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신고와서 편하게 재즈음악 듣는 공간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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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 신고와서 편하게 재즈음악 듣는 공간이었으면”
  • 김경수 기자
  • 승인 2023.02.22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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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공작소를 가다 - 아트 & 숨]
(10) 버텀라인 허정선 대표

매주 토요일 뮤지션 초대 공연 이어가
올해로 문 연지 40년…“기념 공연 열 것”
 지난해 중구 개항장거리에서 갤러리 3곳이 문을 열었다. 동구 배다리거리는 문화·예술거리 조성사업이 진행되면서 문화공간이 확 늘었다. 이들 공간은 특유의 색깔들을 입히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인천in은 이곳들을 포함, 곳곳에서 예술을 일구는 사람들을 만나 공간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시작한다. ‘예술 공작소를 가다-아트 & 숨’이라는 문패를 달고 매주 수요일마다 한편씩 이어간다.

 

인천 중구에서 재즈 공연이 열리는 카페 하면 단연 ‘버텀라인’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이곳을 찾으면 어김없이 전문 뮤지션들의 연주를 만날 수 있다. 재즈공연으로 특화된 공간라는 것은 이 거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큼 유명세를 탄 지 오래다.

그 장소를 28년째 지키고 있는 이가 허정선 버텀라인 대표다. 이곳과 인연을 맺은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카페 손님으로 처음 들어온 순간 별장 같은 높은 천장이 맘을 사로잡았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LP판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카페라서 또 좋았어요. 자주 오다보니 어느새 단골이 됐습니다.”

인연은 카페 손님으로 시작됐다. 그 다음엔 친구가 이곳을 인수했다. 그 친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그에게 운영을 권유했는데, 덜컥 받았다.

“동경하던 장소였거든요. 무리를 해서 시작했습니다.” 28년 전 일들이 바로 어제 일 같다고 말하는 허 대표다.

내부 칸막이를 떼내고 바닥 카펫을 거둬낸 후 목재 마루를 깔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에 온 재즈 연주자들이 공연을 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

“별도 무대도 없었어요. 앰프 몇 개 사와서 설치하고는 공연을 했는데 뮤지션들도 손님들도 모두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재즈공연을 하는 카페로의 변신이 시작됐다.

몇 년 지나지않아 버텀라인 이름을 알리는 공연을 열게 된다. 재즈 피아니스트 1세대로 꼽히는 신관웅이 이끄는 13인조 ‘빅밴드’를 초대하는 공연을 기획했다.

“인천에 공연할 곳이 있기는 하나 하는 분위기였어요. 13인이 함께 서는 무대가 가능하냐는 식이었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죠. 카페 테이블도 모두 치우고 관객들은 바닥에 앉아 연주를 들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뮤지션 사이에서도 연주하고 싶은 장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달에 한번 올리던 공연이 한주에 한번으로, 그 이후에는 주 2회로 늘어갔다. “매주 금·토요일 공연을 열게 됐습니다. 세션으로 참여한 연주자가 다른 팀 공연을 제안하기도 하고, 외국 아티스트가 내한하는 김에 공연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오기도 합니다. 공연기획자가 요청을 하는가 하면, 한번 온 뮤지션이 재공연을 문의하기도 하죠.” 최근에는 SNS를 통한 제안도 많아졌다. 그만큼 공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뮤지션들이 이곳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한결같이 “공간에서의 울림이 다르다”고 말한다.

“둘러쳐진 벽면에 창문을 내는 공사를 했는데 진흙과 갈대, 대나무 등이 섞인 흙벽이었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콘크리트 벽이 아닌 것이죠. 울림이 다른 것은 그래서 인것 같습니다. 연주자들이 전국 어디를 다녀도 이런 곳은 없다고 하네요.”

또 다른 이유를 꼽는다면 오랜 세월이 연주자와 허 대표 사이에 두터운 믿음을 만들어냈다. “제가 살가운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오랫동안 공연을 올리다보니 어느새 신의가 생긴 것 같습니다.”

한가지 더해 뮤지션들 사이엔 무대 분위기가 좋다는 소문이 나 있다. “관객들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주인의 역할입니다. 연주에 집중해달라는 요구를 하곤 하죠. 외지 연주자들이 먼 거리를 와서 리허설까지 하려면 90분 무대를 위해 하루를 투자해야 합니다. 그 가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게 제 역할입니다.”

하다보니 1년에 90회 이상 공연을 이어왔다. 관객층은 인천을 넘어 외부 비중이 40% 정도 차지한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홍보문자 보내는 대상이 2천명에 이릅니다. 물론 그분들이 모두 오는 건 아닙니다만 홍보는 당연히 해야죠. 기분 좋은 일은 한번 본 관객이 다시 올 때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파고는 이곳에도 닥쳐왔다. 영업 전면중단을 겪었고, 방역이 완화되는 틈틈이 공연을 올렸다 다시 닫기를 반복했다. 그나마 지난해는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서 토요일 공연을 부활했다.

올해는 버텀라인이 문을 연지 40년을 맞는 해다. 오는 5월과 연말에는 40주년 기획공연을 구상중이다. “지역의 문화기획자가 40주년 헌정공연을 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한번 잘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이곳 카페가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이기를 원하는 지 묻자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답을 하는 허 대표다.

“처음 문을 열 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재즈하면 어렵다는 선입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늘상 듣는 TV광고 음악의 80, 90%가 재즈입니다. 그만큼 재즈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음악이지요. 동네에서 슬리퍼 신고 와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겠죠.”

마무리로 재즈 싱어 말로가 한 이야기를 꺼낸다. “연주하고 노래하는 공부는 우리(연주자)가 할테니, 관객은 편하게 들었으면 한다고 했어요. 재즈를 듣는 것,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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