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에서 풀 냄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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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서 풀 냄새 나"
  • 김인자
  • 승인 2018.08.0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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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주간보호센터의 여름방학



연일 37~8도를 오가며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는 뉴스가 뜨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무더운 여름날 심계옥엄니가 다니는 주간보호센터인 치매센터가 5일 동안 여름방학을 했다. 덕분에 나는 5일 동안 심계옥엄니의 껌딱지가 되어 엄니가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드시는 한밤중까지 진종일 엄니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방학1일차


"엄니,우리 방학도 했는데 어디 시원한데 가서
맛난거 먹고 놀다오까아?"
"집떠나믄 고생이다. 이 무더위에 어딜 가냐? 뉴스봐라. 너무 더워서 사람이 다 죽는댄다.
집에서 그 돈으로 편하게 시켜먹자."
"기분이 같은가아?"
"기분은 다 마음 먹기 나름이다."


방학2일차


점심으로 국수를 삶아 비빔국수를 해드렸더니 울 심계옥엄니 맛있게 드시고 오수에 드셨다.
쓰던 글이 있어 엄니 주무시는 틈에 얼른 마무리 해야지하고 한참 정신없이 글을 쓰고 있었다. 낮잠을 즐기시던 심계옥엄니가 어느 틈에 일어나셔서 뭔가를 하고 계셨다.


"엄니, 언제 일어나셨어?"
"좀전에 일어났다. 너는 다했냐? 오래 컴퓨터 디다보고 있음 안좋다드만. 눈 애껴라. 허리도 션찮음서 멀 그리 컴터앞에 코박고 진종일 그러고 있냐? 나 잘 때 너도 좀 자지."
"알았어요. 엄니. 근데 엄니는 뭐햐?"
심계옥엄니가 사탕수수 껍질을 까고 계신다. 이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엄니, 이 더운데 그걸 왜 까고 계셔? 그냥 둬요. 먹을 때 까먹음 돼."
"이 귀한 걸 그냥 내뿌러 둬?"


친구가 보내온 사탕수수
경비 아저씨들이랑 윗집 앞집 나눠드리고 어떻게 까는줄 몰라 한구석에 밀어두었던 사탕수수를
심계옥할무니가 보셨다.
"엄니 잘 까져?"
"잘 까지나 니가 어디 한번 까봐라."


방학 3일차


심계옥엄니가 아침부터 바쁘시다.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시느라 바가지에 물을 떠서 지팡이로 짚고 왔다갔다하시는데 엄니얼굴에도 땀 바닥에도 물 투성이다.
"엄니, 내가 줄께요."
"둬라. 내가 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데 부엌에서 베란다까지 왔다갔다하며 바가지에 물을 떠서 화분에 물을 주는 심계옥엄니.
"엄니, 그럼 베란다 수도에서 물 받아서 바로 화분에 주면 되는데. 부엌에서 부터 물받아서 가지않아도 되고. 그럼 엄니 편하실텐데."
"그걸 내가 몰라서 이럴까봐? 나 다리 운동하는거다. 집에만 있었더니 다리가 잘 안걸어져서."
"엄니 그렇게 깊은 뜻이?"하며 장난스레 엄니 손을 잡으니 "야가 왜 이러냐? 물 쏟아질라." 하시며 또깍또깍 지팡이를 짚으며 부엌에서 베란다로 연신 물바가지로 물을 날라 화분에 물을 주는 심계옥엄니.조심조심 걷는다해도 한 손으로 물바가지들고 한 손으로 지팡이 짚고 걸으시는 심계옥엄니 거실바닥에 물이 떨어져 심계옥엄니 걸으시는 그 행보가 여간 위험한게 아니다. 물이 바닥에 떨어져 지팡이 짚고 걸으시는 엄니가 혹시라도 미끌어져 넘어질까봐 나는 불안해서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수건 두 개를 들고 엄니 뒤를 따라다니며 바닥에 떨어진 물을 연신 닦았다. 그래도 마음은 불안하다. 엄니가 넘어지실까봐.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시는지 심계옥엄니 또각또각 지팡이 짚고 물바가지 들고 화분에 물주러 가신다.


방학 4일차


"엄마, 도시락에 뭐 넣었어?"
"점심은 누룽지탕, 저녁은 새우볶음밥. 왜?"
독서실서 공부하는 딸아이에게 매일 도시락을 두 개씩 싸주는데 아이가 도시락 하나는 먹지않고 그대로 남겨왔다.
"밥 왜 남겼어?"
"밥에서 풀 냄새 나. 새우볶음밥은 간신히 먹었는데 누룽지탕은 풀냄새나서 도저히 못먹겠어서 남겼어."


풀냄새가 난다고? 풀냄새가 왜 나지? 아이가 그 말을 할 때는 이유를 몰랐다. 그러다 도시락을 꺼내 닦는데 검정쌀만 아이가 죄 골라놨다. 내 어릴적 엄마가 밥에 콩 넣으면 콩 먹기싫어서 콩만 골라놓은 것처럼. 누가 내 딸 아니랄까봐 이런 것도 닮냐하며 웃으며 아이가 골라놓은 검정쌀을 꺼내 음식물 쓰레기통에 담는데, 이런! 아이가 검정쌀이라고 골라놓은게 검정쌀이 아니고 결명자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쌀을 씻어 냉장고에 넣어두는 심계옥엄니가 결명자를 검정쌀인줄 알고 현미랑 섞어 씻어둔 것을 나는 아무 생각없이 흰쌀이랑 섞어 밥을 한거다. 에고 지난번에도 울심계옥엄니 결명자를 검정쌀인줄 아시고 현미와 섞어 씻어놓으셔서 내가 밤새 그걸 골라내느라 애먹었는데 울엄니 깊숙히 넣어둔 결명자는 어찌 찾으시고 또 섞어 씻어놓으셨다냐?


"검정쌀 사와겠다." 심계옥엄니가 쌀을 씻으며 말씀하신다.
"예, 엄니" 나는결명자를 숨켜둔 씽크대 맨 위칸을 올려다보며 대답을 했다. 그러자 울 심계옥엄니 "근데 내가 검정쌀 좀 남겨둔거 같은데 왜 없지? 거 이상하네. 병째 없어졌다."
심계옥엄니가 결명자를 찾아 또 씻으실까 걱정이 된 나는 그 다음날도 엄니뒤만 졸졸 따라 다녔다.
"엄니, 좀 쉬셔"
"쉬기는 아이고 구석구석이 전 손댈거 천지여"
바깥에 나가 맛난 외식 한 번 못해보고 션한곳에 가서 땀 한번 식혀보지도 못하고 심계옥엄니와 심계옥엄니 껌딱지의 짧고 긴 여름방학을 이렇게 끝이 났다. 에구 더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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