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획 한획 붓터치로 솔침 치다보면 기운 생동하는 소나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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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획 한획 붓터치로 솔침 치다보면 기운 생동하는 소나무 완성”
  • 김경수 기자
  • 승인 2023.03.07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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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 사람들] 여송(如松) 서복례 화백

소나무 작가로 불려…민경찬 화백에게 솔침 표현기법 사사
지난해 말 작업실 겸 갤러리 오픈·올 봄 일본 교토 초청전 예정

남동구 인천동부교육지원청 인근의 아파트 상가에 자리잡은 갤러리겸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실내는 온통 소나무 그림으로 가득했다. ‘소나무와 같다’는 뜻의 여송(如松)이라는 호를 그대로 갤러리 이름으로 붙였다.

공간을 꾸민 지 이제 겨우 3개월 남짓. 조촐하게나마 갤러리 오픈식을 준비하면서 초대장을 보내던 일이 바로 어제 같다고 말하는 서복례 화백이다.

“집 앞에 편안한 놀이터 하나 꾸몄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어요. 드디어 소박한 꿈을 이룬 느낌입니다.”

사실 그동안 작업실은 건물에 세들어 사는 ‘셋방살이’였다. 서 화백 표현대로 ‘편안한 놀이터’를 ‘드디어’ 갖게 된 것이다.

“온전히 작업공간으로만 쓰고 싶었어요. 벽면에는 완성한 작품을 계속 걸어나가는 거죠. 그런데 그동안 가르친 제자들이 꽤 많거든요. 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더라구요. 해서 1주일에 이틀은 빼서 강의를 이어가자 했죠.”

온시간을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넘어 실제 그렇게 했다. 완성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다시 작업을 하고 또 전시를 하는 이력이 쌓여가자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문하로 들어오고 싶다는 청도 늘었다.

재능기부 차원으로 조금씩 조금씩 늘려간 강의가 어느새 15년째다. 그동안 제자들은 초대작가로 우뚝 섰다. “초대작가가 어느새 11명이나 됩니다.”

그가 열심히 제자를 받았던 연유는 그 역시 스승의 가르침으로 공력을 쌓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여송이라는 호를 지어준 사람도 스승이었다.

 

소나무4계(春)
소나무4계(春)

서복례 하면 곧바로 ‘소나무 작가’가 따라온다. 특히 솔잎을 솔침으로 표현하는 것이 남다른 기법이다.

일반적인 소나무 그림에서는 두꺼운 터치로 솔잎을 표현하는데 반해, 그는 솔잎 대신 무수한 솔침으로 화면을 채워나간다. 붓터치가 얇게 떨어지는 기법으로 한획 한획 쳐 나가다보면 모든 솔침에서 힘이 느껴진다.

“얇게 표현하기 위해선 필력이 따라야 합니다. 인고의 시간이 녹아있죠.” 바로 스승 민경찬에게서 사사한 필법이다.

스승과의 인연은 그가 적극 찾아나서 만든 결과였다. 30세가 넘어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다. 그만큼 열정이 많았다. 어느날 일간지 1면에 실린 소나무 그림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동안 배웠던 그림과 달랐습니다. 신문사에 전화를 해서 작가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서울 청담동 화실을 찾아갔죠. 문하로 받아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스승은 그렇게 만났다. 그의 그림을 본 선생이 예의 솔침기법을 전수해줬다. 그리곤 배움이 5년 지날 무렵, 여송이라는 호를 건넸다

“스승은 중국을 주 무대로 활동하시는 분이셨어요. 항저우가 선정하는 10대작가에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오른 작가였죠. 스승을 만난 건 저에게 행운이었습니다.” 국전초대작가에 오른 것으로 배움의 일부나마 갚았다고 말한다.

“고향이 인천이셨어요. 그러다보니 제가 인천에서 후학을 가르치기를 내심 원하셨죠. 제가 제자를 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지난해말 큰 별이 지는 슬픔을 겪었다. 스승이 작고하신 것이다. 추도식에서 모인 제자들이 추모전을 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인사동 한국미술관을 운영하는 이홍연 관장이 장소를 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공간이 440평에 이르는 장소였어요. 갤러리를 채우려면 당연히 작품이 많이 필요하죠. 제가 해보겠다고 했어요.”

끊임없이 작업을 하다보니 발표하지 않은 작품이 꽤 많았다. “몇년전 중국 5개성 전시 초청을 받고 완성한 대작이 있습니다. 개인 사정으로 결국 전시를 못했죠. 또 인천예술회관 전관을 대관해놓고 전시를 준비하다 코로나 사태로 접었습니다. 모두다 세상에 내놓지 않은 작품들입니다.”

폭이 10m에 이르는 작품 2점을 포함, 한국미술관 2층 전관을 200여점의 소나무 작품으로 채웠다. 지난 1월 25일부터 31일까지 진행한 ‘낙락장송 백송전(百松展)’에서다.

“전시는 스승을 추도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오프닝에서 인사말을 하는데 갑자기 울컥 올라오더군요. 많은 제자들이 전시장을 찾아왔습니다.”

전시에서 역시나 솔침이 살아있는 소나무를 맘껏 펼쳤다. “소나무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기운생동하는 느낌을 담아야 합니다. 작업을 하는 저도 에너지가 있어야 작품이 나와요. 스스로 기가 느껴질 때 붓을 듭니다.”

올 봄에도 큰 전시가 2건이 예정돼 있다. 하나는 송도 복합문화공간 케이슨 24의 ‘갤러리 스페이스 앤’ 초대전이고, 또 하나는 일본 교토에서의 초청전이다.

작업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환한 웃음을 웃는 서 화백이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됐으니 그만큼 감사한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작업하는 동안에는 시간의 경계와 공간의 경계를 느끼지 못하고 쏟곤 해요. 나만의 온전한 즐거움입니다.”

 

설중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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