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가는 '개성파'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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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가는 '개성파'의 차
  • 박병일
  • 승인 2011.10.03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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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의 자동차 이야기] 시트로엥(Citroen)


1930년 형 시트로엥

프랑스 대통령이 좋아했던 차

롤스로이스나 벤츠 같은 고급차도 아닌 대중차에 가까우면서도 프랑스 대통령 드골의 차였던 시트로엥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한 마디로 시트로엥은 경제적이면서도 멋스럽고, 성능이 뛰어나다. 또한 시트로엥은 항상 색다르다. 새 모델이 나올 때 마다 사람들은 그 파격적인 모습에 깜짝깜짝 놀란다. 스포츠카를 제외한 일반 승용차 중에서 시트로엥만큼 개성 있는 스타일을 가진 차는 없다. 늘씬하고 매끄러운 곡선으로 된 시트로엥의 경우 옆모습이 특히 아름답다. 뒷바퀴를 최대한 뒤쪽으로 밀어붙여 다른 차보다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가 길고, 차 크기에 비해 실내가 무척 넓다. 그러나 수려한 겉모습만 시트로엥의 자랑은 아니다. 그 안에 감추어진 성능이야말로 시트로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비행기에서 힌트를 얻은 '모노코크'라는 차체 세계 최초로 사용

시트로엥은 비행기에서 힌트를 얻은 '모노코크'라는 차체를 세계 최초로 사용하였다. '모노코크' 원리는 달걀과 비슷하다. 100g도 채 안 되는 달걀이 무려 100kg이 넘는 무게를 떠받칠 수 있다. 달걀을 가로로 놓으면 쉽게 깨지지만, 세로로 놓으면 아무리 무거운 물건을 얹어도 잘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둥근 구조의 장점을 따온 게 바로 '모노코크'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트로엥은 시속 60km로 달리다가 정면충돌해도 실내가 전혀 찌그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많이 사용하고 있는 앞바퀴 굴림차를 세계 최초로 본격화한 것도 시트로엥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 뒷바퀴 굴림차였다. 앞바퀴 굴림차의 경우 스피드가 뛰어나고, 커브 길에서 운전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앞바퀴 굴림의 개척자 시트로엥

오늘날 지구상에 굴러다니는 앞바퀴 굴림차 아버지는 앙드레 시트로엥이라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았던 앙드레 시트로엥은 열심히 공부하여 프랑스 최고 기술 대학인 국립 이공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앙드레는 특수한 톱니바퀴를 만드는 회사를 세웠다.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V자 둘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시트로엥 마크는 이 톱니바퀴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어쨌든 앙드레 꿈은 프랑스의 헨리 포드로 되는 것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미국처럼 '자동차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자동차가 부자들만 타는 사치품에서 일반 시민들의 발로 되는 시대가 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값싸고 멋있는 차를 만들 결심으로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얼마 안 가 망할 것이라고 수군댔다.

1919년, 많은 사람들의 애정어린 관심과 비웃음 속에서 마침내 시트로엥 첫 차가 탄생했다. 시트로엥 최초의 차 A형은 값이 싸고 예쁘장한, 4기통에 1,327cc, 18마력의 차로,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한 달 만에 3만대나 주문을 받았다.

세계 최초로 사하라 사막을 횡단

어느 날, 앙드레 시트로엥은 이런 생각을 했다.

"자동차 회사 중에서 제일 늦게 생긴 우리 회사가 푸조나 르노 같은 회사를 앞지르려면 광고를 기발하게 해야 해. 차만 잘 만들면 뭐 하나, 광고를 잘 해야지. 시트로엥을 몰고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이 배짱 두둑한 젊은이는 1922년에 정말로 새로 나온 모델 B2를 몰고 세계 최초로 사하라 사막에 도전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자신이 생긴 앙드레는 2년 뒤 B2 탐험대를 조직했다. B2 탐험대는 아프리카를 끝에서 끝까지 차로 탐험하는 기록을 세웠다.

사하라 사막과 아프리카 횡단에 이어 기상천외한 광고가 계속되었다.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코끼리를 차 지붕에 태운 사건이다. 1925년에 나온 시트로엥 B12는 순 강철로 된 차였는데, B12가 얼마나 튼튼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시트로엥은 집채만한 코끼리 한 마리를 구해다가 차 지붕에 얹고 시내를 돌아다닌 것이다.

1922년 가을 어느날에는 파리 하늘에 난데없이 비행기 한 대가 나타났다. 당시만 해도 비행기는 신기하기만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비행기가 어디론가 날아갈 생각도 않고 파란 하늘에서 곡예를 부리는 것이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뛰쳐나와 이 광경을 정신 없이 지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 뒤꽁무니에서 연기가 뿜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시트로엥'이라는 글자가 하늘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 뿐이 아니다. 시트로엥은 높이가 300m나 되는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에펠 탑까지도 광고에 이용했다. 전구 25만 개와 전선 90km를 써서 에펠탑에 '시트로엥'이라고 쓴 커다란 네온 사인을 매단 것이다.

르노와 푸조를 앞서기 위하여 시트로엥이 자동차 홍보에 기울인 노력은 대단했다. 앙드레 회장은 매월 '시트로엥'이라는 잡지를 15만 부나 찍어 전 프랑스에 뿌렸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사람들을 공장에 초대해서 견학시키고 잘 대접해서 돌려보냈다. 또 아이들을 초대해 시트로엥 미니 자동차를 일일이 선물하기도 했다. 기사거리가 없을까 날마다 고민하던 신문기자들은 저마다 이 사건을 크게 다루었고, 그에 따라 시트로엥은 갈수록 유명해졌다.

자동차 역사상 처음으로 '애프터 서비스' 실시

시트로엥은 자동차 역사상 처음으로 '애프터 서비스'를 실시했다. 값싸고 편하고 예쁜데다 서비스도 만점인 시트로엥을 사람들이 좋아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꼴찌에서 시작한 시트로엥은 1930년에 드디어 프랑스 제일의 자동차 회사로 올라섰다. 1930년 한 해 동안 르노가 판 차는 6만 대, 푸조는 5만 대였던 반면, 시트로엥은 무려 8만 대나 되었다.

그러나 앙드레 시트로엥 회장은 만족하지 않았다. 선두 자리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확실히 잡아끄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했던 것이다.

땅 위의 비행접시 '트락숑 아방'

잘 팔리기는 했지만, 그 때까지 디자인도 평범하고 성능도 별다를 것 없는 시트로엥은 많이 만들어 싸게 파는 자동차에 불과했다. 세상을 놀라게 할 새 자동차 연구가 시작된 지 4년 만인 1934년 3월, 드디어 시트로엥은 트락숑 아방 7CV를 완성했다.

트락숑 아방은 멋을 아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꼭 맞는 것이었다. 웬만한 고급차에 버금갈 정도로 성능 좋고 승차감이 뛰어난 트락숑 아방은 차체가 길고 낮아, 달릴 때면 마치 비행접시가 떠다니는 듯 환상적이었다. 게다가 4기통, 1,300cc,  32마력에 최고 시속 100km를 기록하며, 기름 1리터로 11km나 갈 수 있었다.

트락숑 아방은 나오자마자 베스트 셀러로 되었고, '달리는 프랑스의 예술품'으로 프랑스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드골 대통령이 늘 타고 다녔던 차도 바로 이 트락숑 아방이었다.

이 차에 회사 미래를 걸었던 시트로엥 사 회장 앙드레 시트로엥의 도박이 보기 좋게 성공한 것이었다.

르노 책략에 넘어간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 7CV와 뒤를 이어 나온 11CV가 큰 성공을 거두자, 르노 자동차의 회장 루이 르노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 따위 신출내기가 우리 르노를 앞서다니!"

르노는 원래 교활한 사람이었다. 그는 시트로엥을 초대해서 새로 지은 르노 공장을 직접 안내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신의 초현대식 공장을 자랑했음은 물론이다. 시트로엥은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돌아가서 르노 공장에 못지 않는 최신식 공장을 세워야겠어."

시트로엥은 돌아오자마자 세느 강변에 있는 자신의 낡은 공장을 당장 허물어 버렸다. 그리고는 사원들을 들볶아 석 달 만에 새 공장을 지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공장 내부는 검정과 하얀색 태일로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병원 수술실처럼 깨끗하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공장을 '앙드레의 수술실'이라고 놀렸다고 한다.

공장은 완성되었으나, 회사는 그만 파산할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트락숑 아방을 개발하느라 들어간 연구비도 엄청난데, 무리하게 공장을 짓느라고 회사 돈이 바닥이 난 것이다. 게다가 앙드레 시트로엥은 남한테 돈 빌리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시트로엥은 부도를 막아 보려고 버둥거렸지만, 결국 회사는 타이어 회사 미쉐린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앙드레 시트로엥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 놓은 회사가 남의 손에 넘어가자, 홧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1935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프랑스 사람들의 '미운 오리 새끼'

시트로엥이 미쉐린으로 넘어간 후, 트락숑 아방 인기를 뛰어넘는 시트로엥 최대 걸작 2CV가 탄생했다.

시트로엥의 두 번째 사장, 블랑제는 농민들을 위한 실용적인 차를 만들고 싶어했다. 프랑스는 선진 공업국이기도 했지만, 보리와 감자를 심고 소 젖으로 버터나 치즈를 만드는 농민의 나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블랑제는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차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첫째, 비싸지 않고,

둘째, 기름 값이 말 사육비를 넘지 않아야 하며,

셋째, 믿을 수 있고 실내가 넓어야 한다.

이 까다로운 주문을 받은 직원들은 새로운 차를 개발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

그런데 블랑제는 지켜야 할 원칙 두 가지를 더 추가했다. 첫 번째는 날달걀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차에 싣고 시골 비포장 도로를 시속 65km로 달릴 수 있되, 달걀이 하나라도 깨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모자를 쓴 채로 편하게 차를 오르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옛날 양반들이 항상 갓을 썼던 것처럼 당시 프랑스에서도 항상 모자를 쓰는 풍습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2CV의 경우 무게가 500km이 채 안 될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실내가 넓었다. 모양도 아주 특이해서 '꼬마 자동차 붕붕'처럼 올록볼록 했다. 귀여우면서도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같이 생긴 2CV는 나오자마자 트락숑 아방처럼 대히트를 쳤다.

1948년에 처음 나온 이 모델은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거리를 달리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딱정벌레 차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산되고 있는 차인 것이다.

2006 C6 시트로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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