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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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욕심이다
  • 유병옥
  • 승인 2020.07.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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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유병옥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회원

나는 10년 넘게 함께 운동하던 선생님들과 더 이상 운동을 계속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겨 그 운동을 그만둘 때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함께하던 여덟 명이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년 전 그 모임에서 일박 이일 강원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나는 모처럼 집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에 한껏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교통편은 S 선생님과 K 선생님의 승용차에 사는 곳이 비슷한 네 명씩 각각 타고 가기로 하고 호강스러운 여행길에 올랐다.

중간 휴게소에서 두 대의 차가 만나서 간단한 점심을 같이 먹고 이른 저녁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어갔다. 그날 저녁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그저 회원들과 즐겁게 지낼 일 뿐이다. 나름 호사스러운 저녁 만찬 후 숙소에서 모두가 “하하. 호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근처의 아름다운 경관을 둘러본 후 점심을 먹고 귀가하기로 했다. 점심은 가볍게 먹자고 막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모임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선생님께 이번 점심 값은 내가 지불하겠다고 했다. 국수를 먹은 다음 점심 값을 계산하려고 안내데스크로 갔더니 벌써 A 선생님이 계산하셨단다. 나는 그 순간 떨떠름하고 개운치 않은 기분이 되었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회원들에게 무언가 사 줄 것이 없을까? 하고 기회를 노려보았으나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한채로 여행을 끝냈다.

금년 이른 봄 어느 날 우리 회원중에 바느질을 아주 잘하시는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점퍼스커트를 하나씩 만들어 주시겠다고 해서 여섯 명이 용현시장에 있는 옷감 집으로 갔다. 맘에 드는 옷감을 한 가지씩 고른 우리는 그 집 앞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옳다! 이번에 내가 점심을 사자’생각하고 자리에 앉기 전에 “오늘 점심은 제가 살게요”하고 말했더니 벌써 A 선생님이 지불하고 들어오셨단다. 순간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아니 A선생님! 왜 선생님은 제가 내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먼저 내세요?”하고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제일 위로 외손자를 시작으로 한 살씩 차이나게 친손자, 외손녀 순으로 세 명의 손주를 두었다. 그 애들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은 우리 내외가 정년퇴직 한 후였으므로 그때부터 우리의 관심은 오로지 손주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에 있었다. 학교에 적응은 잘하는지,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지 등등이 궁금하고 참견하고 싶어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거나 데리고 오게 해서 맛있는 점심이나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사주는 재미로 살았다. 내 아들과 딸이 한참 학교에 다닐 때는 그 애들을 돌볼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없이 보냈던 아쉬움을 손주들에게서 채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제일 위인 외손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식을 6년간 해마다 쫓아다녔고 그날 저녁 식탁에서 우리 내외는 졸업식에서 본 손주의 의젓한 모습을 다시 상기하면서 손주들을 보는 즐거움을 6년간 누렸다.

지난 오월 어느 휴일, 제일 큰 외손자가 바쁜 가운데 외할아버지께 인사드린다고 집에 왔었다. 모처럼 딸네 식구들과 점심을 먹고 외손주와 손녀에게 용돈을 좀 주려 하니 외손주는 자기도 이제 돈을 번다고 극구 사양을 하였다. ‘아! 이제는 이런 기쁨도 점점 없어지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순간 갑자기 며느리의 친정 아버님께 우리가 너무 미안한 짓을 했다는 것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며느리는 딸만 3형제를 둔 집의 맏딸이다. 안 사돈께서는 아들이 결혼하기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바깥사돈어른은 결혼하지 않은 둘째 따님과 같이 아들이 사는 성남시에서 살고 계셨다. 딸만 삼 형제를 기르신데다가 혼자 외롭게 사시는 외할아버지에게 외손자는 누구보다 귀한 손자였을 것이다. 그런 외손자의 졸업식에 당연히 가보고 싶으셨을 터인데, 우리는 멀리 떨어진 인천에 살면서 손자와 같은 성남시에 사시는 외할아버지를 한 번도 배려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졸업식 때마다 우리만 참석한 것이다. 생각할수록 얼굴이 달아오른다. 지금 뒤늦게 후회해도 바깥사돈께서는 이미 사 년 전 갑자기 심장마비로 작고하셨다.

큰 액수가 아니어서 별 어려움 없이 돈을 내고 나 스스로 만족하고 싶어하는 나의 허세. 그 기회를 남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해서 화를 내는 나의 이기심, 소중한 존재를 나 나 혼자 독차지 하면서 남을 배려하지 않은 나의 욕심을 이제야 반성한다.

노년이 되어서 여러 물성적인 것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내심 뿌듯해 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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