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청춘이에요" - 온라인 대학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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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청춘이에요" - 온라인 대학 도전기
  • 조영옥
  • 승인 2023.02.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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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조영옥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인문학아카데미 소통의 글쓰기반

입춘도 지나고 내일이면 우수다. 검으칙칙했던 나뭇가지가 때를 벗으며 보얗게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말라 붙었던 가지에 새싹이 밥풀만큼 부풀어서 봄비에 눈 뜰날만 기다리고 있다. 시든 나뭇잎을 떼어내듯 달력 한 장을 떼어낼 날이 열흘밖에 남지 않아 입학 날짜가 가까워졌다. 첫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학부형이라도 된 듯이 남편은 거실 한켠에 놓여있던 나의 작은 책상을 치우고 손녀방에 있던 커다란 책상과 컴퓨터를 내오고, 거실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아주었다. 보조 책상위에는 프린터기를 올려놓고 공부할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 학업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슴에 있었는데 못해주어서 마음에 걸려 있었다며, 당신의 힘으로 가게 되었으니 열심히 해보라고 말을 한다.

‘배움에 나이 없다. 92세 박사님’.

조간신문에 난 기사가 아침부터 화제 거리가 되었다. 기사를 한 번 읽어보라며 남편이 내게 신문을 건넨다. 커다란 제목과 함께 사각모를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주인공의 사진이 빛을 발하고 있다. 5년간 석박사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주인공의 사연은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편이었다며,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고 도움을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할 뿐이라고 담담하니 소회를 밝혔다.

지난 2월 16일 성공회대에서 최고령 박사 학위를 받은 이상숙씨(YTN 캡처)

온라인 대학에 입학금을 내어주며 엄마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시라며 여러 강좌를 안내해주던 딸도 기사를 읽었는지 “엄마는 아직도 청춘이에요 이 분에 비하면, 공부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네요” 코로나 팬데믹 2년여 동안에 여러 과목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공부를 했다. 디지털 세상에 대해서 눈을 뜨지 않았더라면 도전해보지 못했을 마음의 결심을 때마침 올라온 신문기사가 나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며 훨훨 날아보라고 격려를 한다.

온라인 스터디 모임에서 공부 도반을 만났다. 공부하는 목적과 방향이 서로 비슷한 공통점이 생긴 우리는 나이를 떠나서 쉽게 대화가 통했다. 열정만 가지고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나에게는, 앞서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렵지 않을 문제도 앞이 막혀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조금만 건드려 주면 알아 들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을 절실히 느꼈다. 같은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던 그녀가 문제를 해결했다는 글을 카톡방에서 본 나는 부러움이 가득 차올랐다. 어떻게 했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직장에서 퇴근하기가 바쁘게 또 다른 배움을 향하여 발걸음을 움직이며 시간을 쪼개서 쓰는 그녀에게 시간을 내어달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며칠씩 끙끙거리며 여러 포털 사이트를 찾아보았으나 생소한 용어들 때문에 내가 직면한 문제는 이해조차 어려웠다. 영어를 한글로 해석한 문장 역시 그냥 단어를 나열해 놓은 것같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포기 할 수 없어 얼굴 보기도 어려운 아들을 기다렸다가 물으나 그 역시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쉽게 답을 찾아주지는 못했다. “어머니, 한 번에 알아내려고 하지 말고 자꾸 읽어서 이해하고 찾아서 들어가면 답을 구할 수 있으니 어려워 하시지 말고 이것저것 눌러보세요” 아들은 선문답 같은 말을 하고는 물러섰다. ‘그래, 독서백편의자현이라고 했지, 자꾸만 읽어보면 무슨 뜻인지 어렵풋이 알아내겠지‘ 나 자신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답답한 마음을 잠시 내려 놓았다. 쩔쩔매던 사이트를 덮어놓고 이틀간 쳐다 보지도 않았다.

‘멈추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은 어느 스님의 책 제목이다. 멈추고 다시 들어가보니 먼저 보다는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유레카’ 하고 외칠 정도는 아니지만 글자의 형태로만 느껴졌던 단어들의 의미를 조금씩 읽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차분히 새겨서 읽지 않고 성급하게 답을 구하려 했던 나의 조급함을 알았다. 이제는 먼저 답을 알아낸 도반에게 구체적인 질문으로 도움을 얻어낼 것같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기만 했던 시간은 지나갔다.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냥스럽게 받는 그녀의 목소리에 힘을 얻어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 그럼요. 오늘은 학교 수업이 있어서 빨리 나가는 중이니 내일 시간이 되시면 사무실로 오세요” 그녀와 약속을 한 것만으로도 답을 찾아낸 듯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튿날, 노트북을 들고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넓고 아늑한 사무실, 팀원들은 모두 퇴근을 했고 팀장인 그녀는 퇴근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엄마뻘이나 되는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트북을 켜고 그녀가 알려주는대로 메모를 해가면서 차근차근 따라서 해본다. 열려진 문틈으로 조금씩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다. ‘아하, 여기를 몰라서 찾아가지를 못하고 헤매었구나, 진작 문을 두드려 볼걸’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았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그녀의 설명을 알아 들을 수가 있었다. 역시 노력한 것에 대한 공짜 시간은 없구나.…

카톡 알림이 왔다. 국가장학금으로 3월에 입학을 할 수 있다는 문자였다. 설레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마케팅빅데이터과’ 라는 과의 무게감 때문에 부담이 온다.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너무 어려워서 의욕이 상실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혜택을 받는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급속히 변화되는 웹3.0시대가 다가오면서 필요한 학과라는 호기심이 많은 작용을 하였다. 주변에서 ‘그 나이에 뭘 그런 것까지 관심을 갖느냐라는 핀잔을 받는다면 당신은 늘그막의 인생을 현명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마음의 응원으로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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