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영웅, 우리네 아버지들… <국제시장>에만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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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영웅, 우리네 아버지들… <국제시장>에만 있는 건 아니다.
  • 정대민(인천미디어시민위원회 기획정책위원장)
  • 승인 2015.01.18 2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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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마이의 미디어로 세상헤집기> 8.

“대책없이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30세 이하라면 이게 뭔 말이여? 할거다. 30년 전의 인구정책 표어다. 일제에서 해방된 즈음 한반도 전체 인구는 2500만으로 지금과 비교하면 매우 적었다. 게다가 6.25전쟁을 거치면서 인구는 급격히 줄었고 태어난 아기들마저 일년도 채 못 사는 경우가 허다했다. 자연스레 사람이 귀하고 특히 남자가 귀할 수 있었으리라.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이 깃든 나라에서 사내의 희소가치는 더 커졌을 터이지만 삼신할매 점지하시는 걸 그 누가 알꼬? 고추 하나 보려는데 계집만 줄줄이 사탕이니 집집마다 2남5녀가 기본셋팅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TV도 없던 시절 해 지면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 1960년대 들어 인구가 늘게 되었다. 허나 '기브미초콜렛'을 막 지나고 아메리카에서 차관 원조 빌어먹던 처지. 굶지 않으려면 입 수를 줄여야 하니 실시한 것이 바로 대책없이 낳지도 말고 딸아들 구별도 말고 둘만 낳자는 인구억제정책이다.
 
1980년대는 이 인구정책이 정점에 올라 둘도 많으니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수위를 높였고 다산가정에는 주민세와 의료보험비를 추가로 부담시켰다. 그랬던 것이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는 돌연 생각이 바뀐다. 땅덩어리 작은 나라에서 외국으로 보내든 사람이라도 많은 게 재산이라는 듯. 그리고 2000년대 “아빠, 혼자는 외로워요. 엄마, 동생을 갖고 싶어요.”라는 표어가 등장하며 인구증가정책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그러나 IMF가 닥치고 경기가 하락하면서 남자건 여자건 직장 전선으로 뛰어들면서 결혼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당연히 출산율도 덩달아 떨어졌다. 온갖 혜택 주겠다고 정부가 꼬드겨도 서구문화가 만연되고 칼라TV에 인터넷에 휘황찬란 유흥가에 밤만 되면 할일이 더 많아져 이혼율이 더 증가하고 말았다. 지금은 열에 셋은 돌아온싱글 즉 '돌싱'이라 이혼은 흠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급기야 정부는 '혼자 살면 세금 더 내게 할거야', 라며 싱글세 도입까지 운운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저출산으로 인해 따라오는 고령화다. 도시사회가 전반적으로 고령화로 치닫고 있다. 건강한 고령들은 일하고 싶어도 밀려 나와야 하고 원래 건강한 젊은이들은 대기업 취업에만 몰려 중소기업에서는 인재 얻기가 별 따기란다. 세상 경험 많은 고령들은 나라 일에도 관심이 많아 투표율이 높고 세상 경험 없는 청춘들은 오로지 소비욕구를 채워 줄 돈 많이 주는 회사취직에만 몰두해 투표일이 저조하다. 그래서일까? 방송이든 기업이든 소비적인 것에는 젊은이들의 눈맛에 맞추고 정치적인 것에는 중년들의 입맛에 맞춘다.
 
참으로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우리가 이렇게 부대끼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복잡해보이지만 어찌 보면 상당히 단순하게 정리할 수도 있는 게 대한민국이다. 왜냐, 대한민국 현대사는 크게 민주화세대와 산업화세대로 나누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세대는 이 시대 주역이면서도 갈등요소로 시시각각 대립한다. 산업화세대는 이만큼 먹고 살게 했다고 주장하고, 민주화세대는 이만큼 민주화를 이뤄냈다고 열변한다.
 
그러나 우리는 간과하는 게 있다. 산업화의 역군은 잔업철야 눈 비벼가며 땀 흘려 일했던 평범한 우리네 아버지요 민주화의 동력은 “독재타도” “호헌철폐” 거리를 휩쓴 넥타이부대의 일원이었던 평범한 우리네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산업현장과 시위현장에 언제나 있었지만 완장도 없었고 이름도 없었다. 그저 한 부모의 자식이었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으며 한 가정의 가장이었을 뿐이다. 공통점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 이 이름없는 영웅들은 사회 곳곳에서 이 나라를 이만큼 일궈냈지만 기득권은 없다. 그럼에도 처자식 건사 잘한 걸로 만족한다.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요 … “
 
영화 <국제시장>에서 한 평생 집안을 위해 헌신해 온 황정민 분의 덕수는 생사를 모르는 아버지 사진을 보며 마지막 이렇게 독백한다.  
 
덧붙여 우리네 아버지들은 '국제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 가까운 곳, 인천항 부두에도 있고 부평의 여느 공장에도 있다. 개항장 인천 신포시장에도 있고 부평의 영아다방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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