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고양이에게 받은 뜻밖의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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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고양이에게 받은 뜻밖의 보은
  • 이세기
  • 승인 2022.04.15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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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4) 고양이의 보은
이세기 시인의 장편(掌篇)소설 '북창서굴'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손바닥 크기 분량의, 산문도 되고 소설도 되는 '이세기의 북창서굴'은 격주로 연재하지만 매회 독립적인 내용으로 엮어갑니다. 인천의 도시 골목에서 일어나는 애잔하고 쓸쓸하며, 때로 아름답기도 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입니다. 

 

 

고양이의 보은

 

별일이군!

오늘 아침에 현관문을 여니 고양이가 쥐를 가져다 놓았다.

잿빛 털에 윤기가 흐르는 새끼 생쥐였다.

대가리가 달랑 잘린 쥐의 몰골이 흉측했다.

벌써 몇 번째야!

제 먹을 것도 없을 텐데, 꼬박꼬박 세를 바치네. 그것도 맛있는 몸통을 바치다니!

어느 날은 몸통이 사라진 대가리를 갖다 바쳤다. 집을 찾아오는 길고양이에게 장독대에 물과 밥을 주었을 뿐이었는데. 그것도 가끔 베푸는 호의일 뿐, 평소에는 서로가 그저 저만치 바라볼 뿐이었다. 하긴 고양이와 나는 애초부터 서로 다른 종족이니 유감스럽거나 악감정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고양이는 가끔 햇빛이 좋은 날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한가로이 거닐거나, 살구나무를 타기도 하다가, 사람 따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독대에서 밥을 먹고 세수를 하며 태연하게 낮잠을 청했다.

지난밤부터는 장독대에서 새끼 고양이가 몹시 울었다.

애가 타듯 울어대기 시작한 울음은 이틀째 자정 가까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밥을 달라고 보채는 것인지, 어미를 찾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가서 데려와야 하는지 그냥 두어야 하는지, 몇 번이고 망설이며 안쓰럽게 어둠이 켜진 창밖을 숨죽여 내다보았다.

손을 탔나? 버림받은 고양이는 죽는다는데….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가?

항아리가 깨지듯 울어대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별의별 생각에 장독대를 지켜보았다. 도무지 울음을 그칠 모양이 아니었다.

설마, 우리 보고 키우라는 건가?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담장 아래 조릿대 울타리 밑에서 새끼 고양이가 울길래 가보았더니, 탯줄을 겨우 끊은 고양이가 핏기 어린 네 다리를 버둥대며 울고 있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버렸는지, 아니면 손이 타지 않도록 가져가다가 잠시 놓아두었는지, 기를 쓰고 울었다. 가만 보니 주둥이에 새까만 점이 찍힌 것으로 봐 필시 이웃집에서 키우던 어미 고양이 새끼 같아서 보자기에 싸 집주인에게 가져다주었다.

자기가 낳은 새끼를 버리고 가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그 일로 새끼 고양이의 이름이 어처구니가 되었다.

다 자란 어처구니는 어미를 닮은 암컷 고양이었다. 태를 사람의 손으로 벗겨낸 것이 탈이 났는지 어처구니는 뒷다리를 몹시 절었다. 걸을 때면 뒤뚱이며 토끼처럼 뛰었다.

몇 해 지나 이웃 주인집은 사방 담장에 그물 울타리를 치고 대문 밑을 막아버렸다. 어미 고양이가 죽고 어처구니가 그 사이 커서 새끼를 몇 번 낳자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아니면 집 곳곳을 헤집고 다니는 모양이 싫었는지 모르겠으나, 집주인이 능청이라고 불렀던 어처구니를 더는 키우지 않고 내쫓아 버렸다.

집고양이인 어처구니는 몇 날 며칠을 대문 입구에서 쪼그려 앉아 집안을 그리워하는 기색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대문 처마 밑에서 쥐 죽은 듯 웅크려 있었다. 늦은 밤에는 앞발로 철대문을 긁는 소리는 타들어 가듯 끊이지 않고 이어지곤 했다.

집주인이 나와 저리가! 라고 발로 땅을 치며 위협하듯 쫓아내면 어처구니는 여윈 몸과 저는 다리를 하고 놀란 토끼처럼 깡충깡충 솟구치며 뒷다리는 허공에 뜬 채 달아났다. 멈칫 몇 번 뒤를 돌아다보다가도 몇 발자국 못 가서 푹석 주저앉았다가 다시 토끼처럼 놀라 줄달음질 쳤다. 그러고 나서 골목 끝에서 가만히 쫓겨난 집의 대문을 쳐다보곤 했다.

숨바꼭질하듯 그렇게 몇 날을 대문에서 울던 어처구니는 내심 포기를 했는지 찾아오는 것도 잦아들더니 결국 거처를 옮겼다. 날이 추워져 갈 데가 없는 어처구니에게 지하실을 빼꼼 열어주자 그곳에서 겨울을 났다. 날이 따뜻해지면 지금은 쓰지 않는 장독대 위 버려진 개집 안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곤 이러구러 이따금 자신을 닮은 코 주변이 새까만 새끼를 낳았다.

혹시, 어처구니가 낳은 자식이 아닌가?

그러게.

어처구니는 새끼를 낳으면 장독대 위 개집으로 새끼 뒷덜미를 물고 옮기곤 했다. 새끼들이 눈을 뜨고 걸음마를 뗄 때까지 그곳에서 살며 새끼에게 젖을 주고는 늦은 밤 뒷골목을 배회하는 것을 가끔 본 적이 있었다. 때로는 올망졸망 새끼들과 보란 듯 마당에서 놀았다. 내어준 밥은 언제나 새끼들을 먼저 먹였다. 새끼들은 자라서 담장을 자유롭게 기어 올라갈 무렵이면 뿔뿔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처구니는 사람의 손을 탄 고양이지만 좀체 사람을 따르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두운 뒷골목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는 세상사에 대한 불만처럼 한 마디씩 내뱉었다. 내 몸 안의 어둠을 몰아내듯이. 어처구니는 수컷과 달리 암컷이라서 거처를 바꾸지 않았다. 무리에서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간혹 초저녁 이웃집 대문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지하실과 장독대에서 몇 해를 지냈다.

버림받은 새끼는 죽는다는데….

어디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사고라도 났나?

이 추위에….

더 지켜볼까? 아무래도 데리고 들어와야겠어, 하고는 아내는 자정 무렵 참다못해 장독대에 올라가 한 움큼도 되지 않는 새끼 고양이를 배냇저고리에 감싸 집 안으로 들어왔다. 주둥이가 새까만 새끼 고양이는 숨이 끊어질 듯한 울음이 사그라들었다. 콩알보다 작은 머룻빛 눈동자는 이내 빛이 풀리듯 가물거렸다. 여린 가슴은 미동이 없었다. 몸은 점차 굳은 채 식어 갔다. 그나마 남아있는 체온이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저런! 꿈을 꾸는가 보네. 깊은 잠을 자듯 새끼 고양이는 평온한 어둠 속으로 시나브로 떠났다. 짙은 어둠을 게워내는 열린 밤이었다.

기특하군!

불가사의하게 오늘은 또 뜻밖에 새를 보시받았다. 영리한 짐승은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고 하지 않는가. 인간이야말로 날 수 없는 포박당한 어처구니 없는 족속이니 순순히 사양하지 말고 받으라는 듯이 현관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날이 새기에는 아직 먼 듯한 밤. 뼛속까지 스며오는 삭풍을 이마로 받은 채. 먹이를 찾아 눈동자에 노란 불을 켜고서 두 눈을 부릅뜨고 산산이 흩어진 물방울 같은 새끼들을 부르며 깊은 밤 속으로 묘연히 걸어갔을 어처구니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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