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가슴으로 한다 - 양호문 장편소설 [꼴찌들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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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가슴으로 한다 - 양호문 장편소설 [꼴찌들이 떴다]
  • 이한수 선생님
  • 승인 2015.02.11 18: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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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선생님의 교실밖 감성교육] 14.
 
저는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학교에서는 꼴찌들에게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집에 가면 자식에게 ‘그렇게 해서는 변변한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다그칩니다. 이율배반적입니다. 특목고, 외국어고 등 고교서열화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작 제 자식은 그런 델 보내려고 한다는 비판은 저 같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이 얼마나 아이들을 망치는지 모르냐고 주장을 하면서 자식한테는 ‘그렇게 해서 몇 등이나 할 수 있겠냐’고 잔소리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아프게 고백합니다.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이렇게 털어놓는 것은, 저와 유사한 자기 분열로 고통 받는 부모님들에게 일말의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꼴찌들이 떴다] 저자 양호문 선생도 인터뷰에서 "정작 내 자식이 꼴찌인 것은 견디기 힘들만큼 고통스러웠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 소설을 써냄으로써 일종의 한풀이를 한 셈입니다. 양호문 선생님 덕에 저도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습니다. 작가에게 고맙습니다. 이 작품은 꼴찌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보내는 정도로만 쓸모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저처럼 교육을 빙자하면서 ‘1등 강박증’을 앓고 있는 학부모에게 좋은 처방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식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습니다. 경쟁에 시달리며 성적 때문에 주눅이 드는 아이들만 불쌍한 게 아닙니다. 그 아이들을 옥죄며 자신도 갉아먹는 어른들도 참 불쌍합니다. 평생 동안 돈벌이와 소외된 노동에 짓눌려 허덕거릴, 형편없는 삶을 희망이라고 착각하며 지금의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로 일하시는 송인수 선생님의 강연을 감동적으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말씀 중 새로운 것은 없었습니다. 학원 안 보내는 학부모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교육으로 성적 향상이라는 성과를 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답니다. 어쩔 수 없이 애들을 학원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맞벌이 부부, 반에서 몇 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문제풀이 학원 수업에 중독된 부모, '옆 집 애는 피아노도 잘 치더라'는 소문에 부아가 치미는 엄마, 학부모들은 눈치 빠르게 주변을 살펴야 하는 각개전투로 피가 마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성적이 오르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올린 성적이 나중에는 자식의 인생을 어둡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걸까요. 다만 자식의 인생에 무책임했다는 원망을 들을까봐 두려울 뿐인 건 아닐까요. 자식이 직업은커녕 결혼도 못 하고 마흔이 넘도록 얹혀살까봐 너무나 무서운 게 아닐까요. 다 알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막막한 현실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답답할 노릇입니다. 희망이 안 보입니다.
 
그런데 송인수 선생님은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대목을 소개합니다. 선생님은 학원 공부로는 절대로 성적을 올릴 수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대기업 인력관리 전문가, 인기 있는 학원 강사, 교육학 전문가들의 일선 경험과 객관적 분석 결과를 제시하면서 학원 공부의 유해성을 낱낱이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 안 다니는 애가 없는 현실,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해 개인과외나 유학으로 경쟁이 번지는 끔찍한 현실도 객관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에 대해 이런 저런 비판을 제기한 사람들은 정치 지도자들이 뭔가 바꿔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건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합니다. 정치인들은 '손가락에 침 바르고 바람의 방향만 살피는 자들'에 불과하니 그들이 앞장서서 뭔가를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다고 합니다. 그러니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바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호문의 [꼴찌들이 떴다]는 그 바람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대받는 전문계 고등학교 꼴찌들의 이야기인 것만으로도 주목에 값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시대에 누가 이런 경쟁력 없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집니까. 어른들의 교육 로망이 ‘제 자식 안철수 만들기’인 시대에 말입니다. 공업고등학교 꼴찌들한테는 현장 실습 경험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누가 데려가야지요. 그 꼴찌들에게 현장 실습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담인 선생님의 선처를 고맙게 받을 수밖에요. 그냥 도장을 찍었지만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릅니다. 나중에 가보니 강원도 두메산골 송전탑 건설 현장입니다. 산 정상에 송전탑을 세우기 위한 기초공사를 하는 일입니다. 완전 막노동이지요. 현장 경험이랄 것도 없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게 현장 실습에 임한 불쌍한 떨거지 청춘들의 고생담이 아주 유쾌하게 진행됩니다. 하루만 지나면 다 도망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의 피해 보상에 개입하면서 눈부신 청춘의 에너지를 발휘합니다. 두메산골에서도 사랑이 싹트고 사회 부조리의 첨단을 경험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꼴찌들이 청춘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멋지게 보여 줍니다.
 
큰애가 책읽기를 참 좋아합니다. 시험이 닥쳐와도 소설을 손에서 놓질 못합니다. 어떨 땐 소설을 읽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소설 좀 그만 읽어라 잔소리를 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감성이 보기 좋습니다. 같이 읽은 소설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을 때에는 그 공감이 너무 행복합니다. 송인수 선생님도 자식과 함께 책 읽기를 권했습니다. 공부 때문에 자식과 냉랭한 부모님들께 저도 권하고 싶습니다. 일상이 바쁘시겠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어 아이의 나이에 맞는 성장소설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아이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경쟁에 찌든 어른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 주기도 합니다. 적절한 작품을 고르기가 쉽지 않겠지만 부모들끼리 감동 스토리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면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로 저도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좋은 학원 정보를 숨기는 엄마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모습 참 보기 안 좋습니다. 동네 엄마들이 모여서 양호문 선생의 [꼴찌들이 떴다]에 대해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누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되면 우리 교육은 저절로 바뀔 것입니다. 


인성여자고등학교 이한수 선생님
블로그 http://blog.daum.net/2ha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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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2년 2015-06-02 02:52:10
아, 양호문샘의 '꼴찌들이 떴다!'네요.
작년에 우리학교 독서부원 모두 이책을 읽고 토론했었어요.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내용이 가벼운 듯하면서도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가
꽤 무겁고 의미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심각한 갈등을 겪던 여러 집단의 사람들이 할머니의 꽃상여를 메는 일로
화해를 하게 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울 국어샘은 바로 그 장면이 이책의 압권이며
양호문 작가님이 화해, 상생, 윈윈이라는 주제를 직설적이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깔아놓은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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