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기요치카(小林淸親)라는 화가가 1882년에 그린 <조선대전쟁>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림 오른쪽에는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공사를 비롯한 일본 외교관이 모습이 보이고, 왼쪽에는 ‘조선 왕성’, ‘인천부’, ‘제물포’ 등의 지명 아래 갓을 쓴 조선 병사들과 흰 옷을 입은 일본 병사들이 백병전을 벌이고 있다.
『조선대전쟁』(1882년) 임오군란 당시 일본공사관을 습격하는 조선군과 맞서 싸우는 하나부사 공사와 일본군
이 그림은 일본 근세 이후 근대에 걸쳐 널리 제작된 ‘우키요예(浮世繪)’라는 형식의 풍속화이다. 그림의 내용을 보아 1882년에 발생한 임오군란(壬午軍亂)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조정이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우대하고 옛 군인들을 차별한 데에서 발생한 이 사건이 7월19일 일본 공사관을 공격하면서 국제적인 사건으로 비화했다. 조선에 대해 경제적·군사적으로 간섭할 명분을 찾던 일본은 이러한 조선 병사의 일본 공사관 습격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전쟁 분위기를 한껏 고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 인천광역시 작은박물관 지원사업으로 이루어지는 인하대박물관(관장 이영호)의 시민강좌 『인천의 바다와 섬 바로알기: 갈등과 충돌의 인천해역』의 세 번째 강좌가 지난 25일 열렸다. 이날 강좌에서는 <조선대전쟁>과 같이 19~20세기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시각을 보여주는 다양한 프로파간다가 그 실물과 함께 소개됐다. 이날 강사로 나선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김시덕 교수는 《일청조선 전쟁기》(1894년), 《한성지잔몽》(1895년), 《일청한 전쟁기》(1894년) 등, 청일전쟁, 러일전쟁 관련 소설과 판화, 포스터, 팜플렛 등을 보여주며 강의에 나섰다.
이들 프로파간다 속에는 진구코고의 삼한정벌 전설로부터 시작해서 임진왜란을 거쳐 한일병합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수 천년 간 계속하여 이루어졌다는 거짓 논리가 일관되게 숨겨져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아울러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전쟁’으로 합리화시켜, 적어도 청일전쟁 시기부터는 민간인에 대한 대량 학살을 부정 내지 축소 은폐하는 선례를 수립하기까지 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갑신정변의 일본 측 배후였던 이노우에 가쿠고로(井上角伍郞)가 저술한 《한성지잔몽》의 삽화에는 갑신정변 당시 인천으로 도피하는 중에도 여성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일본 신사와 피난하는 일본인에게 만행을 저지르는 조선·청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대비되고 있다. 이는 ‘문명’ 일본과 ‘야만’ 조선·청나라를 강조하므로써 이들 지역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작가의 숨은 의도가 다분히 표현된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좌)풍속화보 『한성지잔몽』(1895년); 갑신정변 당시 제물포에서 벌어진 조선인들의 일본인 학살을 묘사하고 있다. (우)『百撰百笑』;청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이 인천해역에서 적의 함대를 물고기 잡듯이 쓸어담았다고 풍자하는 만평
특별히 이번 강의에서 김 교수는 그 동안 자신이 수집한 수십 건의 판화와 지도, 팜플렛 등 실물 원본 자료를 공개해 수강생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김 교수는 "이들 프로파간다 속에는 인천을 한 번도 오지 않은 일본인이 오로지 머릿속에서만 상상하여 그린 모습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며 차후 자신의 연구 과제로 삼을 예정임을 밝히기도 하였다.
인하대박물관 시민강좌는 6월 1일 제4강을 마지막으로 전반기 강좌를 종료하고, 8월 말부터 새로운 후반기 강좌로 이어진다. 제4강은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김보영 박사가 “정전협정의 유산, NLL”을 주제로 한다. 오후 6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며, 장소는 인하대학교 60주년기념관 101호이다. 문의전화 032) 860-8260.
<청일, 러일전쟁기의 판화 자료를 살펴 보는 수강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