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뉴스] 신현동 회화나무 주변 공원 조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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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뉴스] 신현동 회화나무 주변 공원 조성해야
  • 이창희 시민기자
  • 승인 2014.10.20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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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315호 신현동 회화나무

콩과의 회화나무도 측백나무처럼 우리나라에서 오해하는 나무 중 하나다. 회화나무를 의미하는 한자는 괴(槐)이다. 나이 많은 이 나무의 껍질에 생긴 옹이를 보고 붙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회화나무의 한자를 느릅나뭇과의 느티나무로 이해한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관직을 나무에 비유했다.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를 ‘삼공(三公)’이라 부르고, 삼공을 ‘삼괴(三槐)’라 불렀다. 조선시대에 이러한 관례를 모방하여 삼괴정(三槐亭)과 같은 이름이 등장했다.

현재도 경주 강동면 다산리에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이방린, 이유린, 이광린 삼형제를 추모하는 삼괴정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서울 창덕궁의 돈화문을 지나면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의 회화나무는 천연기념물이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조정 앞에 회화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조정을 ‘괴정(槐庭)’이라 불렀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승문원(承文院) 앞에 회화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사대(事大, 중국)와 교린(交隣, 일본·여진) 문서를 관장하고,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에 쓰이는 이문(吏文)의 교육을 담당한 승문원을 ‘괴원(槐院)’이라 부른다. 중국 한나라 때의 궁정에도 200~300살 먹은 회화나무가 있었다.

그래서 황제가 거처하는 곳을 ‘괴신(槐宸)’으로, 장안 거리를 ‘괴로(槐路)’라 불렀다. 더욱이 장안의 9개 큰 시장 중에는 괴시(槐市)라는 이름을 가진 시장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위해 서적, 악기 등의 물건을 판매했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은 중국 사신으로 다녀와서 고향인 호지촌의 지형이 중국의 괴시와 비슷해서 동네 이름을 괴시라 고쳤다. 괴시는 현재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읍에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문화를 낳는 데는 나무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갈잎 큰키 나무인 회화나무의 꽃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음력 7월경 연한 황색으로 핀다. 이렇게 회화나무 꽃이 필 무렵 중국에서는 과거 중 진사 시험을 치렀다. 그래서 이 시기를 괴추(槐秋)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를 보러 가거나 합격했을 경우 집에 회화나무를 심곤 했다.

회화나무는 흔히 ‘학자수(學者樹)’라 부른다. 이 나무의 기상이 학자의 기상처럼 자유롭게 뻗었을 뿐 아니라 주나라 사(士)의 무덤에 이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유교 관련 유적지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회화나무를 볼 수 있다. 도산서원을 배경으로 한 천 원짜리 지폐 뒷면의 무성한 나무가 회화나무이지만, 지금은 고목만 남아 있다. 고산 윤선도가 거처한 전남 해남의 녹우당에는 400살 먹은 회화나무가 살고 있고, 경북 경주시 안강에 위치한 옥산서원 입구,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곳곳, 성주군 한개마을 곳곳에도 회화나무가 즐비하다.

콩과에 속하는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학자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회화나무는 느티나무나 팽나무와 마찬가지로 가지를 넓게 펼치고 잎이 무성한 나무여서 정자나무로 많이 심어 키운다. 이 나무에 학자수라는 별명이 붙은 건 사방으로 고르게 뻗는 나뭇가지가 자유분방하면서도 기개를 잃지 않는 기품이 있어서다. 서양에서도 이 나무를 ‘학자의 나무’ 즉 ‘스콜라 트리’(Scholar Tree)라고 부르는 걸 보면 회화나무에 대한 인상은 동서양이 공통적이다.

천연기념물 제315호인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에는 별다른 유래가 없다. 다만 이 나무의 꽃이 위쪽부터 피어나면 풍년이 들고, 아래쪽에서 먼저 피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만 전할 뿐이다.

7월이 지나 여름 햇볕이 따가울 즈음 가지 끝에서 우윳빛으로 아롱아롱 피어나는 작은 꽃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지금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기록으로 남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 이 동네가 필경 농사를 짓던 마을이었으며, 나무 곁으로 너른 논밭이 펼쳐졌던 게 분명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지역에 지금처럼 5~6층 규모의 연립 주택이 들어선 것은 20년도 채 안 된다. 그때까지 나무 주위는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나무 바로 곁으로 주택단지가 형성된 10년 전까지만 해도 낮은 언덕만 돌아서면 멀리 서해 바다가 훤히 보이는 풍요로운 들판이었다. 유난히 염소를 많이 기르는 농촌 마을이었다.

지난 20년 사이에 이 지역을 스쳐간 변화는 놀랄 만큼 컸다. 논과 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신주택단지, 이른바 ‘청라국제도시’가 형성됐다. 8차선의 넓은 도로가 뚫린 건 물론이고 도로 한가운데로 뱃길까지 뚫렸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였다.

걷잡을 수 없는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신현동 회화나무는 이곳에서 500년을 살아 왔다. 키는 평균적인 아파트 7층을 넘는 22m나 되고, 둘레도 6m 가까이 된다. 하지만 주변에 늘어선 주택들에 갇혀 나무는 왜소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주택들이 둘러싼 탓에 나무를 찾아오는 바람도 길을 잃었고, 나무가 내뿜는 숨결은 매우 거칠어졌다. 도시의 금싸라기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무가 어쩔 수 없이 견뎌 내야 하는 운명이다.

그 사이 성장과 개발의 숨 가쁜 흐름에서 나무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 줄기 앞에 이 동네 사람들이 동제를 올릴 때 쓰는 제단을 놓은 것부터 그렇다. 일정한 날을 정해 제사를 올리는 건 아니지만 동네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동네의 자랑인 나무 앞에서 제사를 올리기 위한 채비다. 주변 환경도 한결 깨끗해졌다. 울타리를 깔끔하게 정비했을 뿐만 아니라 나무 옆으로 자리를 더 내어서 아담한 정자도 세우고, 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와 몇 가지 체육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작지만 잘 꾸민 근린공원이 됐다.

“저도 이런 큰 나무가 있는 줄 몰랐죠. 그런데 초등학교 때 ‘회화나무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낯선 어른들을 종종 만나게 됐어요. 그래서 알게 된 거죠. 우리 동네 사람들보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오지 않았나 싶어요.”

나무 그늘에 쪼그려 앉아 공기놀이를 하던 최씨가 취업을 앞둔 어른으로 바뀌었지만, 나무는 여전히 한자리를 지키며 옛일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특히 신현동 회화나무는 상전벽해의 한가운데를 지키며 변함없는 사람살이의 알갱이를 500년 동안 수굿이 지켜 왔다.

이제 학기말 고사를 마치면 최씨도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듯이 세상살이에 지칠 즈음 최씨도 어김없이 어린 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그 때 불현 듯 떠오를 회화나무는 필경 지친 사람살이의 큰 위안으로 다가설 것이 틀림없다.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그렇게 그때 그 자리에 치유의 존재로 남을 것이다.

위 나무의 소재지는 인천 서구 신현동 131-7이다. 경인고속국도의 서인천나들목으로 나가면 구 가정오거리가 나온다. 비교적 복잡한 이 구 오거리에서 10시 방향으로 들어서서 700m쯤 간다. 언덕 너머의 가정삼거리에서 목재단지 쪽으로 좌회전해 700m쯤에서 나오는 사거리를 지나 오른쪽 두 번째 골목길인 롯데마트 옆길로 들어선다. 길 안쪽의 연립주택 건물 사이로 나무가 보인다. 나무 앞에는 주차장이 없고, 골목은 비좁고 복잡하다. 골목길 가장자리의 노견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우고 나무까지 걸어서 찾아가야 한다.



회화나무의 학명은 Sophora japonica L.이다. 높이는 25m에 달하고 소지는 녹색이고 자르면 냄새가 난다. 잎은 어긋나고 15∼40개의 소엽으로 된 우상복엽이다. 소엽은 난상피침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길이는 2.3∼6㎝이다. 꽃은 8월에 피고 황백색이며 원추화서(圓錐花序: 원뿔 모양의 꽃)차례에 달린다. 열매는 잘록잘록한 꼬투리이며, 길이 5∼8㎝로서 10월에 익는다.

수평적으로는 전국에 분포하며, 수직적으로는 표고 600m 이하의 마을 주변과 산지와 농지의 경계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 토심이 깊고 비옥한 곳을 좋아하나 물기가 적어도 잘 살고 병충해에도 강하다. 번식은 가을에 익은 열매를 채취하여 종자를 얻은 다음 해충을 구제하고 노천매장을 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하여 묘목을 얻는다.

모양이 둥글고 온화하여 중국에서는 이를 학자수(學者樹)로 취급하여 선비가 살던 옛집이나 무덤 주위에 즐겨 심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향교나 궁궐·사찰 경내에서 대거목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활엽수종 중 공해에 가장 강한 수종으로 알려져 가로수·공원수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방에서는 꽃을 괴화(槐花), 열매를 괴각(槐角)이라 부르며 약재로 이용한다. 꽃은 7∼8월에 채취하고 열매는 10월에 따서 햇볕에 말린다. 열매는 약성이 한(寒)하고 고(苦)하며 양혈(凉血)·지혈·청열(淸熱)·보간(補肝)의 효능이 있고, 꽃은 약성이 양(凉)하고 고하며 지혈·양혈·진경(鎭痙)·소종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목 전체에서 루틴(rutin)을 추출하여 의약품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모세관투관성저하작용이 있어서 혈관 보강약·모세관성지혈액으로 이용되며, 고혈압·뇌일혈·혈압이상항진증·출혈증 등에 치료예방약으로 쓰인다. 민간에서는 가지를 달여 김을 내어 치질치료제로 쓴다.
 

시민기자 이창희  lee902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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