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쓸쓸히 사슴뿔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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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쓸쓸히 사슴뿔을 기다린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4.3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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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팝 포엠 4월 시낭송회, <코끼리 주파수> 김태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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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 이야기를 들려줄 분은 김태형 시인입니다. 멋쟁이이고, 젊지만 등단한 지 꽤 됐습니다. 젊은 사람인데 참 독특한 시를 쓰는구나, 이렇게 자기 얘기를 하는 시인이 있구나 궁금했습니다. 오늘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기대됩니다.”
4월 30일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리스팝 포엠 주인장인 조정 시인이 김태형 시인을 소개하면서 시낭송회가 시작됐다.

“등단은 좀 일찍 했습니다. 20대를 멋모르고 지내다가, 최근 40대가 되면서 그동안 딱히 문학상을 받은 적도 없더군요. 올해 등단한 지 21년째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 나름 다양한 시세계를 펼치려고 했지만 마음에 차진 않습니다. 이래저래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1995년 민음사에서 나온 시집부터 최근 시까지 다양한 시로 이야기를 해나가겠습니다.” 김태형 시인은 스물두살에 계간 <현대시세계> 신인 공모에 당선되면서 시인이 됐다. 시집으로는 <로큰롤 헤븐>,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 <코끼리 주파수>, 산문집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이 있다. 첫 개인전 <어느 미친 사내와 천 개의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 시낭송회는 시인과 참석자들이 시를 읽고, 시인이 그 시에 얽힌 이야기와 시를 쓸 때의 감상과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진행되었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읽기 전에 시세계를 진단했다. “내 시를 돌아보니 시집 한 권에 다양한 기법, 형식, 세계관까지 폭넓게 다루었다. 현대사회의 문제들 또는 개인이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가 다 들어 있다. 첫 번째 시집에는 록, 전통신화, 연애시의 정수까지 혼란스럽게 보였다. 습작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 세계가 반영된 듯하다. 하나의 테마로 밀고 나갔을 때 효과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살면서 한 가지 주제보다는 여러 주제를 붙들고 살지 않나. 내 시세계는 다양한 차원에서 다룬다. 등단을 일찍 하니까 친구가 없었다. 지금처럼 잡지들이 많지 않은 때여서 또래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 세대가 맞닥뜨릴 수 있는 세대적인 과정이 없었다. 자본주의 측면을 많이 보여주는 때였지만 고민과 충격적인 면을 개인적으로 사유했지, 세대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솔직히 젊음을 분출하기에 바쁜 시기였다. 전통과 현대가 맞닥뜨리는 걸 내 시 안에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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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인의 자신만만함과 달리 세상은 조용했다고 했다.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잘 팔릴 거야' '문단이 발칵 뒤집힐 거야.' 하지만 세상은 조용하더라. 시간이 흘러 일자리를 얻고, 연애에 빠져 시도 못 쓰고, 의도와 달리 시를 쓰지 못했다. 그러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까 일 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일상은 흘러갔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누가 상을 타고 잘 나가는 게 부럽지 않았는데, 다만 내 자신이 글을 쓰지 않는 게 갑갑했다. 뒤늦게 반성했다. 하지만 언제나 쓰기만 하면 잘 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아무리 써도 안 되더라. 3,4년을 쉬었다면 그 시간만큼이 지나야 시를 쓸 수 있더라. 두 번째 시집은 첫 시집 이후 9년 만에 조용히 냈다.”

세 번째 시집에 대한 평가는 두 갈래였다. “사람들은 두 번째 시집까지는 첨단으로 다가오는 젊은 시로 많이 생각했다. 그러다 세 번째 시집인 <코끼리 주파수>는 언뜻 보기에 서정적인 시세계로 보면서 '갔구나' 하고 오해했다. 난 그게 거북했다. 깊이 보지 않고 겉으로만 판단하는 게 아쉬웠다.”

시인에게 '인도여행'은 시를 쓰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9, 10시간을 달려서 티베트 망명정부 있는 곳까지 가서 거기서 일주일 정도 지내다 오게 되었다. 주로 티베트인만 보다 왔다. 썩 재미있지 않았고, 새로운 세계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와서 일주일이 지나면서 인도 생각이 났다. 밤마다 한 편씩 쓰기 시작했다. 4, 5개월 동안 인도 시 50편을 썼다. 물론 너무 급하게 써서 반은 보완해야 한다. '시를 이렇게 빨리 쓸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은 무척 새로웠다. 올해 인도시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그런 경험을 해서인지 여행을 또 가고 싶었다. 그래서 '고비사막'을 다녀왔고, 역시 50편을 썼다. 인도시 쓸 때보다는 완성도에서 떨어지지만, 그만큼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후 시인은 고비사막을 또 다녀왔다. “더 보기 위해 간 게 아니라, 처음에 갔을 때 밤마다 은하수를 봤는데 내 싸구려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사진을 찍고 담기 위해 다녀왔다. 그걸 지난겨울 산문집을 냈더니 일반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시에서는 접근할 수 없는 독자와의 소통 장이 마련된 듯하다. 약 5개월 동안 행복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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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잠수함
“꽤나 에로틱한 시다. 잠수함이 그 뚱뚱한 몸으로 가라앉는 장면과 에로스 장면을 이야기했다. 잠수함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오르는 일이라 봤다.”

낙타의 짐
“낙타는 짐을 져야 낙타라고 생각했다. 도피는 내 삶의 과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타를 나와 동일시하게 됐다. 고비사막에 갔을 때 사람들이 낙타에 올라탔지만, 나는 타지 않았다. 낙타는 나 아닌가. 내가 나를 타는 게 말이 안 됐다. 하지만 두 번째 갔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타게 됐다. 아, 낙타 입 냄새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울렁울렁 힘들었다. 낙타도 말을 안 듣더라. 풀이 있으면 가다가 2,3분가량 뜯어먹는다. 가시 난 풀을 뜯어먹는데 그 소리가 참 경쾌하더라. 경쾌함, 싱싱함을 잊을 수 없더라. 그 이후로 낙타를 좀 더 바라보게 되었다.”

동백이 지고 나면
“동백은 꽃이 질 때 툭툭 떨어진다. 그때마다 이 시가 떠오른다.”

겉으로는 바늘잎 아래 앙상한 그늘을 빨아들여/ 숲은 더욱 푸르지만 어떤 나무들은 그 뒤에 숨긴 것들을/ 곧 숲의 가장 안쪽 그늘로 데리고 간다/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보다 넌 어디서 왔느냐고/ 내 등 뒤에 묻어온 한 점 서풍을 냄새 맡느라/ 큼큼 나뭇잎을 서걱거린다/ 제 울음으로 높이를 가늠하고는/ 그 높은 음역의 자리로 날아오르는 새들/ 거친 짐승처럼 앞발을 들어/ 내 어깨 위에 성큼 올려놓는 나무들/ 그 안쪽에는 나무들이 품은 마른 숲의 그늘이 있다/ 어떤 고요가 더 깊은 곳에 웅크려 있는지/ 그곳에 가려면 함께 마른 그늘로 서 있어야 하지만/ 되레 숲은 제 그늘을 불 질러 한 줌 재로 타오를 것이다/ 그러니 그 나무 뒤에는 서 있지 마라/ 큰 나무들이 앙상한 그늘을 내어 수런거릴 때/ 가장 안쪽 더 깊은 곳 어느 늙은 숲을 지날 때면

“내가 좋아하는 시다. 나는 '어디를 가느냐'라는 물음보다 '어디에서 왔느냐'라는 질문이 더 정겹다. 숲은 우주의 중심이다.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극적인 상태, 매우 추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야할 세계, 끌고 갈 세계를 사유하고 싶었다. 누구나 자기에 맞는 숲으로 들어갈 수 있다. 두 번째 시집에 있는 시인데, 참 좋아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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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신혼 때는 애도 어리고 집도 좁다. 침대를 해체해서 버리고 매트리스만 깔았다. 침대를 항해와 삶에 비유했다.”

마지막 상상
“세 번째 시집에 있다. 아이들이 갓난아이였을 때 썼다. 여기까지가 내 시세계를 일단락 지을 수 있다. 그 이후는 내 문학의 중간쯤 될 것 같다. 행복하게도 '시선집'을 내게 됐다. 행운을 얻은 기분이다. 시집 세 권이 나왔고, 한 권이 곧 나올 거고, 총 6권 분량 정도다. 한 시인이 평생에 시를 열심히 써서 열 권 남짓 낸다고 봤을 때, 중간쯤 된다는 기분이다. 세 단계로 봤을 때 중간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참석자 질문
“인도에 다녀와서 시를 썼다고 하는데 풍광보다는 내적인 성찰인가?”
“스님이 된 차창룡 시인이 '이 시는 일반적인 여행시와는 다르다. 다른 측면이 강하다'고 평해주었다. 낯선 풍광을 보고 쓴 것은 극히 드물다. 물론 배경은 인도의 풍광과 도시 문명이지만, 크게 보자면 '아름다움'이다. 그것의 실체는 무엇인지, 내가 무얼 찾아 왔는지 고민했다. 그러면서 순간마다 시로 만들 수 있겠더라. 예를 들자면, 다람살라에 갔을 때 일행이 사화와 망고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올 때 나도 거들었다. 길에서 원숭이한테 빼앗길까봐 감추고 돌아왔다. 그 과일은 푸석하고 맛이 없었다. 구석에 쌓아둘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새벽에 원숭이들이 습격해서(?) 다 가져갔다. 맛이 없어 내팽겨친 건데 빼앗긴 것 같았다. 사과는 물론 안주 과자까지 다 가져갔다. 그때 화가 나더라.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을 때 누군가 사과를 맛있게 깎아놨더라. 이 과정이 시가 됐다. 모든 상황에서 나의 헛된 욕심, 욕망, 소유욕을 말하게 됐다. 또 다람살라는 '트래킹'으로 유명한 곳인데 가지 않았다. 힘든 코스가 아닌가 슬쩍 빠졌다. 못 다녀와서 그곳이 더 그리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왜 거기에 못 갔을까?' 자체가 시가 되더라. 시는 특별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에서 나온다.”
“숲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겠다. 타지에 가서 2,3일만 지나면 설사가 나온다. 아주 급격하게 온다. 일행에서 빠져 숲속에 가서 볼일을 볼 때, 숲길에 가서 바지를 푸는 속도와 생리적인 현상이 내려오는 속도가 안 맞았다면 나는 원숭이가 사는 숲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숲이 없었다면 내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시가 '인도'라는 나라를 소재를 다룬 것은 비슷한 데가 많다. 하지만 차창룡, 고진하, 나는 독특한 시세계가 있다. 차창룡은 신화를 기반으로 인도를 풀어가고, 고진하는 영성과 깨달음, 예술가 측면이 시에 녹아 있다. 나는 여행이 특별한 곳이 아니라 공간만 옮겨왔다고 본다. 어디서나 동일한 시적 경험은 같은 것이다. 이곳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친밀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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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샤
“'옴'이라는 단어는 네 음절로 돼있다. 네 번째 음절은 '침묵'이다. 말이 없는 상태, 단절을 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침묵은 단절 상태가 아니라 '이어주는' 상태다. 우주는 한계를 뛰어넘는 단계다. 그 진리의 소리를 띵샤가 '옴'이라는 소리로 들려준다. 침묵이야말로 모든 생명을 이어주는 상태다. 내가 말수가 적은 편인 데다, 침묵에 대한 사유를 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침묵이 더 심해졌다. '침묵'은 언어를 태어나게 한다. 아무것도 없는 침묵의 세계, 그때 인간은 또다른 말을 만들어낸다. 사막에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밀주
“절절하게 잘 읽어주었다. 그런 심정으로 썼다. 밀주는 마시지 못했다. 엉터리 밀주를 마시고 백여명이 죽은 적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을 속이는 술도 아니었고 눈이 멀 거라는 두려움은 없었지만 절절한 마음이었다. 생물학적으로 눈이 멀더라도 다른 눈이 띄어질 것이다. 그건 경험하지 못한 세계일 수도 있다. 이 시에는 간절함이 있다.”

염소와 나와 구름의 문장
며칠 전 작은 구름 하난가 지나간 곳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풀을 뜯으러 가고 있습니다/ 몇방울 비가 내린 자리에 잠시/ 초원이 펼쳐지겠지요/ 이름을 가진 길이 이곳에 있을 리 없는데도/ 이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물어봅니다/ 이름이 없는 길을/ 한번 더 건너다보고서야/ 언덕을 넘어갑니다/ 머리 위를 선회하다 멀찌감치 지나가는 솔개를/ 이곳 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또 물어봅니다/ 언덕 위에 잠시 앉아 있는 검독수리를/ 하늘과 바람과 모래를/ 방금 지나간 한 줄기 빗방울을/ 끝없이 펼쳐진 부추꽃을/ 밤새 지평선에서부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별들을/ 그리고 또 별이 지는 저곳을/ 여기서는 무엇이라 부르는지 물어봅니다/ 어떤 말은 발음을 따라 하지 못하고/ 개울처럼 흘러가는 소리만을 들어도 괜찮지만/ 이곳에 없는 말을/ 내가 아는 말 중에 이곳에만 없는 말을/ 그런 말을 찾고 싶었습니다/ 먼저 떠나는 게 무엇인지/ 아름다움에 병든 자를 어떻게 부르는지/ 그런 말을 잊을 수 있는 곳으로/ 그런 말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뿌리까지 죄다 뜯어먹어 메마른 구름 하나가/ 내 뒤를 멀찍이 떨어져 따라오고 있습니다/ 지나온 길을 나는 이미 잊었습니다/ 누군가 당신인 듯 뒤에서 이름을 부른다면/ 암갈색 눈을 가진 염소가 언덕을 넘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고비사막'으로 시집을 내면 안 될 것 같다. 여행시 쓰는 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일반적으로 여행시에 대한 인식이 안 좋다. 여행시는 다 그럴 것이라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의 분위기는 시에서 걷어내고 시에서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다. 내가 무척 아끼는 시다. 첼로 연주를 할 때 악보 보는 일을 접어치웠다. 악보를 보면 집중이 안 된다. 다다음 시집은 이 제목으로 엮을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는 무척 방대하다. 거기에 없는 단어는 '종교'라고 한다. 모든 것이 종교이기 때문에 특별한 단어로 규정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부분을 떼어내 종교라고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게 종교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만 사유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없다. 언어를 다룰 수 있어야 차원 높은 사유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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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사라지는 것을 향해 빌어야 할 것은/ 오로지 사라지는 것뿐이었던가/ 삼십만 년만 더 간다면/ 등 뒤에서 끌어당기는 사나운 중력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영원한 고요의 바다를 지나갈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별이 되었을 것이다/ 간혹 자기를 놓쳐버린 구름들이/ 먼지와 얼음조각들이/ 손목을 긋고 떨어져 나와/ 송두리째 자신을 불태워 자진해버리기도 한다/ 한순간을 위해서였다면 별은/ 다른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을 것이다/ 서너 걸음마다 뒤미처 떠오르는 생각처럼/ 다 타고도 남은 것이 있다면/ 저 잿빛으로 환한/ 오래고 오랜 밤하늘 때문이다/ 이런 것이다 나와 당신과 바람과 황무지와/ 끝도 없이 펼쳐진 이 광막한 어둠은/ 새로 생긴 실핏줄 하나가 눈망울 속을 지나가듯/ 저릿하게 저릿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지워지는 게 아니라 결코 지워지는 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은 별을 볼 수도 없거니와, ‘별’에 대한 시는 쓰지 않는다. 나는 그럴수록 ‘별’을 쓰는 일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내 자랑이지만, 지난해 동일한 작품으로 ‘좋은 시’에 선정됐다. 사실 은하수를 못 봐서, 은하수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나는 반딧불이도 못 봤다. ‘반딧불이’를 보면 시 50편을 쓸지도 모른다. 사막에서 서너 걸음 걸을 때마다 별똥별을 많이 봤다. 워낙 많이 쏟아지다 보니 소원을 채 다 빌 수도 없었다.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떨어진다. 어떤 이는 이 문장을 ‘1’로 바꿔서 ‘1 1 1’이라고 했단다. 사실, 별똥별은 자살하면서 사라지고 소멸한다. 우리는 왜 사라지는 것에 소원을 빌까. 별똥별은 어디에서 올까. 태양계를 벗어나면 별이 될 수 있다. 별똥별은 별이 되는 걸 포기하고 차마 가지 못하고 돌아온다.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소멸한다. 우리는 그 간절함을 통해서 우리의 간절함을 빈다.”

“우리는 언어에 사로잡혀 있다. 길들여져 있다. 유아기(3세 이하)에는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자신을 찾는다. 엄마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찾는다. 그 이후에는 언어를 배우게 되는데, 언어에는 그 사회의 지배적 가치가 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언어가 담겨 있다. 모종의 권력과 이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자유주의, 자유무역협정이니 하는 말은 어감상 긍정적인 느낌이 많다. 그래서 실체보다는 이미지에 사로잡혀서 그 이후에 오는 폐해를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언어를 버리고 스스로 사유하고 스스로 자유를 찾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의 언어로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내가 찾아가는 세계는 그런 세계일 것이다.”

“‘낙타’는 고단함을 뜻하는 짐승이다. 몽골 조각품에는 큰 낙타를 조각한 낙타 머리에 사슴뿔이 있는 게 있다. 몽골신화에 따르면, 사슴이 잔치에 가서 인기를 끌어야 한다면서 낙타의 뿔을 빌려 잔치에 갔다. 당연히 돌아오지 않았다. 낙타는 사슴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먼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고 몽골 사람들은 믿었다. 몽골사람들은 해질녘 쓸쓸한 낙타를 보고 ‘사슴뿔을 기다리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거운 짐을 진, 견디는 낙타를 이제는 기다리는 낙타라고 본다. 끝없이 찾아가야 하는 아름다움이다. 경건함이 느껴지고 전율이 이는 아름다움이다. 우리의 일생은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꼭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은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일생이라고 생각한다. ‘오로라’ 자체가 아름다운 게 아니라, ‘오로라’를 보려는 자체가 아름다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 어딘가로 가려는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는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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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에 시 10편을 몰아서 썼다. 앞으로 좀 더 확장되고 고민해서 시를 쓰면서 자리잡으면 여러분에게 이런 세계다, 하고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다다음 번 시집이 나올 즈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석자들은 참으로 진지하다. 조정 시인이 마무리 인사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시와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선시 열 편을 받아볼 때랑, 시인이 얘기할 때랑 참 다르다. 시인이 ‘축’을 엄청 가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나이 지긋할 때까지 리스팝 포엠은 계속 될 것 같다. 시인이 여러 시세계를 보여줄 때까지 모두 건재하자!”

시낭송회에 처음 참석했다는 인천문인협회 최일화씨는 “인천in을 보고 시낭송회가 있다는 걸 알았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자주 왔을 것이다. 집도 여기서 가까운 만수동이다. 다음 달에는 천양희 시인이라니 그때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송경동 시인이 온다는 플래카드를 보고 오기 시작했다는 송우영씨는 “시낭송회 다닌 지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오늘은 출근했다가 잠깐 들렀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마치 ‘외계’에서 온 것 같다”면서 시를 쓰는 일은 참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역시 다달이 찾는 김윤희씨는 “집이 만수동이라 걸어온다. 언젠가 과 선배가 온다는 플래카드를 보고 오게 됐다. 대학에서 4년 동안 글쓰기 수업을 받았지만, 애들 키우고 살다보니 쓰는 일이 나와 먼 일 같다”고 거들었다. 시낭송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음 달에 반가운 얼굴로 또 만나기를 약속했다.

리스팝 포엠은 매달 마지막날 오전 11시에 열린다. 다음 시낭송회는 5월 31일은 천양희 시인이 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032)473-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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