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사막에서 정리한 외지의 삶, 쉬필라움 귀국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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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사막에서 정리한 외지의 삶, 쉬필라움 귀국전시
  • 조우
  • 승인 2024.04.12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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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가의 인천 이야기]
(1) 조우 작가 - ④ 작가의 길에서 만났고 만날 사람들

 

인천in이 인천에서 작업하는 작가들과 인천 이야기하고 싶다며 제안해 시작한 이 코너에 벌써 마지막 글을 씁니다. 7살 때 인천에 이사와 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쓰다 보니 역시 사람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마구 난발하며 써 내려가는 글들 덕분에 너무나 따뜻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제가 그림이 아닌 글로 담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인천in 독자들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주절주절 떠들어 보았습니다. 인천 이야기라서 이곳저곳 여행한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천 화가의 인천 이야기 다음 편 '공지선 작가의 인천 이야기'는 독자로 참여하겠습니다.

 

핑크빛 나의 인생

 

핑크빛 나의 인생 116.8×91.0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24
핑크빛 나의 인생 116.8×91.0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24

 

지금 나는 사랑이 넘쳐흐르는 시기를 살고 있다.

잘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지만 그렇다고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닌 아주 애매한 시간에 살고 있다. 그래서 즐겁고 그래서 뭐든 할 수 있다.

인도에 가서 삶을 아주 조금 알게 되었고,

네팔에 가서 또 다른 삶을 조금 알게 되었고,

미주에 가서 또 다른 삶을 또 알게 되었고,

세계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또 다른 삶을 알게 되었다.

이 많은 시간이 하나의 그릇에 담겨 지금의 내가 되었다.

 

2011년 한국에 돌아와 인천 자유공원 중턱에는 공자 조각상 옆에 미나와 홍희오빠가 카페 '낙타사막'을 오픈했다. 미나는 없는 살림에 잠시 내가 한국에 오면 신포동에서 피순대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전시하러 캐나다에 갈 때는 운동화까지 사서 쥐여주던 친구다.

그 당시 부모님 집 소파에는 내 자리가 없었다. 다시 캐나다를 가야 하나 고민 중에 미나가 카페 옆집이 월세 10만 원이니 들어오라고 했다. 혼자 작업하기 딱 좋았고 무엇보다도 친구가 옆에 있어 더욱 좋았다. 미나와 홍희오빠 사랑 덕분에 기나긴 외지 생활을 정리할 수 있었고, 그들 덕분에 차이나타운 갤러리 쉬필라움에서 귀국 전시까지 했다.

 

낙타사막과 쉬필라움 두 공간에서 개인전 2011  사진 제공 강혁
낙타사막과 쉬필라움 두 공간에서 개인전 2011 (사진 제공 강혁)
“당신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쉬필라움 개인전 오프닝 2011 사진 제공 강혁
“당신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쉬필라움 개인전 오프닝 2011 (사진 제공 강혁)
“당신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쉬필라움 개인전 2011

 

뭐 해서 먹고살지?

오래된 벽지는 알록달록 색이 다양하고 천장이 낮아서 두 손을 뻗으면 팔이 닫았다. 그래도 햇살이 좋아 따뜻하고 아늑했다. 작은 베란다에 앉아있으면 눈앞에 인천 앞바다가 훤히 보이고 정박한 배들이 그림처럼 있었다. 세상은 다 내 세상이었다.

아침에는 미나, 현숙, 은정이와 함께 낙타사막 2층에서 요가 명상하고, 틈틈이 작업실에서 미술 교습하고, 부모님께 용돈 받으며 근근이 즐겁게 살았다. 누워 얼룩지고 오래된 천장 벽지를 한참 쳐다보다가 이제부터 ‘뭐 해서 먹고살지?’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지금처럼 지원사업이 많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2012년 이맘 때, 낙타사막에서 지인들과 커피를 마시며 고민을 털어놨다. 모두 다 한 달에 만 원씩 후원비를 준다고 작업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조우 후원회는 현재 1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들이 있어 인천에 다시 정착할 수 있었고 그들이 있어 자유공원 중턱에 자리 잡고 살고 있다.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10회, 11회, 12회 조우 후원자님 고맙습니다.

 

낙타 사막 53.0×45.5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15~ 미나는 홍희랑 낙타를 타고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 여행을 하고 있다.
낙타 사막 53.0×45.5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15~ 미나는 홍희랑 낙타를 타고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 여행을 하고 있다.

 

네팔에서 김중배와 함께 세계지도로 시작한 여행, 인천 자유공원까지

네팔에서 힌두 춤에 빠져 “세상의 중심은 나야!”를 외치며 살아가던 중에 첫사랑처럼 생긴 남자와 같이 여행 온 김중배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왔다. 그의 첫인상은 목소리 크고, 몸도 크고, 내 눈에는 다 크게 보였지만 귀여웠다. 그는 네팔 여행을 끝내고 태국으로 갔는데 네팔이 좋았는지 내 첫사랑(닮은)은 한국으로 보내고 홀로 네팔에 다시 왔다. 그때 나는 네팔을 떠나려고 개인전 준비 중이라 김중배가 너무 반가웠다.

개인 전시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김중배는 자기 일처럼 도와줬다. 전시 기간 매일 대화를 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세계지도를 펴고 우리나라와 같은 위도선에 있는 나라들 음식은 다양하고 맛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흥미로웠고 마치 세계여행을 하는 거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말이 통했고, 보는 곳이 같아 지금까지도 같이 있다.

 

“NAMASTE” 귀 기울이기 25.6×20.3cm 캔버스 위에 오일 2007New Orleans Cafe 개인전 현수막 (네팔 타멜)
“NAMASTE” 〈귀 기울이기〉 25.6×20.3cm 캔버스 위에 오일 2007
New Orleans Cafe 개인전 현수막 (네팔 타멜)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새 소리에 귀 기울이고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미소 지으며

사랑이 싹트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미소 지으며

사랑이 꽃피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기도 합니다.

 

2008년 말에 나는 네팔을 떠나 캐나다와 미국을 오가며 작업하고 전시했고, 김중배 요리사님은 유럽, 베트남, 아랍에미레이트 등 여러 나라에서 쉐프로 일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다가 이 나라 저 나라를 같이 때론 혼자 여행했다. 인천에 정착한 후 김중배 요리사님은 잠시 귀국하면 가족이 아닌 인천에 사는 나한테 찾아왔고 한두 해 걸치며 그도 인천사람이 되어갔다. 지금은 인천 중구 신포동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김중배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나의 모든 전시의 설치, 철수, 작품설명까지 하며 나와 함께 자유공원 중턱에서 살고 있다.

 

“7년 전 그날 아하하하 ” 46.0x90.9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아크릴 과슈 2015~2022김중배 요리사님이 1년간 베트남 일을 끝내고 나와 같이 여행 중에 바닷가에서 놀다가 비치 의자가 부러졌다.
“7년 전 그날 아하하하 ” 46.0x90.9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아크릴 과슈 2015~2022김중배 요리사님이 1년간 베트남 일을 끝내고 나와 같이 여행 중에 바닷가에서 놀다가 비치 의자가 부러졌다.

 

염원이 담긴 밥 한 그릇

2002년 인도로 유학을 떠난 후 할머니는 매일 아침 낭자씨(엄마)를 시켜서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담아 놓고 “어디 가든 굶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다 오라” 기도하고 저녁 식사 때 가족 모두 모여 다 같이 나눠 드셨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도 낭자씨는 오늘 아침에도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담아 딸을 위해 기원하신다.

내 삶의 시작은 사랑이고,

사랑 없이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사랑 없이 그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너무나 감사하게도 누군가 옆에 있고 언제든 손을 내밀면 잡아 줄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건 행운이고 행복이다. 매일 아침 기원하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밥 한 그릇을 그림으로 담아 인천in 독자들과 나의 모든 지인께 바친다.

 

“WOMB” 엄마의 밥 53.0×45.5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24던지고 떨어져도 잘 안 깨지는 코렐 밥그릇에 담긴 엄마의 밥 한 공기
“WOMB” 〈엄마의 밥〉 53.0×45.5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24
던지고 떨어져도 잘 안 깨지는 코렐 밥그릇에 담긴 엄마의 밥 한 공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매달 말일에 조우 웹사이트( http://artist-jowoo.co.kr )에서 ‘소식’을 누르시면 조우 작가의 소식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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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2024-04-12 19:20:16
따뜻한 그림 이야기에 잔잔한 감동이 전해집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작가님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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