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냉전 초기(1945-1953년) 미국의 대외정책과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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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냉전 초기(1945-1953년) 미국의 대외정책과 기독교
  • 최태육 목사
  • 승인 2015.02.1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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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루먼의 정치신학
 
다소 긴 글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냉전 초기(1945-1953년) 미국의 대외정책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미국의 기독교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 국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또한 미군정과 전쟁 당시 내한한 선교사 2세들이 어떤 입장에서 활동을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트루먼의 '정치신학'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선임전략기획실장이었던 인보덴(William Inboden)은 “냉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종교 전쟁”이었다고 했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미국의 지도자들은 인간의 권리와 자유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고, 하나님은 세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미국을 부르셨으며, 무신론과 종교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악으로 간주했다.”고 하였다. 즉 “안보 및 경제 분야와 함께 종교적 신념이 어떻게 적을 방어하고 전쟁을 수행해야하는 지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냉전 초기 미국의 대외정책과 기독교는 상호 동조 연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a religious alliance against communism', 기독교의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한 핵공격 지지, 미국의 유명 목사들이 자문을 맡은 ‘Psychological Strategy Board’(PSB)와 ‘United States Information Exchange’를 통해 나타났다. 과연 이런 것들이 어떤 지침에서 조직되었고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이런 조직과 단체들의 활동은 트루먼 대통령의 정치신학을 반영하고 있었다.


트루먼의 정치신학

트루먼은 자유민주주의와 종교의 가치가 일치하고 있는 반면 공산주의와는 정반대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1946년 3월, 그는 미국 연방교회협의회(Federal Council of Churches, FCC)에게 “모든 인류는 지금 파멸의 문 앞”에 서있다고 하면서 악의 세력인 소련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언급하였다. 또한 그는 우선 종교와 민주주의의 뿌리는 개인에 대한 존중이라고 하면서 그 뿌리가 같다고 한 반면, 소련 공산주의를 독재로 규정하면서 “독재는 항상 그 원리를 부정”했고 “개인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신념에 기초”되어 있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1951년 4월 3일 뉴욕 에비뉴 장로교회(Avenue Presbyterian Church)에서 한 연설에서 보다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는 “오늘날 세계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위험은 전적으로 ‘영적인 가치’를 반대하는 것이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가혹하고 끔직한 광신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했다. 반면 “우리의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아래서 가장 큰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회를 창조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무신론적인 교리에 바치는 것과 똑 같은 헌신과 결심을 가지고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소련 공산주의와 미국의 갈등의 본질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통한 묵시록적 종말론 간의 영적 갈등으로 본 것이다. 인보덴은 “비록 냉전 역사가들이 영적인 요인들을 무시하였을지라도 1940년대와 50년대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국가들과 그러한 믿음을 금지한 국가들 사이 보다 더 분명한 경계선”은 없었다는 것이다.

트루먼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였고 어떤 위대한 목적을 위해 우리에게 강력하고 힘 있는 직책을 주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은 “신의 명령”으로 “악행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하고 이 세계를 보다 더 살기 좋게 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유업(religious heritage, 선민이 부여받은 유업 – 인용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구약성서시대 이스라엘에게 부여된 유업이 미국의 유업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종교적 유업은 또한 우리가 우리의 시민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계약백성으로서의 미국의 유업은 소련공산주의로 대표되는 악을 제한하고 시민들의 자유를 수호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소련을 악으로 자국을 계약백성으로 규정한 트루먼의 경직된 이원론은 핵공격을 포함해 미국의 평시·전시의 경제, 정치, 군사적 행동을 정당화 하는 정치신학이었다. 그는 실제로 영적 능력과 원자력을 연결시켰다.

즉 “만약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세계가 생존하려면 인간이 원자력을 통해 얻어온 거대한 힘은 보다 위대한 영적 능력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영성에 의한 원자력의 통제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2차대전 종전 직후 미국 연방교회협의회 총무 카버트(Samuel McCrea Cavert) 목사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일본 원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편지를 보냈다. 트루먼은 이에 대해 “당신이 짐승과 대적할 때는 짐승을 처리하듯이 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또한 1948년 봄과 1950년 11월 트루먼은 핵무기 사용을 허락하거나 공언한 적도 있었다. 즉 원자력과 영성의 결합은 절대적 악의 세력에 대한 신앙적 단죄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트루먼의 정치신학은 미국을 하나님의 계약백성으로, 소련 공산주의를 악으로 규정하는 경직된 이원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 신학은 부정될 악의 세력을 핵공격을 통해서라도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추후 기술되겠지만 이러한 입장은 1950년 미국 연방교회협의회(이후 미국교회협의회)의 입장이 된다.

또한 트루먼의 정치신학은 종교단체를 토대로 한 소련 봉쇄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내부에서 반공주의자들을 강화시키고 이를 토대로 공산주의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방법으로서 종교를 활용하고자 했다. 즉 미국 연방교회협의회, 세계교회협의회(WCC), 교황청, 동방정교회, 유럽의 개신교들과 협력하면서 ‘반공종교동맹’을 조직하고자 했다. 트루만과 함께 이를 주도한 사람은 미국 성공회 영향력 있는 평신도이자 미합중국 철강회사의 중역이었던 테일러(Myron Taylor)였다.

다음 주제 : 트루먼의 반공종교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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