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시대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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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는 가능한가?
  • 하석용
  • 승인 2011.10.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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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하석용 / 공존회의 대표 · 경제학 박사


시대가 어려울 때마다 영웅의 도래에 대한 대중의 갈망은 목이 탄다. 아니 그보다도, 인류 역사에 소위 대중이라고 불리는 집단의 평화롭고 배부른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인류는 언제나 영웅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영웅이, 부를 때마다 알라딘의 마법사처럼 튀어나올 수는 없는 일이고 보면, 대중이 바라는 영웅들은 주로 소설과 특정한 신앙 속에서나 고통스러운 약자들을 위로하게 마련이다. 홍길동, 일지매, 로빈후드, 재림 구세주나 미륵 같이 순전히 인간의 열망에서 창조되는 경우와 홍경래나 임꺽정처럼 실화와 소설이 복합하는 경우 같은 것들이 좋은 사례다. 

물론 현실적으로도 그러한 영웅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온갖 위인전을 장식하는 화려한 이름들이 얼마든지 있고, 세계 곳곳에 아직도 특별한 시신 안치소에 누워 대중의 경배를 받고 있는 신화적인 영웅들이 없지 않지만, 역시 제대로 된 영웅은 소설과 신화 속에서가 제격이다. 아무래도 인간의 실화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항상 많은 아쉬운 결점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법치사회에서도 쾌걸 '조로'에 대한 향수는 사라지지 않고, 구세주의 재림을 열망하는 집단은 건재하다. 현대를 풍미하는 수많은 '판타지'들이 모두 따지고 보면 그러한 영웅에 대한 기대의 반영이고 현실 부정의 현상일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도 영웅에 대한 갈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면서 끊임없이 창조되고, 때로는 무교(巫敎)의 힘을 빌려 재창조되면서 현실 속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무리 민주주의와 과학으로 훈련된 세련된 지식인이라 해도, 속이 터질 듯한 불합리한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한두 번쯤 무언가 강력한 힘이 이 세상을 확 뒤집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오히려 정상적인 현상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바꿔! 바꿔! 모조리 다 바꿔!" 라는 정치적인 구호가 유행가가 되기도 하고 혁명에 대한 기대는 언제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면, 세상을 바꾼다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바꾼다면 무엇을 어떻게 왜 바꾸어야 하는 것인지 답은 분명하지 않다. 과거 인류는 자신의 한 인생 속에서 그렇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배부르고 추위에 떨지 않으며 호랑이에 물려가거나 못된 탐관오리를 만나지 않으면 충분했다. 저마다 왕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고 천석꾼 만석꾼이 되기를 꿈꾸지도 않았다. 하물며 남의 인생이 내 가치관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언감생심 가질 생각도 아니 하였거니와, 내 불행이 모두 이웃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염치 없는 게으른 자들의 투정으로 치부되었다. 그래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경구(警句)까지 만들어졌다. 그때 혁명은 가능한 것이었다. "내게 밥을 달라" "나도 인간으로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요구의 명분은 당연한 것이었고 목표는 단순하고 정확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류의 혁명은 아이러니하게도 당파적인 이데올로기를 고정화하였고, 오늘 지구상의 많은 인간들이 이러한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적지 않은 인간들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도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길은 멀어만 보인다. 그 사이에 인간의 기술과 물질적인 풍요는 성장하였고, 이제 200여 년이 지난 오늘 구시대의 이데올로기들은 어느 편이건 간에 현대적인 인간들의 다양한 욕구를 담아내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제 모순은 충분히 축적되었고 이제 혁명의 시기가 성숙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마도 이제 성숙한 자본주의는 국가 간 전쟁을 기도할지언정 내부 사회는 혁명을 꿈꾸지 못한다. 혁명을 위하여서는 단순하고 명확한 명분, 그리고 주체와 결집하는 에너지가 있어야 하지만 자본주의는 성장과 동시에 탐욕과 무정부성(無政府性), 안일(安逸)을 전 사회적으로 전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자본주의적 현상에 반작용으로 등장하는 집단에까지도 예외 없이 파고든다. 영웅적 동기가 없는 상황에서 영웅은 탄생하지 않는다. 소위 이데올로기의 선명성을 앞세운 의사(擬似) 영웅집단이 자신들의 탐욕을 위하여 대중들의 방황을 선동할 뿐이다.   

이제 우리 같은 민주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미래에 관한 '경우의 수'는 많지 않다. 극한적인 대립과 분열로 스스로 붕괴된 후에 다시 재기를 기약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합의의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진화의 형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밖에 타의에 의한 전쟁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타의적 정돈을 거치는 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차피 스스로 선택할 방안은 아니다. 이제 영웅에 대한 허망한 기대를 접어야 한다면, 우리가 선택하여야 하는 길은 무엇이 남는가. 상대적으로 능력이 낫고 애국심과 애향심이 강한, 오직 '그래도 좀더 나은 사람'들을 꾸준하게 일꾼으로 발굴하는 것 밖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어깨에 걸친 누더기 같은 이념과 패거리 의식을 먼저 내동댕이쳐야 하는 것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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