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직히 북한을 가보지 않아 북한의 실상이 어떻다고 단언할 입장은 못 된다. 간혹 TV에 보이는 영상만으로 어떻다고 판단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2001년 중국 단동(丹東)에서 집안(集安)까지 여행하면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때로는 압록강 위에서 바라본 북한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단동에 도착하던 날 압록강변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거기서 바라본 압록강 건너편 신의주의 모습은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무슨 항공관제등 같은 빨간 불빛 하나였다. 나는 그런 칠흑 같은 어둠은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다음날은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탔는데 유람선은 북한 쪽 영토 4-5 미터까지 가까이 다가갔다. 배에서 그냥 뛰어내리면 북한 땅이었다. 많은 북한 사람들이 압록강변에 정박되어 있는 어선들 위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배는 얼마나 오래 운항을 안 했는지 말 그대로 시뻘겋게 녹이 슬어 있었고,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군청색의 남루한 옷에 깡마른 몸매를 하고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저 우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히히덕거리며 유람하고 있는 우리를 향해 하다못해 욕이라도 했으면 덜 했을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그렇게 섬뜩하리만치 무표정한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그 인상은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안의 압록강은 폭이 좁아 겨울에 얼어붙으면 후다닥 10초만 뛰면 건너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서도 건너편 강변에서 밭을 매는 북한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군청색의 옷에 깡마른 몸매를 하고는 말없이 곡괭이질만 하고 있었다. 강 위에서는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중국인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모터보트를 타고 있었다. 압록강 저 편 우리 민족의 땅은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이었고, 이쪽 중국 땅은 6월의 푸르름이 하나 가득했다. 나는 차마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었다. 우리 민족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날은 관광도 포기한 채 술만 마시고 말았다.
그때로부터 10년이 더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북한의 경제 사정이 나아졌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해마다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이 어떻고 하는 소리만 들어왔을 뿐이다. 그러니 그때 본 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할 것이다. 그러니 탈북자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죄일 뿐이다.
『맹자』「양혜왕상」편에는 유명한 제선왕(齊宣王)의 흔종(釁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일찍이 제선왕은 흔종(종을 새로 만들 때 짐승을 죽여 그 피를 종에 바르는 의식)에 끌려가는 소를 보고 그를 불쌍히 여겨 양으로 바꾸라 지시한 적이 있었다. 맹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제선왕이 능히 천하의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소가 죄도 없이 끌려가 죽게 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어진 정치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차마 남에게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남에게 하지 못하는 정치를 베풀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이 쉬울 것이다(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可運之掌上-『맹자』「공손추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우물가에서 기어다니다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놀라고 측은한 마음이 들 것이다. 만일 그런 측은한 마음이 없다면 그는 분명 사람이 아닐 것이다(無惻隱之心 非人也-『맹자』「공손추상」). 바로 이 측은한 마음이 바로 인의 단서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맹자』「공손추상」). 사람이 어질지 못하다면 예와 악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논어』「팔일」). 측은지심이 없다면 정치는 해서 무엇하겠는가?
식량난으로 고생하는 북녘의 우리 동포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먹을 것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가 중국 공안에게 체포되어 북한으로 다시 끌려가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르겠다. 하다못해 소 한 마리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도 차마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그걸 차마 어찌 보겠는가? 북한 동포들의 식량난 문제와 탈북자들의 문제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면 누구나가 다 가져야 할 인간 본성의 문제다. 여야를 떠나, 진보와 보수를 떠나, 중국 정부가 탈북자를 더 이상 북송하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북한 동포들이 먹을 것을 찾아 국경을 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반 조치를 강구해야만 한다. 바로 우리 형제들 아닌가? 이 정부 들어 중단된 남북 간의 경제 협력도 다시 복구해야 하고,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도 계속되어야만 한다. 우리 형제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굴비 엮이듯 엮여 다시 굶주림의 땅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그걸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이 안 된다. 측은지심이 없는데 어찌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 아니면서 무슨 정치를 한다고 하겠는가?
남에서 살만한이들은 재벌.고위 공직자.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