아 더 예쁜 동백꽃.
눈을 맞아 더 예쁜 동백꽃.

추운 겨울, 잎이 넓은 모든 나무가 깊숙이 꽃눈을 감추고 있을 무렵, 사철 푸른 동백은 잎을 지키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 그러고 보면 동백나무에는 계절만 오고 갈 뿐이다. 겨울은 동백의 봄날인 듯싶다. 남들이 잠자고 있을 때 마술을 부리듯 가장 화려하게 피어난 것이다.

 
얼마나 많은 꽃을 피우려는지 수많은 꽃망울이 숱하게 달려있다. 피고 지고를 수도 없이 반복할 모양이다. 꽃은 어울려 피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동백나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동백나무는 상록수로 차나무과에 속한다. 그래 동백꽃을 산다화(山茶花)라 부른다. 잎겨드랑이와 가지 끝에서 한 송이씩 핀다. 겨울에 핀 동백은 빨간 장미가 연상된다.
 
동백꽃은 늦가을에 꽃망울을 맺혀 겨우내 피다가 가장 예쁠 때 미련 없이 후두둑 통채로 떨어진다. 동백꽃은 떨어지면서 땅 위에 붉은 꽃밭을 만든다. 나무에 달려있을 때와 다른 멋스러움을 연출한다. 마지막까지 시들지 않은 꽃이어서 그러하리라.
 
떨어진 동백꽃잎을 수조에 담아 아름다움을 연출하였다.
떨어진 동백꽃잎을 수조에 담아 아름다움을 연출하였다.

수목원 곳곳에 마련된 수조에 둥둥 뜬 동백꽃이 정말 예쁘다. 동백꽃만이 부릴 수 있는 마술이다. 꺾꽂이 못지않은 꽃장식이 그럴듯하다.

 
예전 제주 어머니들은 동백 꽃잎으로 화전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찹쌀가루 반죽 위에 꽃잎 한 장 한 장을 올려붙이면 예쁜 화전이 되었다. 세찬 겨울에 붉은 화전은 귀하디 귀한 음식이 되었을 것 같다.
 
동백꽃 우려낸 꽃차에 동백꽃 화전! 생각만 해도 겨울철 기품있는 음식이었을 것 같다. 동백 열매도 유용하다. 기름을 짜 식용으로 쓰기도 하지만, 여인네 머릿기름으로도 많이 쓰였다. 동백기름을 바른 여인의 쪽찐머리는 단아한 모습 그대로였다.
 

세상에 있는 모든 동백을 여기서 다 보는 것 같다.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혹시 동백꽃의 친구 동박새인가? 아무리 찾아도 녀석은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기야 참새만큼 작은 새가 촘촘한 숲에서 내 눈에 쉽게 보일 리가! 동박새는 머루, 다래 감귤과 같은 단맛 나는 열매를 먹고 산다. 동백숲에선 동박새 녀석들이 꿀벌을 대신해 수정을 돕는다.

곳곳에 인증샷을 날리기에 좋은 곳이 참 많았다.
곳곳에 인증샷을 날리기에 좋은 곳이 참 많았다.
동백나무 꽃 터널. 
동백나무 꽃 터널. 

수목원을 느긋느긋 걸어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눈이 호강한다. 곳곳에 걸려있는 감성 문구도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느려도 괜찮아요, 자연은 원래 느려요."
 
한기가 느껴질 때쯤 유리온실에 들어가니 참 따뜻하다. 빨간 포인세티아가 붉다 못해 핏빛이다.
 

예쁘게 동백꽃이 피어있는 포인트마다 여행자들은 인증샷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동백꽃 숲속에 있는 사람은 이미 동백꽃이다. 만만찮은 인생살이에 지친 마음에 꽃물 하나 물들이는 듯싶다.

카멜리아 힐의 가을 정원.
가을정원의 아름다운 모습
가을정원의 아름다운 모습

동백꽃 무리가 끝나면서 이어지는 '가을정원'. 그냥 지나치면 서운할 뻔했다. 제주는 아직 겨울이 찾아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은빛 억새가 바람에 물결치고 있다. 한때 한껏 멋을 부렸을 핑크뮬리가 제빛을 잃었지만. 아침에 흩날렸던 눈도 그치고 드러난 파란 하늘은 '가을정원'을 신선의 놀이터로 만들어 놓았다.

 
눈 덮인 한라산, 거기다 푸르고 푸른 바다! 노랗게 익은 탐스러운 감귤에다 황홀한 동백숲에 마음을 빼앗겼다. 강도 얼고 바다도 얼릴 만큼 추운 겨울에 제주에서 봄날 같은 예쁜 숲에 가슴 따뜻한 동백꽃을 만났다.
 
동백나무숲을 나오며 바위에 새겨진 양중해님의 <동백언덕에서> 시를 읽어 본다.
 
동백 언덕에서 / 양중해
 
십 년 뒤에 동백 언덕에 갔더니
동백꽃은 예전대로 붉게 피었더구나
전에 왔던 얼굴 기억해 두었다가
어찌 혼자 왔느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것이 아닌가?
 
그렇고 그렇더라고 했더니
어찌 그럴 수가, 어찌 그럴 수가
슬픈 것은 나인데
동백꽃들끼리 일제히 울음을 터뜨린다
 
십 년 전
내가 동백 언덕을 찿아갔던 사연을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동백꽃들은 이미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더구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