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46년이 흐른 강화 선원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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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46년이 흐른 강화 선원사지
  • 허회숙 객원기자
  • 승인 2023.02.1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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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기획]
문화 도시 인천, 선원사 복원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2023년 2월 1일 아침 강화 선원사지를 찾았다. 강화도 동쪽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 아래로 층층으로 펼쳐진 넓은 터가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1977년 사적 제 259호로 지정된 선원사지다.

 

선원사지는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와 지원으로 동국대학교 강화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굴조사가 4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3,500평에 달하는 선원사지는 남한지역에 현존하는 고려시대 사찰 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선원사지 앞에 작은 규모의 선원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에는 연(蓮)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연승(蓮僧)성원(誠願) 김경일 스님이 주지로 계시다.

강화 전등사에 계셨었다는 김경일 스님은 지난 15년간 연꽃축제를 벌여 전국적으로 많은 관광객과 참배객을 불러 모으며 선원사지를 널리 홍보해 온 분이다.

선원사지에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없지만 독립 건물지 21개소와 부속 행랑지 7개소가 확인되어 엄청난 규모였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4개의 층단식으로 되어 있어 아래로부터 올라가면서 동회랑지와 서회랑지가 양옆으로 있고, 종문지를 지나 금당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중앙부의 대형 건물지에는 삼존불을 지탱한 것으로 보이는 불단유구가 높이 솟아 있다.

금당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는 조그만 다리 아래로 물이 흐르는 수로가 있다.

당시의 보상화문(寶相華文)이 새겨진 전돌, 막새기와, ‘오마니반메홈’의 범자(梵字)가 새겨진 기와, 지붕에 얹었던 잡상(雜像)이 출토되었다.

500불상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발견되지는 않았다.

1994년 선원사 주지 성원 스님이 절 동쪽 신동산 기슭 도감마을 지하 5미터에서 차맷돌을 출토하였다.

강화 선원사는 고종 32년(1245)에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였던 최우에 의해 강화도에 창건된 절이다. 몽골의 침략에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의지로 1232년 강화도로 천도한 13년 후였다.

충렬왕 때에는 임시 궁궐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불력(佛力)으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18년에 걸쳐(1251)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였을 때, 이곳에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였다.

선원사에 보관하던 팔만대장경은 조선 건국 후 태조 7년(1398)에 서울 지천사로 옮겼다가 다시 합천 해인사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이후 선원사는 폐사되었는데 폐사의 이유나 그 정확한 위치에 관한 기록이 없다.

송광사와 함께 당시 2대 선찰(禪刹)로 손꼽히던 선원사는 팔만대장경의 판각 성지로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차맷돌과 청자 찻잔 등이 발견됨으로써 선차문화(禪茶文化)의 현장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보 32호인 팔만대장경이 보존되어 있는 합천 해인사 장경판고는 1995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어 2007년 6월에는 고려대장경판과 여러 경판이 한데 묶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1976년에 이루어진 선원사지의 발굴에서 건물 터 축대, 배수시설과 불교관련 유물은 발견되었으나 구체적으로 이곳이 선원사(禪源寺)임을 입증할 자료가 나오지 않아 아직도 이곳이 선원사 터가 아니라 임금이 머물며 법회를 열기도 했던 가궐(假闕)터가 아닌가 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강화군의 향토사학자들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조사팀은 ‘현재의 위치는 선원사 터가 아니며 충렬사 부근이 선원사 터’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조사팀이 조선시대 지도에 나타난 길을 따라 측정한 결과 강화도 남문부터 현재의 선원사까지는 11리(4.4km)이고 충렬사까지는 8리(3.2km)인 것으로 미루어 선원사 터는 충렬사 부근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팔만대장경은 8만 장에 달하는 경판의 서체가 모두 일정하고 오탈자가 거의 없기로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한 글자를 새길 때마다 세 번씩 절을 했다고 한다. 즉, 이 작업을 하면서 절을 무려 1억 5천만 번이나 했다는 이야기다.

조상들이 어떤 마음 가짐으로 팔만대장경을 새겼는가를 떠올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판의 크기는 가로 70cm내외, 세로 24cm내외이고 두께는 2.6cm 내지 4cm이다.

성원(誠願)김경일 스님은 작년(2022) 9월 27일부터 10월 27일까지 한 달간 팔만대장경 이운경로를 따라 선원사에서 해인사까지 도보로 ‘팔만대장경 이운경로 순례’를 하였다.

그는 강화 선원사를 출발하여 용산 지천사 터를 찾은 다음, 여의나루와 한강나루가 있었던 한강을 끼고 내려가 충주 목계나루터에 이르렀다.

수로의 마지막 장소인 낙동강 상류 상주나루터를 방문한 후, 육로로 이운된 팔만대장경길을 따라 구미를 거쳐 문경 봉암사에 도착했다.

충남 고령읍 장경나루 개경포 공원에 있는 팔만대장경 이운 유래기(由來記) 비석과 이운 조각상을 둘러본 스님은 드디어 한 달 만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 장경각에 도착하여 팔만대장경 이운 경로 순례를 끝냈다.

선원사지를 발굴한 지 46년이 흘렀다.

이제는 인천시가 정부 당국을 설득하여 선원사 복원 작업을 서둘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5월이면 인천에도 인쇄박물관이 들어선다고 한다.

목판 활자의 성전(聖典)인 팔만대장경의 성지인 강화 선원사가 하루 빨리 복원되어 옛날부터 인천이 활자문화, 책의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널리 일깨우게 되기를 바란다.

역사문화 유산의 복원으로 인천시민들이 문화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드높이게 되기를 소망하며 선원사지를 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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