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전 삼산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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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삼산교입니다
  • 김혜숙 도란도란삼산마을 주민기자
  • 승인 2013.10.1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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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주민의 피와 땀으로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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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삼산마을 - 인천in 협약기사>
 
삼산동의 오랜 동반자인 벽산아파트와 부일중학교 길을 이어주는 삼산교의 역사를 듣기 위해 37년 전 무렵 다리 공사에 참여한 어르신들을 만났다.
주민들이 무심코 이용하는 이 다리는 행정기관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기 위해 이곳을 통행해야 하는 지금의 삼산·갈산동 일대 주민 80여 세대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두 차례에 걸쳐 건립했다.
삼산교를 세우기 전에는 수로 위에 징검다리를 놓았는데, 비 오는 날에는 물에 잠겨 건널 수가 없었다. 그 뒤 ‘한강수리공사’에서 농민들을 위해 나무로 다리를 놓아주었으나, 좁고 낡아 못쓰게 됐다.
그 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4~76년에 지금의 삼산교가 주민들의 힘으로 건설됐다.
공사 당시 미군부대에서 덤프트럭을 내줘 자갈을 깔 수 있었고, 당시 수리조합(조합장 신현돈)과 동사무소(동장 윤용환·김영길), 공단파출소 등 관공서에서 행정적인 부분을 도왔다. 당시 부녀회장이었던 유연옥(78) 씨는 “마을 사람들이 협력해서 다리를 놓았지만 유독 고생하신 분이 있다. 돌아가신 임채학 씨인데 다리를 놓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가 부모님께 들켜 집에서 쫓겨났다. 이후 생계를 위해 택시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부인도 그 충격으로 이듬해 돌아가시고, 자녀 둘만 남았다. 그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동네에 들어와도 부모가 받아주지 않아 우리 집에서 밥 한끼 먹고 쉬어가곤 했다”라고 회상했다. 유씨는 생전에 임채학 씨가 ‘이 다리는 오래오래 갈 것이다. 그만큼 튼튼하게 지었다’라고 강조하는 말을 자주 했다고 덧붙였다.
함께 자리한 어르신들도 “이 다리는 피와 땀으로 이룩된 다리다. 지금도 다리를 지날 때마다 일하다 돌아가신 임채학 씨가 생각난다”라며 유씨의 말을 거들었다. 한 어르신은 “오랜 세월 마을과 마을을 이어준 이 다리가 낡아 새로 지어야 하겠지만, 다리를 건립한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 지금 사람들에게 알려줘 무척 고맙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의 말처럼 다리는 낡았다. 통행 차량과 인구가 늘어나면서 좁은 다리를 통행하기 어렵고 사고 위험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취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리의 입구 양쪽에 ‘삼산교’와 ‘1976년 6월 준공’을 알리는 희미한 글씨의 푯말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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