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나의 첫 책,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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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나의 첫 책,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림책
  • 위원석
  • 승인 2024.04.0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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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책 이야기]
1화 : 제목 미상의 그림책 - 위원석 / 딸기책방 책방지기
책 읽는 건 좋지만, 독후감은 싫다. 나 또한 그렇다. 오랫동안 미루었던 독서 일기를 이제 쓰려고 한다. 내 기억 속에 반짝이는 책들을 차곡차곡 기록해 보자는 차분한 취지의 프로젝트는 아니다. 문득, 이미 무심히 잊었을 책과의 추억, 앞으로 망각할 책에 대한 기억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순서도 방향도 없이 마구잡이로 시작하는 나의 독서 일기가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책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면 좋겠다.

 

 

반백 년 전 어느 저녁, 어머니는 다섯 살 내 손을 이끌고 이웃집에 놀러 갔다. 커다란 방에 모인 마을 아주머니들의 호호 깔깔 다정한 웃음소리가 즐거웠다. 그것도 잠시, 또래 친구 하나 없는 그 집에서 나는 점점 무료해졌다. 누가 준 것인지 동전 하나를 쥐고 있었는데, 일 원짜리인지 오 원짜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 동전이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방 한구석에 앉아 바닥에 또르르 동전을 굴려 본다, 동전을 굴려 맞은편 벽까지 길게 굴려 본다, 아예 이쪽 벽 중간에서 떨어뜨려 저쪽 벽까지 또르르 굴러가게 하려 애쓴다… 다섯 살 아이는 동전에 몰입해 놀이의 규칙과 목표를 만들며 한참을 놀았다. 귀퉁이에서 말없이 잘 놀고 있으니 서른 살 어머니도 걱정이 없었으리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놀이 규칙이 위태롭게 바뀌어 버렸다. 방바닥에 누운 아이가 자기 얼굴 위에서 동전을 굴리고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낮은 위치에서 떨어뜨리던 동전이 점점 팔을 뻗은 위치까지 올라갔다. 이마나 뺨 위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좋았던 걸까, 반복적으로 굴리고 떨어뜨리던 동전이 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는 깜짝 놀라 숨을 꿀꺽 삼켰나 보다. 동전이 식도까지 넘어갔다.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아이의 소리에 어머니가 달려왔다. 처음엔 통증도 없었고 동전을 삼켰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어른들도 삼킨 동전이 위장으로 내려갔나 보다 하며 괜찮을 거라 했다. 그런데, 괜찮지 않았다. 어른들의 걱정과 안도가 끝나기도 전에 말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고 목이 무척 아팠다. 숨 쉴 때마다 피리 소리 같은 쇳소리가 나고 입가에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 놀란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이를 둘러업고 마을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문을 두드려 엑스선 촬영을 했다. 엑스선 사진에는 목 한 가운데 딱 걸려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동전이 찍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위험한 상황이어서, 작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처치가 없으니 빨리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반백 년 전, 우리 마을에 자가용이라는 것은 없었다. 자정이 다 되어 급하게 택시를 수배했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반백 년 전, 우리나라에는 ‘야간 통행금지’라는 것이 있어 밤 12시가 되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누구도 집 밖으로 돌아다닐 수 없었다. 서울로 향하던 우리 택시도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바리케이드 앞에 멈추었다. 통증이 더 심해진 나는 숨 쉬는 것도 힘들어지고, 출혈도 있었던 것 같다. 상황의 위급함과 어머니의 다급한 호소로 택시는 어찌어찌 여러 검문소를 통과하여 서울에 진입했다.

그곳이 미아리고개였는지 수락산 깔딱고개인지 기억할 수 없지만, 차도 사람도 없는 통행금지 시간에 전속력으로 도로를 달리던 우리 택시는 고갯길 끝에서 잠시 붕 떴다가 쿵 하고 땅에 닿았다. 그 순간, 목에 걸린 동전이 툭 떨어졌다. 서울 큰 병원에 도착해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서 위장으로 내려간 동전을 볼 수 있었다. 농담 같지만, 위기의 아이를 살린 것은 의사가 아니라 택시 기사였다.

이왕 서울에 올라온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친정에 들렀다. 큰일을 겪은 아이가 딱해서 외가 식구들이 선물을 준 것인지, 집으로 돌아올 때는 내게 없던 물건들이 생겼다. 옷가지며 장난감 같은 것이 있었겠지만, 기억나는 것은 딱 하나, 그림책이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림책이었고, 첫 번째 내 것이 된 책이었다.

툇마루에 앉아 그림책의 첫 장을 열었을 때 인상은 지금도 꽤 선명하다. 여러 가지 탈 것, 바닷속 다양한 물고기 여러 종류도 그려져 있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이 종이책 안에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신기했고, 거기에 그려진 그림 하나하나 정말 멋져 보였다. 텔레비전도 흑백 브라운관이었던 시절 빨갛고 노랗고 파란 색은 얼마나 생생했던지. 한 페이지 넘어갈 때마다 가족들이 읽어주는 글씨의 모양새도 신기했다. 어머니가 읽어 줄 때가 제일 좋았지만, 혼자서 그림만 보고 넘길 때도 나만의 상상을 책장 위에 펼칠 수 있어 즐거웠다.

꽤 오랫동안 애지중지하던 그 책을 언제부터 안 보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그 책의 이름이나 작가, 그 책을 낸 출판사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책이 선물한 기분 좋은 설렘과 쾌적함, 즐거움 덕분에 책과 친한 사람으로 자랐으니 얼마나 고마운 책인가!

이 글을 쓰면서 ‘50년 전 우리나라 그림책’ 이미지들을 검색해 보았다. 내 기억 속의 완벽한 그림책 모습은 아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일러스트도 어설프고 인쇄 기술은 조잡한 수준이다. 하지만 당시의 화가와 인쇄 기술자들은 자기들이 가진 최선의 것을 아이들에게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 같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면, 옛날 그림책의 엉성함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 엉성함의 여백 덕에 아이들의 상상력이 뛰어놀 운동장이 넓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제목을 기억했더라면 반백 년 만의 해후를 준비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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