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부평온천 이야기
겨울철 여행을 떠올린다면 온천여행은 빠질 수 없는 테마 중 하나이다.
뜨끈한 온천이 인천 부평에 있었다는데, 사실일까?
실록에 의하면 세종임금이 인천 부평에서 온천을 찾느라 고심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고,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인천시사’에도 있다.
이야기를 찾아 부평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세종대왕은 어려서부터 한 쪽 다리가 불편하였고, 등에는 부종이 생겨 고통이 심하였으면서도 독서를 좋아하여 주야로 책을 읽었으므로 시력이 극도로 쇠약해 졌다. 세종은 대신들의 권유로 온양온천에 가서 목욕한 후 효험을 보았다.
온천에 관심이 깊었던 세종은 도성 가까운 부평에 온천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기뻐하여 온천 탐색을 명하였다. 그러나 장소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이야기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중엽 부평의 옛 지명 수주에서 우연히 노천 온천이 발견되었다. 피부병에 특효가 있어서 많은 사람이 병을 고치니 소문이 퍼져 나갔다. 그래서 당시 수도인 개경에서 많은 벼슬아치들이 찾아와 온천욕을 했다. 수주의 사또는 그들을 접대하기 위해 각 고을의 대표들을 불렀다.
“고관들에게 잠자리와 좋은 음식을 해 드려야 한다. 그러니 고을마다 돈을 거둬라.”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고을 대표들은 그렇게 대답하고 개경에서 온 고관들을 정성으로 대접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꾸 반복되고 농사일이 바쁜 시기에도 그들이 찾아와 크게 방해가 되었다.
“온천 때문에 못살겠네. 온천이 있는 것이 우리 백성들에게는 행운이 아니라 짐만 될 뿐이야.”
백성들은 중얼거렸다.
그러던 중 몽고 군대가 쳐들어와 모두들 피난을 가게 되었다.
늦게 피난을 떠난 농부 하나가 그 온천을 메워 버렸다.
“에잇, 근심거리니 차라리 없애는 게 낫지.”
전란이 끝나 다시 돌아온 수주 사또는 온천이 없어진 것을 알고 당황하여 명을 내렸다.
“모두 나서라. 어서 온천을 다시 찾아라.”
그러나 온천은 수맥이 영영 묻혀 버려 다시 발견되지 않았다.
조선 세종 때의 부평부사는 백성들을 동원해 전설이 남아 있는 마을 이곳저곳을 파헤쳤다. 조짐이 있는 곳은 열 길 스무 길 파들어 갔다. 그러나 역시 온천은 발견되지 않았다.
온천 탐색에 실패한 노여움으로 부평도호부를 부평현으로 강등시킨 일화는 세종 20년 11월 8일 기록에 있다.
그로부터 2백년이 지나 인조대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부평 땅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평지가 갑자기 열길이나 꺼져 버렸다. 사람들은 이것이 큰 재앙이라 여겨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제사 덕인지 더 이상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구덩이에 흙을 메워 다시 평지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2백 년 전에 묻혀버린 온천에 대해 말했다.
“온천 때문일지도 몰라. 바로 이 자리가 온천일지도 모르는 일이야.”
“이백 년 전에 온천을 찾는다고 여기저기 땅을 파헤쳤기 때문에 이번에 꺼져 내린 것일 게야.”
이때에도 사람들은 전설 속의 옛 사람들처럼 온천이 발견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쉬쉬 하며 온천에 대해 더 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평 땅에 있었다는 온천은 전설과 함께 묻혀 버렸다.
(참고_ 인천광역시 홈페이지, 인천시사)
부평 온천의 존재는 알 수없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평 땅 깊은 어딘가에서 뜨끈한 물이 흐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부평의 온천물에 직접 몸을 담그지는 못하지만, 온천의 효험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으로 스멀스멀 올라와 오늘 하루도 잘 살아가라며 고단한 우리의 삶을 도와주고 있지 않을까.
기대와 설렘 가득한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한 해의 활기찬 시작을 위해 몸과 마음을 곱게 단장하러 온천 여행을 떠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