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인의 삶을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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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천인의 삶을 되살렸다"
  • 이혜정
  • 승인 2010.08.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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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웅규가 세운 '인천근대박물관'


취재 : 이혜정 기자

'100여년 전 인천인의 삶이 다시 살아났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진귀한 옛 생활물건들을 선보이는 '인천근대박물관'(관장 최웅규).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 버려진 '허름한' 옛 물건들을 전시해 인천의 역사를 전하고, 지나간 추억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곳이다.

'개화기' 인천의 모습

'인천근대박물관'은 생활용품 수집 전문가인 최웅규 관장이 40여 년 동안 모아온 수만점의 귀중품 중 엄선된 1천 여점의 물품을 전시했다.

오는 13일 정식으로 문을 여는 '인천근대박물관'을 찾았다.

여기에는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서구문물이 들어오면서 전통 생활양식이 서구것으로 변하는 시기의 물품들이 다양하다. 역사성과 재미가 있는 이야기가 깃든 생활자료들인 것이다.

1920년도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나팔스피커와 라디오, 100년 전 일본에서 만든 치약과 칫솔, 비누와 비누갑, 1886년 제조된 망원경, 1884년 한국 최초의 우편행정관인 우정총국에서 처음으로 발행한 5종 세트 우표, 이발기구 및 각종연장, 세창양행 물감 상표, 19세기 말 인천 영국영사관에서 사용한 영국제 대형장식장 등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개항과 함께 당시 청인들은 인천 중구 선린동 인근에 살기 시작하면서 1905년 '공화춘' 중국음식점을 세웠다. 자장면의 발상지이기도 한 '공화춘'에서 1950~60년대 사용한 젓가락, 중국자장 항아리, 국수틀을 비롯해 중국옷 등 인천에 터를 잡고 살던 화교들의 생활용품도 볼 수 있다.

이밖에 인천의 역사가 묻어 있는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인천대한성냥, 경인사업사 성냥, 일제 시대 인천광고용 성냥, 조선인천 성냥 등 성냥의 시발지로 불리는 '인천의 성냥'들이 나열됐다. 그 당시 인천은 동구 금곡동과 송림동 지역의 500여 가구에서 성냥갑을 만들어 공장에 납품을 하는 등 우리나라 성냥의 역사를 만든 곳이다.

최웅규 관장은?


'인천근대박물관' 최웅규 관장.

"저는 행복한 사랍입니다. 수집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박물관을 차렸기 때문이죠. 그동안 생활물품을 모으면서 반드시 박물관을 차리겠다고 다짐했는데, 마침내 이뤘습니다."

최웅규 관장은 40여 년 동안 생활용품을 모아온 '수집가'이다. 최 관장은 사람들이 없신여기던 생활용품에 눈길을 돌려 수집을 해왔다.

하지만 생활용품만 모아오진 않았다.

"서민들 기억 속에 새겨져 있지만 이제는 사라진 것, 또는 초창기 모습에서 변해버린 것들을 모아왔어요. 이 물건들은 결국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고, 교육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어서 아주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저는 취미생활 전도사죠. 거창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라고 그래요. 그래서인지 사람을 처음 만나면 '취미가 뭐죠?'라고 묻고, 만약 취미가 없다고 하면 특정 테마를 골라 수집하라고 해요."

옛 물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얘기다.

최 관장은 처음에는 고가의 골동품을 주로 수집했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비싸 형편에 맞지 않고, 소유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쉽게 모으고 즐길 수 있는 생활물건을 수집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그가 처음으로 모으기 시작한 생활물건은 35년 전 서울 인사동 고서점에서 발견한 교과서 등 헌책들. 그 이후 태극기, 영화포스터, 가구, 사진 등 품목별 수집을 비롯해 5.16, 일제시대, 인천관련 자료 등 주제별 수집을 해왔다. 그는 이런  자료를 갖고 국‧내외 큰 전시관에서 70회나 전시를 했다.

최 관장이 수집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삼양라면 봉지와 인천 생산 '스타사이다' 병 상표를 구하게 된 사연이다. 삼양라면 봉지의 경우 고향인 충청도에 갔다가 한 할머니가 집에서 씨앗봉지로 쓰던(1964년 제조마크가 찍힌) 걸 발견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1950년대에 제조된 스타사이다 병 상표를 헌책방에서 우연히 찾았다.

그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생활수집가다. 2008년에는 경기도 분당의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에 100여 점을 선보인 '최웅규 전시관'까지 마련했다. 

최 관장은 "역사적‧문화적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인천의 개항장 역사가 살아 있는 중구에 인천근대박물관을 마련했다"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옛 생활‧역사를 배울 수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추억을 회상하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중구 차이나타운 화교학교 정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인천근대박물관'은 어른 3천원, 청소년 2천원의 관람료를 받는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오후 7시까지다. 휴일은 설날과 추석연휴.

▶ 인천을 대표하는 수집품들
 


성냥의 시발지인 인천.
1920년대 동구 금곡동에 성냥공장이 들어서면서
'성냥'이 유명세를 떨쳤다.



1890년대 인천 영국영사관(현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사용한 장식장.
100여년 전의 물건임에도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보존돼 있다.

 

현대적 의미의 송덕비.
1965년 인천 미림극장 사장인 고은진이 사비를 들여 송림동 주민들에게 계단을 만들어주었다.
이에 송림동 주민들은 감사에 대한 보답으로 기념비를 세웠다.



일제강점기 때 사용한 이발기구 셋트.


영국제 모자.


일제강점기 때 사용한 전화기.


일제강점기 때 사용한 선풍기.


19세기 말 사용한 축음기.


인천에서 수집한 일제강점기 때 사용한 사무용 필기구와 인천명문이 들어가 있는 주판.
맨 오른쪽에는 1885년 영국제 만원경.


19세기 말 약연, 수술도구, 약봉지, 각종 약병, 검안기구 등 의학자료들.


일제강점기 때 사용한 다리미와 연두.


1888년 인천 각국 조계지도.


1898년 구한말 인천 호적표.


19세기 말 사용한 벽걸이 자석식 전화기.


19세기 말 사용한 싱거 미싱.



19세기 말 사용한 언더우드 타자기.



100여년 전 사용한 머구리(출처 미정)와 배키(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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