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의 탁자를 펴고, 강화 고인돌 유적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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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의 탁자를 펴고, 강화 고인돌 유적지에서
  • 유광식
  • 승인 2023.03.20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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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100) 강화군 하점면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 2023ⓒ유광식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 2023ⓒ유광식

 

대중교통 마스크 의무 착용이 마침내 해제되었다. 꼭꼭 닫아 두었던 사랑방의 뒷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기분이다. 거리에는 마스크보다 미소를 착용한 모습이 많아졌다. 목소리도 뚜렷하게 들리니 의사전달이 한결 수월해졌다. 그동안 잠잠했던 대면 행사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가운데, 단지 내 탁구장이 개장했다는 소식이 그 많던 층간소음과 흡연 피해 민원 방송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탁구장 이름이 ‘주고받고’였다. 촌스럽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생활건강을 위한 적절한 박자가 내포된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작은 탁구공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축구공만한 공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의 체력과 정신이 키워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주 먼 과거와 지금의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의 강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 주고받으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멀리 강화도를 찾아 탁 트인 고대 역사와 교신하러 나섰다. 

 

강화 고인돌유적지(뒤로는 고려산이다), 2023ⓒ유광식
강화 고인돌유적지(뒤로는 고려산이다), 2023ⓒ유광식

 

매번 강화도가 가깝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가고자 하는 마음에서라면 멀지 않은 후보지다. 나름 인천의 북쪽에 살고 있는데도 왕복 80km가 넘는 강화를 오가려면 하루를 온전히 붙들어야 한다. 김포를 거쳐 강화대교를 건너 신도로를 타고 하점면 고인돌(지석묘) 유적지를 찾았다. 평일이라 한산한 모습이다.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고려산(436m) 북쪽 경사면에 자리한 곳에 과거 선사 시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인근에는 ‘고인돌’ 지명을 딴 슈퍼와 캠프장, 식물원 등이 있다. 또한 강화군의 마스코트는 돌도끼를 쥐고 있는 ‘강돌이’다. 

 

강화역사박물관 전경, 2023ⓒ유광식
강화역사박물관 전경, 2023ⓒ유광식
주차장 한쪽에 자리한 강화군 메인 캐릭터 ‘강돌이’, 2023ⓒ유광식
주차장 한쪽에 자리한 강화군 메인 캐릭터 ‘강돌이’, 2023ⓒ유광식

 

고인돌 산책의 첫 관문으로 강화자연사박물관을 찾았다. 성인 기준 입장권 3,000원으로 바로 옆 강화역사박물관까지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태초의 시작은 은하였다.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들이 하나씩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모양이 신기했다. 운석 중 하나는 직접 만져 볼 수도 있었는데 돌의 형상이 보면 볼수록 매혹적이다. 지구 생태계의 형성과 인류의 출현, 유지 및 번식과 관련한 다양한 볼거리가 많았다.

전시 구성에 비해 내부 공간이 좁아 보이기는 했다. 무엇보다도 자연사박물관은 처음인지라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마치 과거라는 시간의 무덤에 홀로 소풍 나온 듯 실감나면서도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개중에 무서운 개체도 있었지만, 자연 역사의 항로를 따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로비에는 2009년 볼음도에 좌초된 향유고래의 거대한 몸체 뼈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빨 고래 중에 가장 크다고 하는데 뼈 크기만이 아니라 무게만으로도 엄청나 보였다. 어쩌다가 좌초되어 박물관이 자신의 무덤이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너무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박물관 내 다양한 광물 표본(혁명이 따로 없다), 2023ⓒ김주혜
박물관 내 다양한 광물 표본(혁명이 따로 없다), 2023ⓒ김주혜
박물관 내 ‘생물의 이동’ 전시 코너, 2023ⓒ김주혜
박물관 내 ‘생물의 이동’ 전시 코너, 2023ⓒ김주혜
향유고래 골격 표본(14m가 넘는다), 2023ⓒ유광식
향유고래 골격 표본(14m가 넘는다), 2023ⓒ유광식

 

이어 강화역사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때마침 꽃샘추위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바람이 어찌나 때리던지 귓가에 윙윙 울리는 소리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역사박물관은 두어 번 관람했지만 다시 봐도 좋았다. 강화는 본래 군사 요충지라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에 전쟁이 많고 교류도 활발했다. 섬이라는 고유의 특성과 더불어 고려 몽골항쟁 때 전시 수도(강도)였던 기록이 전해진다. 작년에는 마니산(469m, 마리산이라고도 불림) 자락 묘지사 터에서 온돌의 흔적이 발굴되기도 했다. 섬 자체가 하나의 유적인 만큼 향후의 작업에 기대를 던진다. 더불어 곳곳에 희생의 기록이 많은데, 왕의 피난을 돕다 죽임을 당한 뱃사공 손돌의 이야기는 왠지 더 숙연해진다. 

 

역사박물관 내 신미양요(1871) 광성보 전투 모형, 2023ⓒ유광식
역사박물관 내 신미양요(1871) 광성보 전투 모형, 2023ⓒ유광식
강화도를 지킨 두 장수(양헌수, 어재연), 2023ⓒ유광식
강화도를 지킨 두 장수(양헌수, 어재연), 2023ⓒ유광식

 

밖으로 나와 드넓은 벌판 위의 고인돌로 향한다. 4월 중순에는 고려산이 진달래의 맑은 분홍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진달래 축제로 강화가 진달래 못지않게 많은 나들이객으로 뒤덮일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활짝 핀다. 다만 고인돌은 말이 없다. 건너 봉천산(291m) 아래 주택들이 마치 옛 고인돌 마을의 민가처럼 보였다. 잠시나마 아주 먼 옛 시절을 본 것일까. 농사를 짓고 사냥하고 마을 축제를 열던, 마스크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그 시기의 활력을 말이다. 쌩쌩 부는 바람은 얄미웠으나 잔잔한 마음에 상상의 파도를 데려다 놓은 광경은 나쁘지 않았다. 부근리 지석묘 덮개돌 무게만도 50톤이 넘는다고 한다. 한편 무게만큼이나 깊이 박혀 있는 인류 유산의 휴식처 건너로 보이는 하점산업단지가 불편한 진실로 읽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역사박물관 내 고인돌 축조 과정 모형, 2023ⓒ유광식
역사박물관 내 고인돌 축조 과정 모형, 2023ⓒ유광식
벤치에 널브러져 있는 돌멩이들, 2023ⓒ유광식
벤치에 널브러져 있는 돌멩이들, 2023ⓒ유광식

 

유적지 둘레의 벤치에서 돌무더기를 발견했다. 청소년 친구들이 가지고 놀던 현대인의 흔적일 터이다. 주민으로 보이는 모자를 쓴 두 분이 산책 중이셨다. 바람은 방향을 바꿔 가며 얄밉게도 방문객을 괴롭혔다. 문득 남겨진 역사를 잘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논란이 많은 지금 사회를 보더라도 어찌해야 할지 강화의 고인돌 위에 얹혀 두게끔 된다. 자리를 이동해 강화읍으로 향했다. 늦은 점심을 용흥궁 인근에서 순무의 안내를 받아 즐길 수 있었다. 다시 이동해 로컬푸드 상점에서 우리 동네와 견줘 볼 때 조금은 비싸 보이는 채소들을 담아 장을 봤다. 상점 인근은 지난 주말 극단적 선택을 한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의 빈소가 마련된 곳으로, 창작예술 분야의 작가로서 마음이 무거웠다. 귀갓길 휘저어진 생각에 봄을 첨가해 다시금 출발선에 선 느낌이다. 짧은 강화 속 시간이 참 오묘하다.

 

성공회 강화성당 측면(좌측에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나무 가지가 보인다), 2023ⓒ유광식
성공회 강화성당 측면(좌측에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나무 가지가 보인다), 2023ⓒ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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