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주안역 - 미군열차·전매청·염전·망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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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주안역 - 미군열차·전매청·염전·망둥이
  • 홍철기
  • 승인 2023.02.0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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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홍철기 / '실버미추홀' 실버기자
1950년대 주안염전(출처 네이버블로그)
1950년대 주안염전(출처 네이버블로그)

1910년 10월 21일, ‘메이지 43년 축현역과 부평역 간에 주안 정류장을 설치하여 일반 여객 영업을 개시한다.’ 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경인선에서 최초로 신설된 중간역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신설된 역은 주안역이 유일하다.

필자는 주안역 부근에서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경인선에는 서울, 용산, 노량진, 영등포, 오류동, 소사, 부평, 주안, 동인천, 하인천 등 10개 역이었고, 제물포역은 등교 시간에만 정차하는 간이역이었다. 그 후 1960년대부터 디젤기관차, 1974년 전철로 바뀌었고, 지금은 인천역에서 서울역까지 29개 역으로 늘어났다.

일제에서 해방되고 한국전쟁을 치른 직후, 경인선 철로는 단선(單線)이고 석탄을 때는 증기 기관차가 다녔다. 짐을 많이 실은 기차는 부평역으로 가다가 원통 고개 (지금의 동암역 근처)를 힘이 모자라 못 넘고 주안역으로 되돌아와서 화물열차 칸 일부 떼어 내든지, 2대의 기관차가 끌던지 석탄을  많이 때 화력을 높여 다시 출발하던가 하였다. 

유년 시절에는 미군 수송열차가 주안역에 정차하면 ‘헬로 기브 미 초콜릿’ 하면서 동냥아치를 하였다. 그러면 미군 병사가 초콜릿이나 껌, 커피 봉지 등을 던져 주었다. 커피 봉지를 뜯어서 진짜인 커피는 쓴 가루라 하여 버리고, 함께 들어 있는 설탕과 가루우유만 먹었다. 어쩌다 통조림이라도 얻으면 그날은 횡재한 날이다.

그 시절은 농사일 아니면 돈 벌 수 있는 직업이 별로 없어서인지 기관사와 짜고 석탄을 빼내 팔고, 기차 길옆으로 지나가는 송유관에서 휘발유를 훔쳐서 팔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기차에 실려있는 드럼통 아연 뚜껑을 빼다 팔기도 했다.

주안역 주위로 지금 남부역 쪽으로 신작로가 나 있었는데 길 양쪽으로 상점 등 가옥이 20여 채 있는 곳이 그 시절 인구 밀집 지역이다. 북부역 쪽으로는 검은색 목조건물, 지금 소래 염전의 소금 창고와 같은 큰 검은색 목조건물 3동이 있었는데 북쪽으로는 염전에 닿을 때까지 집은 없고 논만 이어져 있었다. 부평역 방향으로 300~400m 떨어져 기차 길옆에 시그널이 서 있고 좌측에 있던 전매청 건물이 기억난다.

염부(鹽夫)들이 전매청을 지나 천일염 창고로 레일이 있는 천일염 인력거를 밀고 오다 보면 주안역 부근에서 경사가 급해져 힘 들어할 때 꼬마들이 힘을 보태 밀어준다. 그 대가로 천일염을 창고에 부리고 나서 빈 인력거에 우리도 태워 준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염전까지 레일 위의 인력거를 타고 가서 6구(바닷물을 가두어 둔 저수지)에서 멱을 감고 하였다.

조금 커서는 망둥이 낚시를 하였다. 갯벌에 사는 갯지렁이를 잡아 소금에 절여서 통조림 깡통에 담아 허리에 차고 미끼로 썼는데, 대나무로 만든 낚시대는 2m가 조금 넘은 것으로 기억된다. 바늘 두 개와 납으로 된 뽕을 달아 허리쯤 차는 물속에 들어가 서서 낚시대 찌가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하고 있으면 잘도 물려서 재수 좋은 날은 300수를 한다. 잡은 망둥이는 매운탕도 끓여 먹고, 내장을 빼고 소금 뿌려 말려 두었다가 겨울에 구워 먹어도, 쪄먹어도 겨울철 최고의 요리였다. 그때 그 흔하던 망둥이가 전라도에서는 '운저리' 경상도에서는 '꼬시레기'라 하고 비린내 안 나는 생선으로 최고 대접을 받으며 회로도 먹는다는 것은 훗날 알았다.

갯벌에서 갯지렁이도 잡았지만 게도 많이 잡았다. 한밤 중에 솜방망이에 석유를 묻혀 불을 밝히면 게들이 낮처럼 갯 구멍으로 들어가지 않아 양동이에 담으면 그만이다. 단오에는 게들이 갈대에 매달려 그네를 탄다. 어느 해 겨울, 4구(바닷물을 저장해 놓는 곳)에 저장했던 물을 거의다 방류했는데 그날 밤 날씨가 무척 추워 수심이 얕은 바닷물이 얼어 버렸다. 함께 숭어가 떼로 얼어 죽어서 마을 집집마다 한 가마씩 숭어를 건져왔던 일도 있었다. 

필자가 중학교 때에 제물포 간이역 생겼는데 등교 시에만 열차가 정차하였다. 등교 시간에는 공짜로 기차를 타고 가서 마지막 열차 칸이 역구내 철조망 안에 들어가기 전에 기술적으로 내렸다. 기술이라야 상체를 뒤로 저치며 내리면 가던 속도에 의해 몸이 서지면서 뛰는 것이다. 철없던 시절 아주 위험한 짓을 한 것이다.

주안염전은 경인고속도로가 착공하면서 매립하여 주안국가산업단지가 되었고, 주안역에서 용화사 사이의 논도 매립하여 주안5동 주거단지로 변하였다. 주안역은 인천지하철2호선 환승역으로 하루에도 수만 명이 이용하는 역으로 변하였다.

아! 내 어린 시절 멱감던 바다와 망둥이 낚시터는 없어지고 공업화 정책에 밀려 주안국가산업단지로, 주거단지로 변했다.

“헬로 기브 미 초콜릿”의 추억이 생각나고, 멱 감고 낚시하고, 게 잡던 시절이 무척이나 그립다.

<이글은 2월초 계간 '실버미추홀'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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