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으니, 힘내세요
상태바
살아 있으니, 힘내세요
  • 이세기
  • 승인 2023.01.06 10:2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23) 호이안으로 보내는 답장
굴밭
굴밭

아랫집에 칠십이 갓 넘은 노씨라는 늦깎이 학생이 살았다. 억척스럽게 유복자를 홀로 키운 노씨는 노인복지관에서 한글을 배웠다. 까막눈을 떼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다. 한글을 떼면 편지를 쓰고 싶었다. 잊히지 않는 마음을 안부로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한글 수업 중 쉬는 시간에 노씨가 선생에게 조용히 다가가 주변 눈치를 살폈다. 평소 줄공책 일기장을 보여주며 틀린 글씨가 있냐는 질문과 다르게 물었다.

혹시, 굴 좋아해요?

선생이 좋아한다고 하자, 물이 많이 나가는 사릿물에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용유도에 가서 굴을 쪼았다고 말을 붙였다. 굴이 제철이라 맛이 달다고 했다. 말이 시원스럽지 않은 것이 눈치를 보니 굴을 팔고 싶은 내색이었다.

다음날 노씨는 배낭 가방에 굴 열 봉지를 넣어 가져왔다. 같이 공부하는 학생에게 팔고자 했지만, 말주변이 없는 터라 가방에서 굴 봉지를 차마 내놓을 수 없었다. 갑자기 굴을 팔려고 하니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노씨는 결국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 봉지도 팔지 못했다.

그나마 눈치를 챈 선생이 두 봉지를 사는 바람에 겨우 헛걸음은 면했다.

노씨는 굴을 쪼는 일뿐만 아니라, 봄에서 가을까지 농사일로 가끔 결석했다. 이유는 장사 탓이었다. 장사라고 해야 번듯한 가게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키운 채소를 길에서 파는 노점 장사였다.

채소밭
채소밭

힘에 부치는 공사판 벽돌 매지 일을 그만두고 먹고살기 위해 짓기 시작한 농사였다. 땅뙈기 한 평 없었던 노씨는 채소 농사를 지어 팔 요량으로 사방을 다니며 농사지을 땅을 물색했다. 겨우 구한 땅이 도심 한가운데 천변 배수지 주변의 공유지였다. 노는 공땅이었다.

공땅에 채소밭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집에서 걸어서 사십여 분을 오가며 채소밭을 만들었다. 땅이라 봐야 그리 크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두렁에 호박, 상추, 콩, 고추,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 푸성귀를 심고 길러서 노상에서 팔았다.

새순이 돋는 봄철은 공땅 주변도 제법 효자 노릇을 했다. 민들레, 쑥, 냉이를 캐 팔았다.

그중에 호박은 쏠쏠했다. 호박순이 나오기 시작하면 호박잎을 팔고 애호박을 키워 팔았다. 얼갈이씨, 상추씨, 무씨, 배추씨 등을 직접 뿌려 재배해서 팔았다.

노점
노점

봄이 오기까지 겨울에는 갯가에 가서 굴을 쪼았다. 백아도에서 태어나 갯가에서 배운 것이 밑천이 되었다. 제 굴밭이 없어 맨손회 조합원이 이용하는 밭에서는 채취가 어렵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공유지에서 굴을 쪼았다. 굴도 성근 굴이 아니고 못나고 씨알이 잔 굴이지만, 이따금 억척인 노씨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 있었다. 생활이 쫓기는 전쟁이었다.

한글 수업을 마치고 노씨는 복지관을 나오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하마터면 빈손으로 집으로 갈뻔했다. 기력이 절로 났다. 막판에 생각지도 않게 용케도 굴 두 봉지를 팔았다. 한 봉지에 이만 원이니 사만 원을 번 셈이었다.

노씨는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여덟 개의 굴 봉지가 담겨 있는 가방을 메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가방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오늘 수업도 만족스러웠다. 받아쓰기를 했는데 쌍받침을 빼고는 틀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동태찌개를 끓였다. 혼자 대충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았지만, 오늘만은 호화식이었다. 냉동 물고기이지만 사르륵 녹아 따뜻하게 먹었던 기억이 좋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밥상에 앉아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오늘은 굴 두 봉지나 파랏써요. 사만원을 버럿어요. 나는 잘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요. 까막눈이 이재 글도 배어 첫사랑인 당신에게 편지를 써요. 열시미 열시미 살께요. 그러니 당신 걱정하지 마라요.

베트남으로 파병되어 돌아오지 않은 남편에게 쓴 편지였다. 노씨는 베트남에 간 남편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었다. 글을 읽고 쓸 줄을 몰라 답장을 못 했다. 1971년 1월 23일, 호이안에서 보낸 편지였다. 곧이어 전사 통보가 날아왔다. 눈물이 마른 것은 석 달이 지난 새벽이었다.

남편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만큼은 내내 스무 살이었다.

가갸도 모르고 살았지만,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는 뿌듯함에 뼈마디가 쑤시는 고된 하루가 눈 녹듯 녹았다.

뭐 하나 제대로 끝을 맺거나 갖춘 적이 없는 미완성인 삶이었다. 노씨는 노지에서 찌그러진 호박, 생기다 만 오이, 벌레 먹은 배추, 씨알이 덜 여문 굴을 마주할 때마다 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늘 하던 대로 호이안에서 온 남편의 편지를 읽듯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살아 있으니, 힘내세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태연 2023-04-07 14:02:12
너무너무 좋은 글입니다. 기자님의 성함을 보고 책이 있나 싶어서 보는데 동명이인이 꽤 있어서 찾기 어렵네요. 혹시 책이 있다면 추천받고 프네요:>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