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전설을 간직하고 수천의 세월을 살아온 덩굴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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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한 전설을 간직하고 수천의 세월을 살아온 덩굴식물
  •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 승인 2015.03.0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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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이야기 (3) : 경주 오류리 등나무


스스로 양분은 잘 만들어내지만 홀로 서지 못한다는 치명적 약점을 가진 식물 종류가 있습니다. 바로 덩굴식물입니다. 제대로 자라려면 하릴없이 땅이나 담벼락을 기어가야 하겠지요. 근처에 다른 나무나 기둥 따위가 있다면 그 물체에 기대어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덩굴식물로 가장 대표적인 식물이 바로 등나무입니다.

덩굴식물이 마치 곁에 있는 다른 식물을 휘휘 감고 자라면서 다른 식물의 양분을 빨아먹으면서 자라는 기생식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빨아먹을 양분이 전혀 없는 담벼락에 붙어서도 잘 자라니까요. 덩굴식물도 여느 나무처럼 엄연히 자신의 초록 잎으로 광합성을 해서 자기에게 필요한 양분을 스스로 지어냅니다.

문제는 있습니다. 자람이 왕성한 대개의 덩굴식물은 곁의 다른 나무를 감싸 오르면, 그 나무는 양분을 빼앗겨서가 아니라, 자신의 나뭇가지와 잎을 뻗어내야 할 자리를 빼앗기게 되겠지요. 겨우 틈을 찾아 잎을 돋워낸다 해도 덩굴식물이 지어내는 그늘에 가리워 광합성을 위해 꼭 필요한 햇살이 모자라게 됩니다. 자연히 광합성으로 지어내는 양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요. 그런 사정이 오래 계속되면 어쩔 수 없이 곁에 있던 나무는 죽게 됩니다. 그래서 숲에 덩굴식물이 들어오면 조심해 관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등나무 가운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나무는 현재 세 건이 있습니다. 제176호인 부산 범어사 등나무군락, 제254호인 서울 삼청동 등나무, 제89호인 경주 오류리 등나무입니다. 이 셋 가운데에 가장 돋보이는 등나무는 단연 경주 오류리 등나무입니다. 한 그루가 아니라 네 그루가 모여 자라기는 하지만, 군락이라고 부르기에는 모자람이 있어서 부산 범어사의 경우와 달리 군락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요. 이와 달리 서울의 등나무는 국무총리 공관 뜨락에 뿌리내린 한 그루로, 우리가 흔히 ‘등나무 벤치’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키워진 정원수입니다.

문화재로서의 명칭은 ‘등나무’로 돼있지만,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록된 정식 식물 이름은 ‘등 Wisteria floribunda (Willd.) DC.’ 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등나무라 불러왔던지라 ‘등’보다는 ‘등나무’가 부르기에 훨씬 편합니다. 이를테면 흔히 볼 수 있는 ‘등나무 벤치’를 ‘등 벤치’라고는 안 부르니까요. 큰키로 자라는 나무이거나 덤불로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덩굴식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나무’를 빼고 ‘등’이라 한 듯 짐작되지만, 적이 불편한 게 사실입니다. ‘등’이라는 한 글자 이름으로는 구글링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요.

잎새 한 장 없는 겨울 사진으로는 여기에서처럼 정신 사나운 모습으로만 보이지만, 규모로나 연륜으로나 경주 오류리 등나무는 매우 훌륭한 등나무입니다. 게다가 애틋한 전설까지 전해오는 까닭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신라 때에 이 나무가 처음 이곳에서 자란 유래가 전합니다. 그때 이 마을에 살던 한 농부 가족에 자매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웃에는 그들 또래의 총각이 있었지요. 얄궂게도 자매는 그 총각에게 말없이 연모의 정을 품었답니다. 요즘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시절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던 중, 총각은 전쟁터로 떠나게 됐어요. 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이들 자매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게 됐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업을 슬퍼하게 됐습니다. 사랑의 염을 거둘 수 없었던 그들은 나중 일에 대한 슬픈 걱정은 거두고, 우선은 총각이 전쟁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빌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러도 총각은 돌아오지 않았고, 마침내 충각이 전쟁터에서 산화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총각을 기다리던 두 처녀는 슬픔에 겨워 마을 안쪽의 연못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얼마 뒤, 두 처녀가 목숨을 던진 연못 가장자리에서는 등나무가 자라났습니다.

처녀들이 죽고나서 한참 뒤에 이웃 총각이 홀연히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화랑으로서 수련을 거치는 동안 고향 마을에 연락을 넣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고 세월 쌓이자 그가 죽었다고 잘못 알려졌던 겁니다. 총각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이루지 못해 목숨을 끊은 처녀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총각도 처녀들의 넋이 묻힌 연못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총각이 몸을 던진 자리에서는 팽나무 한 그루가 솟아나와 늠름하게 자랐습니다. 팽나무보다 먼저 연못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하늘거리던 등나무는 팽나무를 친친 감고 평안하게 자랐습니다. 사람들은 팽나무와 등나무가 칭칭 동여맨 채 자라는 모습을 보고 살아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나무가 되어 이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등나무가 바로 지금의 경주 오류리 등나무입니다.

전설 속의 등장하는 등나무는 두 그루입니다만, 지금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등나무는 모두 네 그루입니다. 옛날 신라 때에 이 곳은 용림(龍林)이라고 부르던 임금의 사냥터였다고 합니다. 이 용림에서 자라는 커다란 등나무는 그래서 용등(龍藤)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용림이 아니었다 해도 등나무의 줄기가 팽나무를 감고 용트림하듯 오르는 모습이 마치 용을 연상할 수 있다 했던 이유도 있었겠지요. 애틋한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때문에 이 등나무는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이야기까지 전합니다. 5월쯤 피어나는 이 등나무의 꽃잎을 말려 신혼부부의 베개에 넣어주면 부부의 사랑이 깊어지며, 또 애정이 식은 부부가 이 등나무의 잎을 삶아 먹으면 사랑이 되살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나무에 전하는 이야기에 알맞춤합니다.

* 이 원고는 홈페이지 솔숲닷컴(http://solsup.com)의 ‘나무를 찾아서’ 게시판에 함께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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