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의 추억, 10주년 맞은 하품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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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의 추억, 10주년 맞은 하품영화제
  • 강창대 기자
  • 승인 2013.10.23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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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후남 교장 "우리 인생의 하품처럼 삶에 신선한 활력을 주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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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문화원 개원 10주년과 함께,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하품영화제가 오는 10월 24일(목)부터 26일(토)까지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상영관 4관(영화공간주안)에서 열린다. 하품영화제는 지역주민이 모든 과정에 참여해 꾸려지는 마을축제라 할 수 있다. 

하품영화제는 매년 새로운 주제를 선정해 기획된다. 올해는 ‘가족여행, 마을로 떠나다’라는 주제가 선정돼 마을 속에서 삶이라는 여행을 함께 보내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내용으로 영화제가 채워질 예정이다. 

하품영화제는 하품학교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회원들에 의해 꾸려지고 있다. 하품학교는 매년 5월 무렵에 참가자를 모집하며 새롭게 문을 연다. 이때 참여한 주민들이 직접 주제와 영화를 선정해 감상하고, 그때그때 영화평론가의 해설을 듣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이 자체적으로 영화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방식으로 하품학교가 진행된다. 

하품영화제 10주년을 맞아 민후남 하품학교 교장을 만났다. 민 교장은 10년째 하품학교와 영화제에 참여하고 있을 만큼 영화에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갖고 있다. 또, 그녀는 ‘꽃차’ 전문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가장 먼저, 영화제의 이름인 ‘하품’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하품은 몸이 노곤하거나 신선한 공기가 필요할 때 나오는 생리적인 현상이잖아요? 하품학교와 하품영화제가 우리 인생의 하품처럼 삶에 신선한 활력을 주는 활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하품학교, 하품영화제라고 정했죠.” 

“하품학교 개교 후 10년이 흐르는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간 것 같아요.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관에 가면 매번 하품학교에 참가했던 주민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곤 합니다. 처음에는 참가 인원도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품학교의 임원격인 ‘하품지기’라는 직책도 생겼고, 저는 교장을 맡게 됐죠.”

민 교장은 처음 하품학교가 열릴 때 자신이 네 번째 회원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평범한 주민들이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 영화를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제작하며 어려운 점은 없는지.

“매년 영화제에 참여하고 있지만, 촬영장비나 편집도구를 다루는 것은 항상 새로운 느낌이죠. 1년에 한 번 있는 일이니 도구를 다루는 게 쉽게 손에 익지 않아요.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사유진 감독님이 이런 기술적인 문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또, 회원들이 서로 제작에 참여하거나 도움을 줘 큰 힘이 됩니다. 제일 고민스러운 부분은 소재 발굴입니다. 이제 영화제가 10년째를 맞다보니 좋은 소재가 고갈되는 것 같아 고민스러워요.”

소재 발굴의 어려움은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이다. 민 교장은 이번에 어떤 작품을 출품했는지 물었다.

“좀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출품했습니다. 가족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혈연적 공동체로서의 가족이 아니죠. 하품학교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회원 가운데 지적장애인이 세 명 있습니다. 이들이 생활하는 그룹홈이 제작품의 소재입니다. 물론, 그 세 친구가 주인공이고요.”

내용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스포일러가 안 된다면 일부 소개해줄 수 있는지.

“그룹홈은 지적장애인 친구들에게 참 좋은 울타리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곳에 언제까지나 머물 수는 없어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립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녹록치 않은 일이에요, 지금까지 우리사회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계에 도움을 주는 것이 전부였으니까요. 그들도 다양한 욕망이나 꿈을 갖고 있어요. 이번에 출품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가 이 친구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담았어요.” 

쉽지 않은 문제를 소재로 다룬 것 같다. 영화에서는 희망적인 결론을 볼 수 있나.

“결론은 밝지 않아요. 이 친구들이 이겨내야 할 것이 참 많은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화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희망적인 면이 없지는 않아요. 하루는, 이 친구들을 보살피고 있는 복지사 선생님이 ‘퇴직한다면 꽃을 가꾸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런데 마침, 저는 꽃차 강사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해 밝은 사람이죠. 만약, 복지사 선생님이 이 친구들과 꽃을 가꾸는 일을 한다면, 내가 수요를 창출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은 논의 단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발견한 것 같아 기쁩니다.”

10년째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지.

“제6회 하품영화제의 주제가 ‘아버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세상의 하나뿐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출품했죠. 당시, 군인 출신인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으셨고,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위해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 11명이 캠핑카를 빌려 3달간 다닌 여행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했습니다. 아버지는 여행을 다녀온 후 임종하셨죠. 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이 담긴 만큼, 이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품학교와 하품영화제를 하며 재미있는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

“늘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넘쳐납니다. 그래서 하품학교와 영화제를 통해 매번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영화를 좋아하는 연령층이 다양하기 때문에 하품학교 참가자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부터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까지 다양합니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역시 컴퓨터나 카메라 등 제작 도구를 다루는 기술을 쉽게 습득하고 잘 활용합니다. 어르신들은 삶의 경험이 풍부한 만큼 다양한 이야기 소재를 갖고 있죠. 이런 구성원들이 팀워크를 이루어 활동을 하면서 연령을 초월한 공감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또, 하품영화제가 10년이 되다 보니, 이곳 출신의 영화감독을 두 명이나 배출하기까지 했죠. 한 사람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또, 한 사람은 대학에 진학한 후 영화동아리에 들어가 하품학교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보람이라면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직접 영화를 만드는 일이 민 교장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영화를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니 여기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보람 있고 행복한 일입니다. 또,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럽고요. 누구나 많은 꿈을 갖고 있지만, 꿈이란 유효기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그때 했어야 하는 일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걸 누리며 살지는 못하죠. 그러나 영화는 꿈으로만 남아 있던 또 다른 삶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품학교 교장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우리 주변에는 하루만 지나도 사라지는 것들이 참 많아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떠나죠. 남구는 구도심이다 보니 이곳에 대해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이들이 먼 훗날 이곳을 다시 찾을 때, 마치 마을 어귀의 오래된 나무처럼 하품학교와 하품영화제가 그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되살려줄 수 있는 존재로 오랫동안 남길 바랍니다.” 

10월 24일부터 열리는 하품영화제에서는 ‘해피해피브레드’와 ‘더트리, 반딧물이정원, 세상의 모든계절, 인어베러월드’ 이렇게 5편의 테마영화가 상영된다. 그리고 주민의 영화해설과 깜짝 퀴즈, 행운권 추첨이벤트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하품영화제의 하이라이트는 주민이 직접 촬영하고 제작한 6편의 주민영화 상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주민영화로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룬 극영화 3편 ‘가족여행, 금모래빛, 정여사’를 비롯해 다큐멘터리 ‘우리들의 얼굴’ 등의 작품이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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