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미래를 위한 생명의 사과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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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미래를 위한 생명의 사과를 내놓는다
  • 이상하
  • 승인 2023.02.23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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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이상하 / 조각가
인천in이 전문가 칼럼 '문화읽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인천지역 문화지형을 살피고 나아갈 방향을 제안하는 칼럼을 6인의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매주 목요일마다 한편씩 이어갑니다. 필진으로는 전영우 인천생각협동조합 이사장, 연창호 송암미술관 학예연구사, 고동희 부평구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이상하 조각가, 김정화 문학평론가, 한은혜 은하수미술관 대표까지 여섯 분이 참여합니다.   

 

선택 –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 북극곰.  725X905mm 30F  Acrylic on Canvas  2022년
선택 –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 북극곰. 725X905mm 30F Acrylic on Canvas 2022년

지난 스물한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나는 우리의 지금과 다가올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전시의 주제를 ‘선택’으로 하고 그 안에서 멸종 위기에 있는 생명들의 이야기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과 의무를 말하려고 했다. 생명과 환경을 위한 인간의 바른 선택과 공존과 공생을 넘어선 상생의 이야기로, 그 결과가 조각과 회화작업으로 꾸민 전시와 사적인 생각을 엮은 한 권의 책이다.

환경의 위기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에 환경은 인류생존과 직결된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18세기 후반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인류는 지난 시간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을 걷게 됐고, 이후 이루어진 급진적인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는 편리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알고 적응해 살던 환경을 송두리째 바꿔버렸고,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시간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869년 상아(象牙) 당구공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각광(脚光) 받았으나, 이제는 환경 재앙에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고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서~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다 보니 머릿속엔 언제나 작업과 관련한 생각과 고민으로 가득하다. 작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면 대게가 공감할 것이다. 내가 가진 생각과 가치를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는 언제나 숙제다. 작가적 삶의 태도와 작업의 화두는 어떻게 하고, 어떤 재료와 형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또 그것을 매번 지루하지 않고 참신하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해서 생산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작업을 하면서 내가 일관되게 고민하고 찾는 것은 생명(生命)에 대한 것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생명과 순환의 이야기 그것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하나의 큰 생명으로 볼 수 있다.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과 순환, 생태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스스로 존재를 확인하고 잘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과 증거가 된다.

이런 행동과 태도의 확장이 당신과 내가 사는 지금의 시간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이해와 준비를 위한 것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의 모든 이야기는 생명과 존재 이유, 지금의 생태계가 가져올 다음의 시간에 대한 걱정과 대비를 위한 우리의 실천 과제들로 채워지게 된 것 같다. 꽤 오랜 시간 내 작품 속에 등장하게 된 양과 사과를 보자. 이것들은 인간의 시간을 함께해 온 중요한 상징들로, 속죄와 희생 그리고 선택에 대한 의미와 기호들이다.

내 작품 속에 사과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할 수 있다.(바니타스(Vanitas) 정물은 죽음의 불가피성, 속세의 업적이나 쾌락의 덧없음과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주로 다루었다. 바니타스는 보는 사람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도록 타이른다.

후기 르네상스 시기에는 초상화 뒷면에 죽음과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같은 것을 자주 그렸는데, 바니타스는 이런 단순한 그림에서 발전했다. 바니타스는 1550년경에 독자적인 분야로 발전하여, 1620년경에는 매우 인기 있는 장르가 되었다. 바니타스는 1650년경 쇠퇴할 때까지 주로 네덜란드의 연합주인 레이덴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일부 바니타스 그림에는 인물도 묘사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몇 가지 전형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순수 정물화이다. 바니타스 그림의 기본적 요소는 예술과 학문을 상징하는 물건(책·지도·악기),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지갑·보석), 세속적인 쾌락을 상징하는 물건(술잔, 담배 파이프, 트럼프 카드), 죽음이나 덧없음을 상징하는 물건(해골, 시계, 타고 있는 양초, 비누 거품, 꽃) 등이고, 때로는 부활과 영생을 상징하는 물건(옥수수 열매, 담쟁이, 월계수 가지) 등이 포함되기도 한다. 출처 : 다음백과)

선택 –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 넓적부리 도요새  725X905mm 30F  Acrylic on Canvas  2022년
선택 –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 넓적부리 도요새 725X905mm 30F Acrylic on Canvas 2022년

사과는 인간의 모든 시간과 모든 곳에서 등장하며 거의 모든 영역, 특히 종교와 신화에서 매우 중요한 비유와 상징으로 나타난다. 나에게 사과는 선택의 상징으로서의 사과다. 에덴의 사과가 인간에게 원죄의 굴레를 씌웠고, 패리스의 사과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됐고, 세잔은 사과로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다. 내게 사과는 환경과 생태, 기후 재난이 가져올 멸종에 대한 경고이자,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계몽의 사과, 그것이다.

내일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온전히 다음 세대의 시간이기에, 눈앞에 편리와 이익을 좇아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자, 경고의 표현이다. 과거의 바니타스 정물화에 그려진 정물들의 대부분이 죽은 물건들이지만, 꽃이나 과일의 숨은 붙어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죽어가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어쩔 수 없이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내 작품 속에 사과는 아직은 숨이 붙어있고, 선택에 따라서 회생이 가능한 사과다. 나는 사과의 물성을 최소화하고 상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도상적 이미지를 사용한다. 진짜 사과처럼 보이도록 그리게 되면, 보는 이들에게 사과라는 대상만 강하게 다가가기 쉬워 이야기하려는 의도와 상징이 묻히기 쉽다. 상징이나 은유를 생각하기 전에 물체가 보여주는 물성에 먼저 눈이 가고, 생각이 머물기 때문에 그림에서 물성과 감각을 강조하면, 상징성이 약해지게 된다.

어쩌면 내가 하는 작업이 요즘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작업일 수도 있다. 세상은 무거운 주제나 계몽보다는 밝고 가벼운 이미지를 선호하고, 소수와 약자를 향한 시선이나 내일의 걱정보다는 감각적이고 본능에 가까운 행동과 즉각적인 것을 좇고,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채와 예쁘고 말끔한 캐릭터들을 찾는다.

사실 작가로 살면서 주변에 말들과 유혹에 흔들린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테고, 그것들(인기와 돈)의 유혹을 견디며, 내 생각과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세상에 나 같은 사람 하나쯤은 있어도 크게 나쁠 일 없다는 생각과 세상의 입맛에 맞춰 꺾일 수 없는 자존심(?)이 공존하며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다행히 내가 걱정하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그런 세상이 와도 난 여전히 내 자리에서 세상과 우리의 아이들에 대한 또 다른 염려와 그들의 세상이 지금보다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선택을 할 것 인지는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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