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나의 근원을 찾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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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나의 근원을 찾는 행위”
  • 김경수 기자
  • 승인 2023.01.10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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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 사람들] 최정숙 시각예술 작가
백령도 소재로 ‘별 내리는 섬’ 시리즈 이어가

송도 화실에서 만난 최정숙 작가는 작업용 긴 앞치마를 두른 채 이젤 위 캔버스 앞에서 붓질에 몰두하고 있었다. 화실 벽면은 온통 작품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굳이 인터뷰로 전할 이야깃거리가 없다며 지나는 길에 들러 차 한잔 마시자고 했던 그였다. 막상 찾아가 보니 작가는 온시간을 고스란히 그림 그리는 데 쏟고 있었다.

“작업을 이어가다 이젠 끝났다 싶어서 걸어두고 보면 마음에 안드는 거예요. 다시 작업을 하고 걸어두고 또 다시 작업을 하고, 여전히 마음에 안차면 아예 지워버립니다.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죠. 그리는 시간이 있고 이를 보는 침잠의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최 작가의 그림 방식이다. 그림을 시작한 후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왔음에도 여전히 작업을 임하는 태도가 신중하다. 대학시절부터 그랬다. 수월한 작업을 못견뎌했다. 힘들고 고된 작업이 본인과 맞는다고 느꼈다. “내 스스로에 대해선 가혹할 정도로 엄격했던 것 같습니다.”

 

별 내리는 섬-백령
별 내리는 섬-백령

캔버스에서는 바다에 떠 있는 섬위로 별이 한가득 쏟아진다. 보고 있노라면 심오한 우주가 느껴지기도 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이 한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별 내리는 섬, 백령도’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시작한 연원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문화재단이 ‘평화미술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백령도 연고 작가인 그에게 참가를 권유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백령도에서 두무진을 마주한 순간, ‘턱’하고 숨이 멎었습니다. 망망한 바다를 보며 굳건히 서 있는 바위들이 마치 모진 생애를 묵묵히 살아낸 군상들처럼 보였습니다. 순간 일찍 가신 아버지의 삶이 오버랩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작품이 ‘아버지의 바다’다.

이어 ‘하늬바다’로 넘어간다. 어릴적 할머니와 살던 진촌 동고몰이라는 동네의 골목을 나와 들길을 걷다보면 확 트인 하늬바다에 도달한다. 그 바닷가 바위에엄마의 삶을 담았다고 말한다.

“감람암이라는 바위가 있어요. 지구 내부 마그마가 폭발할 때 생성됐다는 흔적이 남은 지질공원의 바위죠. 그 바위 그림에는 어머니가 지구의 시원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하늬바다를 꽃다홍으로 칠했다. 그 옛날 뭍에서 백령도로 시집오던 새색시(어머니)의 마음과 꿈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하늬바다
하늬바다-어머니가 시집오던 날

그다음엔 백령도 마을 전체를 그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은 헐릴 예정이었고, 병원은 폐건물이 돼 있었다. 집터를 그리고 마당 느티나무, 마을 집과 병원, 들길을 펜화로 그려나갔다.

“그리다보니 60여장이 되더군요. 이를 20m 길이의 롤지에 하나하나 옮겼습니다.” 이 작품을 들고 ‘백령섬 마을-그리움, 그림’이라는 부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평화미술 프로젝트로 3년 건너온 다음, 2년마다 세차례 개인전을 열면서 주제는 한결같이 ‘별내리는 섬’을 내걸었다.

“백령도는 다름 아닌 나의 근원입니다. 바다에서 왔고, 바위에서 왔죠. 별과 우주도 어린시절 잠재된 의식의 표현입니다. 할머니의 집과 맞닥뜨리면서 아버지 삶을 반추하게 됐고, 어린시절 기억과 만나면서 나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병상의 어머니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한동안은 멍한 상태로 지냈다. 송도 작업실로 옮긴 것은 그 직후였다. 작품을 놓아둔 신포동의 개인 창고에서 그림을 하나씩 날라왔다. 그리곤 마중물 작업으로 작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온시간을 그림에 침잠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나에게 있어서는 근원을 찾는 행위입니다. 두무진의 바다를 운명처럼 선택했습니다. 하늬바다는 우주에서 온 나의 본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릴 적 살던 집을 통해 내재된 정체성을 찾아보려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계속 갈 겁니다.”

인터뷰에서는 지역에서 오랜 문화운동을 해온 해반문화 대표라는 부캐(부캐릭터)는 들추지 않았다. 온전히 시각예술 작가로서의 시점에서만 이야기를 나눴다.

 

작업실 모습
작업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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