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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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출간
  • 송정로 기자
  • 승인 2013.10.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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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문체, 묵직한 울림... 인하대 박영신 교수 펴내

 

아버지딸 표지.jpg

 

  

“나는 자라면서 6.25 전쟁의 참혹함을

아버지 무릎에서 끊임없이 들어왔다.

셀 수도 없는 시체를 밟고 밟아,

평양에서 대구까지 목숨 걸고 오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후로도 대구를 떠나지 않으셨다. 글쓴이는 그 이유를 좀 컸을 때 알게됐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바지 오마니’에게 “만약 피난 가게 된다면 대구로 가십시다”라고 말씀드렸던 것이다. 조선 지도에 부지깽이로 찍어 선택된 대구. 그 때 처음 알게된 이남의 대구에서 아버지는 90세 넘게 사시다가 3년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박영신 글, 정유진 그림, 정신세계사)이 지난 9월 출간됐다. 간결하고 소박한 문체, 그러나 세대를 관통하는 묵직한 울림이 있는, 한 가족을 뛰어넘는 우리들의 ‘아버지’에 대한 가슴 저린 회고다.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엮어낸 이 책에는 일제와 분단 등 파란 많은 한국의 1900년대를 오롯이, 바닥에서부터 살아낸 아버지의 강인하면서 애달픈, 그리고 진실된 삶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들로 응축돼, 세태에 무덤덤해진 전후(戰後)세대들의 마음을 흔들며, 생각을 가다듬게 한다.

 

“일본 순사들이 3.1운동하다 잡힌 사람들의 상투를 끈으로 연결해 질질 끌고가며 칼로 마구 찔려 피흘리며 죽어가는 모습들을 어릴 때 동네 느티나무 뒤에서 바들바들 떨며 숨도 못 쉬고 보았지”

 

“이북에서 살던 집도 그대로 두고 이북에서 갖고 있던 돈도 그대로 두고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갑자기 빈손으로 내려왔다. 떠돌이 거지신세가 되어, 나중에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너희들마저도 그대로 두고 갑자기 빈손으로 떠나는 것임을 가슴 절절이 뼛속에 사무치도록 깨닫게 되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니까,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빼앗긴 나라의 뼈저린 체험, 피난 나와 대구역에서 빈 박스를 깔고 자며, 맨손으로 일어서야 했던 실향민의 고독과 슬픔, 몸에 밴 근면 성실. 그리고 강인한 의지는 더불어 이웃과 사회로, 국가로 헌신 승화되었다.

 

아버지는 과수원 농사를 지어 자녀를 교육시키고, 여력으로 수십년 동안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 수백명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때그때 돈이 허락되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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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수원의 밤을 밝히며]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과수원에 나갔다. 내가 대학생이 되어 아르바이트해서 처음 벌어본 돈으로 사드린 성경책. 과수원에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성경책을 읽으며 20년 동안 계속 밤에 조금씩 읽어 처음 부터 끝까지 여러 번 읽었다! 말씀하셨다" <그림 정유진>
 
 
“사진 속 빨간색 노끈을 발견하고는 엉엉 울었다. 몇십 년을 입어 소매가 하늘하늘 실오라기 나온 낡은 하늘색 잠바에 지퍼 손잡이마저 떨어져, 끼워놓은 손잡이용 빨간색 노끈! 아버지께서는 빨간색 노끈으로 지퍼를 끌어 올리고 내리시며 장학금 주고 경로잔치를 하셨구나”

 

아버지는 딸에게 깊고 넓으며, 조급하지 않은 사랑으로 가르치신다. 하루하루 자신의 삶은 그대로 자녀들의 교육이 되었다. 글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고 삶의 바닥에서 부터 자연스레 일궈 올라오는, 지혜가 살아있는 큰 교육이다.

 

“돈이 많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 그동안 살면서 수전노 같은 사람, 돈의 노예가 된 불쌍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바들바들 떨면서 돈만 지키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 사람들을 보았다.” “돈에는 두가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는 ‘죽은 돈’이고 또 하나는 ‘산 돈’이다. 욕심에 가득 차서 곳간에 쌓아 두기만 한다면 그것은 ‘죽은 돈’이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이면 그것은 ‘산 돈’이다!”

 

“고생을 고생으로만 받아들이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생을 올바로 받아들여야한다.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그것을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에이~아버지, 그게 말이 쉽지, 어디 쉬운 일인가요?”“그렇지만 고생을 슬기롭게 받아들여야,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옛날 내가 어릴 때, 평안남도 평원군 고향에는 쥐가 참 많았다. 보통은 쥐를 잡았지만, 때로는 잡지 않았지” “왜 잡지 않으셨어요?” “장독을 깨지 않기 위해서!” “...”

 

“동생은 유치원생, 나는 국민학생이었는데 산수 문제 푸는데 더많이 시간이 걸린 나. ‘우리 영신이는 날래 하기보다는 제대로 잘 한다!’ 제대로 잘 한다는 말이 사실인 줄 알고, 부족한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것, 아버지의 격려와 인내 덕분!”

 

글쓴이는 3년전 아버지를 보낸 후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가 그 어떤 교육이론 보다 값지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에서 하나하나 되살려 글로 옮겼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나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를 가감없이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책이 진실하게 완성되는 길은 나는 없어지고 아버지 말씀만 남아야 한다”며 책에 저자의 약력도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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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무신과 검은 실] "40년전 과수원 집 툇마루 앞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아버지 흰 고무신 찢어진 뒤축에 검은 실로 엉기성기 꿰메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기억해냈다. 내가 등록금과 책값 걱정 없이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흰 고무신이 검은 실로 꿰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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