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원주민들의 귀향 및 보상은 법치 국가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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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원주민들의 귀향 및 보상은 법치 국가의 의무다
  • 문병호 국회의원(부평갑)
  • 승인 2014.09.1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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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주기 월미도 미군폭격 민간인희생자 위령제에 부쳐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월미도에는 두 종류의 기념식이 열린다. 하나는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행사이고, 다른 하나는 인천상륙작전 때 미군 폭격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을 추모하고 넋을 달래는 위령제이다. 이 행사는 월미공원 한 켠에서 조촐하게 치러진다.

1950년 9월 10일, 미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교두보를 마련한다며 100여 가구의 민간인이 사는 월미도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게 된다. 미군은 당시 민간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전의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주민들의 대피를 유도하지도 않고 폭격을 가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10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되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림살이나 옷가지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황급히 빠져나와야만 했다. 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미군은 이 지역을 점령하여 미군 기지로 삼아 1971년까지 주둔하게 된다. 미군이 철수한 후 우리 해군이 주둔하여 군사 기지로 활용하다가 2001년 해군기지 이전으로 이 땅을 인천시에 매각하게 되었다. 땅을 매입한 인천시는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재산의 피해를 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고 흔한 일이다. 또 이를 모두 보상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월미도 폭격 피해 주민들은 자신의 집터가 엄연히 우리 영토 내에 있는데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어, 아마도 전국을 통틀어 유일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 사건은 전후 군사정권 아래서 국민의 재산권 보호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국방부의 책임이 무엇보다도 크다. 공부상 주민의 소유라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은 당시 시대상황을 모르는 말로 설득력이 없다. 당시는 일제로부터 넘겨받은 땅에 집을 짓고 살았던 주민들에게는 점유권을 인정하여 저렴한 가격에 불하해주던 시기라 전쟁 후 미군 주둔지로 철조망을 치지 않았으면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정착했을 지역이다. 게다가 국방부는 해군부대를 이전하면서 이 땅을 인천시에 팔아서 수익까지 챙겼다. 이 과정에서도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국방부로부터 이 땅을 사들여 공원을 조성한 인천시의 책임도 국방부에 못지 않다. 인천시는 당시 주민들이 여러 차례 진정을 했음에도 국방부에 289억을 다 주고 이 땅을 샀다. 시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땅값을 협상하면서 원주민 재정착을 위한 여러 조건을 붙일 수 있었을 텐데, 역시 주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얘기다. 지금이라도 인천시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희생자를 위한 추모 사업과 임대 아파트 우선 배정 등은 법과 책임을 따지기 전에 인천시가 할 수 있는 일이다.

2012년 본 의원 발의로 ‘월미도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올해 국방위 법안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만 하고 결론을 내지 못한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세월이 많이 흘러 피해자들이 고령이 되었고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다. 전쟁 중의 폭격이 설령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전후에는 원상으로 돌려놓은 노력을 해야 한다. 폭격으로 강제 소거된 주민에게 돌려줘야 할 땅을 팔아먹은 국방부나, 그 땅을 얼른 사서 시민을 위한답시고 공원을 조성한 인천시나 모두 사회정의를 무시한 국가권력의 횡포를 부렸다. 지금이라도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돌아봐야 한다. 이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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