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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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는 이유
  • 박남수
  • 승인 2024.04.0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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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의 글마당]
박남수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
난초

 

의정부 도립병원은 6.25전란 때 쓰던 야전 병원이었다. 넓은 평수에 본 동은 디귿 자로, 식당 건물 따로, 기숙사 따로 모두 흩어져 있었다. 야간 당직 때 어두침침한 병실 한 곳에 가서 처치해 주고 돌아서 올 때면 꼭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어 휙휙 뒤를 돌아보기 일쑤였다.

도립병원이라 그런지 일반 환자도 많이 오지만 행려 환자도 가끔씩 왔다. 늘그막에 길거리를 떠돌다 마지막에 온 분들이라 어떤 분은 단가(들것)에 실어 옷을 다 벗기고 씻긴다. 눈, 귀에서 구물구물 구더기가 기어 나오기도 했다. 그런 분은 얼마 못 가 끝났지만 ‘나는 저렇게는 안 될 거야’ 젊어서 ‘열심히 살 거야,’ 하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억울한 죽임을 당한 사람도 시체 부검을 위해 들어왔다. 어느 사내는 사망한 지 여러 날 되어서 들어왔다. 부패 되어 가는 중이니 몸이 그냥 드럼통만 했다. 의사, 엑스레이 기사, 경찰, 사진사, 간호사 등 여러 명이 빙 둘러섰다. 코를 들어 냄새를 맡으면 역했다.

전정 가위 같은 큰 가위로 몸통이든, 머리든, 갈비뼈, 무엇이든 싹뚝 자르고 뽀개고 부위 사진을 남겼다. 흔적을 찾아내고는 바늘로 이불 꿰매듯 숭덩숭덩 시쳤다.

인간의 귀함은 살아생전이다. 병원에서 근무할 때 필자는 사람에 대한 신비감을 잃어갔다. 그래도 간호사 여러 명과 약사 하나는 똘똘 뭉쳐 스스럼 없이 마음을 터놓고 커피 한 잔씩 나누며 담소를 많이 나누었다. 헤어질 때는 몇 년 후 병원 앞 미루나무 아래서 만나기로 약속까지 했다. 그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어느 날 인간극장에서 시인이며 의사이신 구자운 선생님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분의 삶이 보기 좋았다. 난초도 치시고 ‘구절초’라는 시도 쓰셨다. 승마를 하시고 식솔들을 바른길로 잘 인도하셨다. 지금은 가정의학과 의사이지만 요양병원을 운영하며 가난한 어르신을 돌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구십 세의 연세에도 영육 간이 건강하신 분이시다. '어떻게 내가 원하는 삶을 저분은 몸소 실행하고 계실까.‘ 시청하는 내내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내 마음 속엔 몇 개의 이상과 현실에 대한 불만이 뒤엉켜 불덩이로 타오를 때가 있다. 나는 문학소녀를 가슴에 품었고 좋은 의사가 되고도 싶었다. 만약 꿈이 이루어졌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저 분처럼 건강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우울 했던 시절이 끝나고 필자는 교회로 인도되었다. 집에서 멀리 보이던 천주교회, 어느 순간 십자가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가 그분 앞에 섰다. 두손 모아 한참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이 순화되고 가라앉음을 느꼈다.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입에서 알 수 없는 기도도 흘러나왔다. 두려워서 한동안 끊었으나 후에는 그것이 ‘방언’ 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수녀님도 되고 싶었다 갈벨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 속에서 기도하며 십자가상, 성모마리아상, 묵주 등을 만들거나 아니면 공부를 하고 싶었다. 엄마께 내 의견을 말했으나 ‘세상과는 절연’이라고,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일‘이라고 손을 휘휘 내 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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