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분! - 위대한 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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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분! - 위대한 평민
  • 연창호
  • 승인 2023.02.0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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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연창호 / 송암미술관 학예연구사
인천in이 전문가 칼럼 '문화읽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인천지역 문화지형을 살피고 나아갈 방향을 제안하는 칼럼을 6인의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매주 목요일마다 한편씩 이어갑니다. 필진으로는 전영우 인천생각협동조합 이사장, 연창호 송암미술관 학예연구사, 고동희 부평구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이상하 조각가, 김정화 문학평론가, 한은혜 은하수미술관 대표까지 여섯 분이 참여합니다. 

 

 MBC경남에서 제작한 <어른 김장하> 캡처

 

음력설 연휴가 지난지 보름이 지났건만 설연휴에 MBC경남에서 제작한 <어른 김장하>가 연일 SNS에서 화제다. 세상에는 숨어서 은밀히 평생토록 선행을 하는 일사(逸士)가 많다. 일사란 누구인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사람이요 큰 도움을 주고도 도움 준 사실조차 잊어먹는 사람이다. 오늘 소개하는 <아 그분!>은 진주의 어른으로 만79세의 김장하란 분이다.

필자가 여기서 김장하 어른에 대해 장황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이미 많이 알려졌고 그 어른을 소개하는 책 또한 나와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구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간단히 그분의 삶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분은 19세에 경남 사천에서 한약방을 열었고 이후 진주로 옮겨 남성당 한약방을 개원해 운영하다 작년에 문을 닫았다. 거의 60년을 한약방에서 외길 인생을 살은 셈이다.

그분의 인생의 좌우명은 무었이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이 그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돈이란 똥과 같다. 똥은 쌓아두면 악취와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장사나 사업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성공비결은 능력 뿐만이 아니라 입소문에 기인한다. 입소문은 바람을 타고 바람보다 더 빨리 사방에 퍼져가기 때문이다. 청년 김장하가 한약을 잘 지을 뿐만 아니라 싸게 판다는 소문이 남도땅을 울리자 그의 한약방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그 결과 젊어서부터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는 40세에 진주에 명신고등학교를 세워 몇 년 후 공립으로 전환시켰다. 그에게 남은 재산이란 한약방 하나였다.

80년대말 전교조가 출범할 때 전교조 소속 교사를 보호하고자 한 그의 결단은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양심의 결단이었다. 양심이 그의 하늘이자 그의 심판관이었던 셈이다. 그는 누구라도 다 도와주었으되 특히 가난한 학생들과 정의로운 시민단체를 우선하여 챙겨 주었다. 선택적 기부를 한 곳은 깨어있는 지역 신문, 여성인권단체 등이었다. 그는 철저히 이름 석자 내는 것을 꺼리었다. 다만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이루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든든한 기둥이 되고자 할 뿐이었다. 그는 버는 족족 돈을 모아 필요한 순간에 거름처럼 진주 지역에 뿌렸다.

진주는 백정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외친 형평운동의 발상지이다. 형평(衡平)이란 저울처럼 평등한 것을 말한다. 갑오개혁에 의해 신분제는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백정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었다. 필자가 형평운동을 언급하는 이유는 올해가 형평사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일 뿐만이 아니라 그분이 진주의 형평운동기념사업회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형평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인 백촌 강상호(1887~1957)의 묘를 발견해 그곳에 표석을 세워주고 무명의“작은 시민”이라고만 적어 놓은 분이 그분(?)이다. 그분이 그분(?)일 것이라고 추정할 뿐 진정 그분이 누구인지 그 누구도 모른다. 아마 지하에 묻힌 고인만이 진실을 알 것이다. 우리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이 시대의 일사를 잊어 먹고 산다. 하지만 일사는 여전히 존재한다. 백촌 선생은 뒤늦게나마 어느 작은 시민의 헌신으로 뒤늦게나마 자기 묘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인천에는 <아 그분>과 같은 분이 있을까? 아마 많이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분으로 유군성(劉君星1880~1947)이란 어른이 생각난다. 그분은 강화 출신으로 인천서 목재업과 정미업을 크게 한 분인데 평생 동안 몰래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었다. 그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현재의 인천 동산중고등학교를 1938년에 설립할 때 5인의 재정후원자 중 한사람으로 나와 있을 뿐이다. 유군성 어른과 같은 분들이 많이 있었건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지금도 인천에는 수많은 일사가 있지 않겠는가.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야 한다. 우리 사회를 살만하게 하는 것은 평범한 민중들이다.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의인의 덕(德)은 만리를 간다고 하지 않는가. 일사(逸士)야말로 위대한 평민이다.

아 그분이 흩어뿌린 거름에서 온갖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맺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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