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없는 디지털 정보시대, 미디어 문해력 갖추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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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없는 디지털 정보시대, 미디어 문해력 갖추려면
  • 전영우
  • 승인 2023.03.1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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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전영우 / 인천생각협동조합 이사장

최근 들어 문해력에 관한 비판적인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음주운전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어느 래퍼는 "하루, 이틀, 삼일, 사흘 일주일이 지나가"라고 노래했는데, 사흘이 3일을 의미하는지 몰랐기에 착각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꽤 많다.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해 사과를 왜 심심하게 하느냐고 항의하는 사례도 있고, "설빔"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해서 당황하는 사례도 있으며, 심지어 학교의 가정통신문에 쓰인 "중식 제공"이라는 문구에, 우리 아이는 중국 음식을 싫어한다고 항의한 학부모의 사례 등, 문해력에 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

문해력 문제를 말할 때, 디지털 세대가 기존의 아날로그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해력 문제를 흔하게 지적하지만, MZ세대들만의 특유한 어휘가 보편화된 온라인 사회에서는 기성세대들의 문해력 부족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MZ력 테스트라는 설문이 온라인에 돌아다닐 정도로 이들의 언어는 기성세대의 언어와 이질감이 크다. "억텐" "오운완" "점메추" 와 같은 단어는 기존 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에 가깝다. 각종 줄임말과 신조어가 자리 잡은 MZ 세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는, 이들 세대와 소통의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 문제와 마찬가지로 기성세대의 문해력도 고민해야 할 사회 현상이다.

위의 사례들은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이기에 비교적 해결책을 찾기에 수월한 문제이다. 단순한 어휘의 문제보다 훨씬 더 큰 문제는 디지털 미디어가 갖고 있는 특성에 기인한 근본적인 문제이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 그리고 검증을 할 능력이 결여된 수용자로 인해 발생하는 문해력의 문제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더구나 디지털 문해력의 문제가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작성하고 유포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에는 검증되지 않은 온갖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가짜뉴스가 아무런 제재 없이 유포될 뿐 아니라, 팩트 체크가 되지 않고 허위 정보가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례는 셀 수없이 많다. 과거 레거시 미디어(TV, 신문 등 전통 매체)에서는 최소한 정보를 작성하고 유통하는데 있어서 사실 여부를 검증하고 게이트 키핑을 하는 장치가 있기에 비록 편향적인 정파성은 있을지언정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는 상당 부분 걸러졌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정보의 생산과 유통은 철저하게 상업적 이익에 기반을 둔 사업이 되었고 이에 따라서 정보의 객관성과 신뢰성은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도 온라인 환경을 따라가다보니 제대로 된 검증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형편이고, 우후죽순 난립한 각종 군소 매체는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털에 노출되는 각종 언론사의 기사는, 기사의 내용과 관계없이 얼마나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수를 유도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유튜브와 같은 영상 플랫폼에서도 콘텐츠 내용과 관계없이 자극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썸네일을 만드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온라인에 난무하는 온갖 정보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구별하고 이해하는 능력, 즉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EBS에서 방송한 문해력 테스트 문항을 보면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1. SBI 성격 테스트는 세계 3대 소셜미디어 200만 명의 좋아요를 받아서 과학적 도구로 간주되고 있다.

2. 미국 FDA 식물 라벨링 규정에 의하면 음료 100ml 당 4 kcal 미만이면 0칼로리라고 표기할 수 있다.

3. AI 전문가 김성인 박사가 로마 여행 중에 관찰한 내용에 따르면, 고대 로마인들은 수학적 사고에 특히 강했다.

4. 나노 코스메틱스의 실험 결과는 자사 제품이 타사 제품에 비해 피부 미용에 유독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다.

 

4개의 문항 중에서 2번을 제외한 모든 문항은 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다. 소셜미디어는 과학적 증명을 하는 도구가 아니며, 소셜미디어의 높은 좋아요 수치가 객관적 팩트의 기준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의 의견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실험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험 결과"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무조건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2번 문항은 미국 FDA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규정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나, 온라인에서 이 정보를 접했다면 과연 FDA에 위의 조항이 정말 존재하는지 크로스체크를 할 필요가 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을 인용하며 "~에 의하면"이라고 했지만, 확인해보면 그 기관에는 그런 내용을 발표한 적이 전혀 없는 경우도 많다. 수용자들이 디지털 미디어의 콘텐츠에 대한 검증 필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많기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는 온라인에 넘쳐흐르는 수많은 정보에서 옥석을 가리는 능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능력, 즉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경각심이 아직 매우 부족하다.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어야 하고, 공론화를 통해 대응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하는 이유이다. 작금의 문해력 문제는 단순한 어휘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보다 더 포괄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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