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알과 손편지
상태바
연어 알과 손편지
  • 최원영
  • 승인 2023.01.09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원영의 책갈피] 제86화

 

안도현 시인이 쓴 《연어》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시인의 또 다른 책인 《연어, 연어 이야기》에 나오는 아랫글을 마치 여러분이 연어의 알이라고 상상하면서 음미해보시면 공감되는 부분이 더욱 많을 겁니다.

“나는 알이다. 아니, 알 속에 웅크리고 있는 또 다른 나다. 남들은 나를 작다고 하겠지만 내 생각에 나는 너무 크다.

나는 수심 40cm 아래 차가운 자갈에 덮여 있다. 어떻게든 자갈 틈에서 빠져나가야 하고, 또 알을 찢어 바깥으로 탈출해야 한다. 그러므로 알을 벗어나는 일은 나를 찢는 일이다. 그래야만 전혀 다른 나로 태어날 수 있다.

알을 찢고 밖으로 나가는 일을 궁리하느라 60일이라는 시간을 소비했다. 머릿속은 두려움과 기쁨으로 뒤엉켜 있다. 나는 두려움을 빨아먹으며 버티고 버텼다. 그건 공포였다. 공포가 날 키워준 셈이다.

알에서 빠져나가는 날, 누군가 내게 알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할 작정이었다.

알이란, ‘두려움을 동그랗게 빚어 만든 말랑말랑한 구슬’이라고.

알이 새근새근 숨 쉰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도무지 ‘나’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알을 깨고 바깥으로 나와야만 생명이 탄생하는 건 아니다. 아직도 그렇게 믿는 바보들이 이 세상엔 있는 것 같다.

나는 안다. 알도 고통을 느끼고, 근심하고, 회의하고, 갈등한다는 것을. 바로 내가 알이었으니까.”

제가 마치 알이라고 상상하며 글을 읽으니까 저 상황이 무척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무엇이 그를 두려움과 기쁨에 젖게 했을까요? 작은 알들이 새근새근 숨 쉬고 있는 게 느껴지나요? 알의 세계도 인간세계에서처럼 고통과 근심과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비로소 알을 지켜주려는, 한발 더 나아가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까지도 드실 겁니다.

우리가 때로 저지르는 거친 행위들은 어쩌면 상대의 입장을 전혀 몰라서 저지르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상대의 입장을 알려고 하는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도 조화롭게 지켜나갈 수 있는 지혜일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2007년 2월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결혼하고 5개월쯤 들어 임신이 됐다.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윗집에서 아이들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파트 생활이 다 그렇지 생각했지만, 그 소리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경비실로 달려가기를 여러 번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윗집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태도는 냉랭했다.

‘이 나이 때 아이들이 뛰지, 어떻게 안 뛰겠어요? 이 정도면 뛰는 것도 아니에요.’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임신 중이라서 신경이 많이 예민하니 양해해 주시면 좋겠어요.’

아주머니는 내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눈물이 나오는 걸 꾹 참고 집에 내려와서는 펑펑 울고 말았다.

그 뒤로도 윗집에서 들리는 가지가지 소음들은 여전했다. 얼마나 절박했는지 층간소음에 대해 법률상담도 받아보고 소리를 녹음해두기도 했다. 끝도 없이 치달은 감정 때문에 종일 울기도 했다.

그러던 중 문득 머리에 떠오른 것이 편지였다. 진심으로 부탁하는 편지를 쓰고, 예의에 어긋날 만한 곳은 없는지 수차례 읽고 다시 쓰고 또 읽고, 다시 쓰고 했다.

고민 끝에 아파트 입구 우편함에 넣었다. 아주머니가 읽고 내 의도와 달리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다음 날 마트에 가려고 나오니 현관문 손잡이에 종이가방이 대롱대롱 매달린 게 있었다. 가방 안에는 아주머니의 편지와 국화차가 들어있었다. 편지에는 꼬마가 어려서 많이 뛴다며 주의시킬 테니 이해해 달라는 말과 함께 국화차를 마시고 마음과 몸이 빨리 진정되기를 바란다는 진심 어린 마음이 담겨있었다.

오해하면 어쩌나 했던 두려움이 풀리면서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그간의 우울함과 고통이 일순간에 씻겨 내려갔다.”

윗집 아주머니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겁니다. 젊은 여자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황을 알게 된 후에는 아랫집 여자에게 무척 미안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찾아와 거칠게 항의하는 대신 손편지를 정성스레 쓰는 태도가 윗집 아주머니로서는 더욱더 미안하게 만들어주었겠지요.

참 아름다운 두 사람입니다. 손편지를 전하는 아랫집 여자나 편지를 받고 나서 국화차를 전한 윗집 여자 모두 무척이나 지혜로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는 순간 감동의 눈물과 기쁨이 선물로 돌아옵니다. 이때 그동안 쌓인 불만과 불평, 불신들은 눈 녹듯 사라지지 않을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