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벽과 싸우는 이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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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벽과 싸우는 이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
  • 강창대 기자
  • 승인 2013.11.04 0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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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나무심리센터, 사회약자 마음 치유 위해 팔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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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역사회만 놓고 보더라도 강한 자들과 극한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①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7년 가까이 복직투쟁을 해오고 있지만, 올 겨울도 천막농성을 이어가야 할 형편이다. ②인천지방노동위의 판결에 허탈해 하는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 조성덕 지부장.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심한 차별과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 ③삼성전자서비스 파견 노동자들은 무노조경영을 표방하는 삼성자본으로부터 심각한 노조탄압과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리고 있다. ④SK인천석유화학 파라자일렌 공장증설을 막아 터전을 지키겠다고 나선 인천 엄마들. 사람 대접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처우 개선을 놓고 3년 가까이 투쟁 중인 삼화고속 승무원들.
 
“강철 같은 해방의지, 와서 모여 지키세. 투쟁 속에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껴보세.”
 
노동쟁의 현장에서 종종 듣는 ‘철의 노동자’라는 투쟁가의 한 대목이다. 취재를 위해 현장을 방문한 기자의 입장에서도 엠프를 타고 나와 가슴을 때리는 강한 진동을 느낄 때면 그 장중한 분위기에 빠져들곤 한다.
 
이렇게 스스로 철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뿐만 아니다. SK인천석유화학의 파라자일렌 공장 증설을 반대하는 서구의 주민들은 대부분 아이를 둔 엄마들이다. 이들도 더위와 추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둘러업은 채 집회현장에 나와 쇳소리가 나는 쉰 목소리로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겠다고 외친다.
 
고개를 조금 들어 인천을 벗어난 곳으로 눈을 돌리면 곳곳에 이런 철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밀양의 송전탑 반대 시위, 제주도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시위 등 곳곳에 투쟁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철인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말랑말랑한 살과 가슴을 갖고 사는 인간이 ‘철인’이 된다는 게 어디 그렇게 녹록한 일이겠는가. 어떤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에 세상의 주목을 끌기 위해 철탑으로, 아치로, 극한 환경 속에 자신을 노출시킨다. 또, 수십일 동안 지속되는 단식투쟁으로 아찔하게 생의 경계를 오가는 이들도 있다.
 
그 고통은 ‘철인’들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시위현장을 지키기는 일은 마음과 몸, 그리고 가족관계가 멍드는 것을 감수하는 힘든 결단일 수밖에 없다. 푸른나무심리센터(이하 심리센터) 김문경 대표는 노조 전임자나 사회운동에 투신하는 사람들이 겪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럴 수밖에요, 벽과 싸우고 있는데. 공공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박하게 마련이죠. 그래서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가족의 문제조차도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지지자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가정문제, 게다가 사회적 지지가 점점 약해진다면 이들은 이중 삼중의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벽’과의 싸움, 스트레스 강도 높아
 
심리적 고통을 겪던 한 해직노동자는 자신의 마음을 “깨진 유리조각과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해직의 충격과 이어진 복직 투쟁, 장기화된 투쟁 속에서 이들의 심리적 고통이 어떤 것이었을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 대표는 이런 고통을 방치할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우울증을 일으키는 것뿐만 아닙니다. 국제암학회에서는 스트레스 자체를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죠. 또, 여러 가지 중독에 빠질 수 있는 위험도 큽니다. 종국에는 공황장애까지 겪을 수 있습니다. 이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꼭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김문경 대표는 심리센터의 부속기관으로 ‘아무나센터’(가칭)를 추진하고 있다. 아무나센터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심리상담을 위한 곳으로 모든 과정이 무료로 진행된다. 센터의 이름 ‘아무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누구나’라는 의미를 담아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미 전국금속노동조합 콜트지회의 방종운 지회장과 조합원이 이곳을 다녀갔다.
 
깨진 유리조각과도 같은 마음
 
김 대표도 한때 노조위원장을 지낸 적이 있다고 했다. 비교적 노사관계가 좋은 곳이었다지만 반복되는 교섭과 투쟁 속에서 겪었을 어려움은 여느 노조 전임자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김 대표가 심리센터에 뛰어들게 된 배경에는 이런 이력이 있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 봉사나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심리상담 분야를 접하고, 이 일이 매우 미래지향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다 사업성도 빠지지 않는 것 같아 심리센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계기는 정혜신 박사가 하고 있는 ‘와락’ 프로젝트입니다.”
 
정혜신 박사는 정신과의사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쫓겨난 이후 마치 벼랑 끝처럼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31일 이 모(36)씨가 생을 달리하면서 쌍용자동차 사태는 24명째 희생자를 내고 있다. 이들의 죽음은 해고가 왜 살인인지를 실감케 한다.
 
이들을 위해 정혜신 박사가 마련한 것이 ‘와락센터’다. 와락센터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을 위한 심리치유공간이다. 이곳에는 ‘와락 치유밥상’ ‘와락 꽃꽂이교실’ ‘흙과뜨락 원예수업’ ‘와락 음악교실’ 등의 프로그램이 운용되고 있다.
 
와락센터의 역할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심리치유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곳은 수많은 비정규직과 해고노동자들에게 치유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혜신 박사에게서 비롯된 치유의 바이러스는 김문경 대표를 통해 인천에도 퍼지고 있는 셈이다.

 
치유의 바이러스를 퍼뜨리기 위해 뛰어든 길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이들을 붙잡아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김문경 대표는 그것을 ‘통로’라고 말했다.
 
“통로만 회복된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봅니다. 자살이요? 누군가 한 사람만 있어도 그런 극단은 피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조차 이러한 소통의 통로를 잃고 극심한 고립상황에 처했을 때 내리는 결론이 자살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벌써 수년째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사회가 그만큼 황폐화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경제성장으로 과거보다 더 풍요로워졌지만 삶은 더욱 팍팍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김 대표는 “민주화가 산업화를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흔히, 우리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라고 자화자찬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정신이 물질적 풍요에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민주화도 이루지 못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최장시간 노동에다 가장 높은 스트레스지수에 노출 돼 있습니다. 그게 자살률 세계1위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김문경 대표를 만나던 날, 인천공항 터미널 3층 8번 게이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정규직에 비해 터무니없는 차별과 수시로 겪어야 하는 고용불안을 견디다 못해 지난한 투쟁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밤에는 또 다른 비보가 날아들었다.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천안분회의 한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뒤쳐진 민주화, 더욱 팍팍한 삶
 
문제는 이들이 고립상태에 빠져 어려움을 겪더라도 이를 해소할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통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접근성이 참 중요합니다.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서 마을이나 학교마다 심리상담을 전담하는 기구를 세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이들에게 통로를 마련해줄 수 있는 기관이 너무 부족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접근을 막는 또 다른 장애는 사회적 편견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정신이나 마음의 문제를 신체적 질병보다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부부싸움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기도 합니다. 또,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 역시 매우 부담스러운 일로 여기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현실이 이런데 고가의 검사를 하거나 비싼 상담료를 받으면 용기를 내기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지역의 사회적 약자를 위해 힘쓸 것
 
그래서 김 대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심리센터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민생회복을 위한 인천시민 모임’(가칭)이 심리센터가 추진하는 사업에 유일하게 힘을 보태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자신을 돌보지 않고 공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심리상담뿐만 아니라, 지역의 사회적 약자를 위해 다각적인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심리센터는 전교조 교사들과 협력해 심리적 치유가 필요한 학생을 찾아 도움을 주는가하면 최근에는, 지역의 공부방과 협약을 맺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찾아 장학금을 주고 있다. 그리고 민주평화인권센터와도 협력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가족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계획이라고 한다. 또,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를 위해 인근 병의원과도 협약을 맺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김 대표는 밝혔다.
 
끝으로, 공공을 위해 싸우며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김 대표는 “최근 들어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며 이들에게 “사회적 지지”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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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나무심리센터 김문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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