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와 소남, 조선을 뒤흔든 四七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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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와 소남, 조선을 뒤흔든 四七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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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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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남 인문학 12강을 듣다]
(6) 소남의 인문학, 사칠이기설 - 송성섭 / 소남학회 연구이사
[인천in]이 소남학회, 계양도서관과 함께 5월10일부터 9월20일까지 12차례에 걸쳐 계양도서관이 진행하는 '길위의 인문학' - 소남 윤동규를 탐구하는 인문학 강좌를 요약해 연재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의 수제자로 성호학파를 인천으로 확산시킨 소남을 통해 인천의 역사와 정신적 문화유산을 함께 탐구하며 인천 역사를 지평을 넓혀본다. 여섯번째 순서는 송성섭 소남학회 연구이사의 '소남 인문학, 사칠이기설'이다.

 

 

“나의 사칠이기설은 <사칠신편>과 서로 뜻을 분명히 밝혀주는 것으로서, 후세에 반드시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소남이 후손에게 남긴 이 유언이 25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되살아 나고 있다. 성호 이익과 그의 맏제자 소남 윤동규 사이, 조선 성리학 논변의 핵심인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이기(理氣)론을 놓고 벌였던 치열했던 논쟁이 최근 점화된 소남 연구자들의 문헌 연구로 조명받고 있다.

계양도서관이 진행하는 '길위의 인문학' - 소남 윤동규 6번째 강좌가 ‘소남의 인문학 -사칠이기설’을 주제로 16일 오후 7시 계양도서관에서 송성섭 소남학회 연구이사의 강의로 열렸다.

이 자리서 송성섭 이사는 성호와 소남이 벌인 논쟁은 퇴계와 고봉(기대승)이 벌인 논쟁을 능가하는, 조선 철학 최대의 논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계와 고봉의 논쟁이 주자학의 범주 안에서 벌어진 것이라면, 성호와 소남의 논쟁은 주자학과 양명학 사이에서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논쟁은 성호 사후 소남과 성호의 조카인 정산(貞山) 이병휴와 20년에 걸친 논쟁으로 지속되었다. 일련의 과정은 당시 조선을 뒤흔들 만한 사건이었다.

이제까지 조선에서 사단칠정과 관련된 철학적 논쟁은 퇴계와 고봉 또는 율곡 사이의 논쟁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성호와 소남 사이 논쟁의 세부 내용이 세상에 알려진 바 없이 철저하게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소남의 문집이나 서찰은 아직도 온전히 번역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단칠정도_page_2
사단칠정도

 

조선시대 대표적인 철학적 논쟁은 퇴계와 고봉의 사칠리기(四七理氣)논쟁이다. 기(氣)가 물질이라면, 리(理)는 물질이 그러하게 된 이치를 말한다. 그렇기에 리와 기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사단은 맹자의 견해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맹자는 이 사단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단의 대표적인 것이 측은지심이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귀기 위한 행동도 아니고,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고, 어린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사회적 비난을 싫어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칠정은 희(喜), 노(怒), 애(愛), 락(樂), 애(哀), 오(惡), 욕(慾)을 말한다.

문제는 사단과 칠정이 리기(理氣)와 연관되면서 발생했다. 이와 관련하여 퇴계는 사단은 리의 발현이고, 칠정은 기의 발현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고봉이 리기(理氣)가 서로 분리되는 문제를 지적하자, 퇴계는 그 지적을 받아들여 “사단은 리가 발현하여 기가 그것을 따른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현하여 리가 그것을 탄 것(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이라고 견해를 수정하였다. 사단과 칠정을 리기 이중의 관점으로 재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율곡은 오히려 기고봉의 논설을 주장했고, 이로 인하여 퇴계의 논설을 주장하는 사람과 율곡의 논설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에 성호 선생이 학자들의 학술이 어긋나게 되는 것을 걱정하여 <사칠신편>(四七新編)을 지었다.

 

사칠신편(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칠신편(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러한 <사칠신편>의 내용 중, 성호는 제자 신후담의 견해를 받아들여 일부 수정하게 된다. 그 요점은 “성현(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의 기뻐함은 진실로 또한 순경(順境, 일이 마음먹은 대로 잘되어 감)의 인(仁)이 발한 것이며, 사람을 위해 성냄(怒)은 곧 역경(逆境)에서의 수오(羞惡)에 불과하다. 성냄(怒)과 미워함(惡)은 글자는 비록 구별되지만 뜻은 사실 서로 가까우니, 리발(理發)에 소속시켜도 또한 마땅하다. (…) 무릇 자기의 사사로움과 간섭하지 않은 희노(喜怒)는 모두 리발(理發)로서, 형기에서 생긴 것과 더불어 섞어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중발(重跋)>이다.

성호는 <사칠신편>에서 성현의 기뻐함과 노여움이라도 형기로 인해 발현한 기발(氣發)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으나, <중발>에서는 제자 신후담의 견해를 받아들여 이를 리발이라고 수정한 것이다. 즉 양명학의 심즉리의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었다.

소남은 이에 대해 47세 되던 1741년 12월 성호 스승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자신의 견해를 펼친다. 소남의 견해는 “자기의 사사로움과 간섭하지 않은 희노(喜怒)를 리발(理發)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정한 리의 노여움의 경우, 그것이 공정하더라도 노여움이기 때문에 형기로부터 발현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리발(理發)이 아니라 기발(氣發)이라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심신(心身) 관계, 육체와 정신과의 관계, 물질과 정신과의 관계이다. 주자학은 물질과 정신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각각의 물질에 있는 이치를 궁구하여 그 끝까지(極處) 이르고자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격물(格物)이다.

그런데 양명학은 물질과 정신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보았다. 서양의 현상학과 마찬가지로, 모든 의식은 무엇에 대한 의식이라는 것이다. 물질 따로, 의식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은 대상에 대한 의식이라는 것이다. 양명학에서는 이를 심외무물(心外無物), 심외무리(心外無理)라고 하였다.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 마음 밖에 이치가 없다.

 

성호의 '사칠신편'에 수록되어 있는 '인심도심도'
성호의 '사칠신편'에 수록되어 있는 '인심도심도'

 

성호 이익은 <사칠신편>에서 ‘정성서(定性書)’를 인용하여 “성인의 희노(喜怒)는 마음에 매여있지 않고 사물에 매여있다.”라고 하였다. 마음과 사물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고, 성인의 기쁨은 마음이 아닌 사물의 당연한 기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발>에서 성호는 “인(仁)한 사람의 마음은 헤아림 밖에는 물질이 없다(仁人之心, 度外無物)”고 하여, ‘심외무물(心外無物)’이라는 양명학의 관점을 받아들인다.

소남의 사칠이기설은 퇴계와 고봉, 그리고 율곡과 성호와 구별되는 인문학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선의 인문학은 더욱 풍성해졌으며, 더욱 논리적 완결성을 띠게 되었다. 안동에 퇴계가 있다면, 인천에는 소성현 남촌 사람 소남이 있으니, 인천의 인문(人文), 조선의 인문(人文)으로 받들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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