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로 흥성했던 섬축제, 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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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흥성했던 섬축제, 세시풍속
  • 이세기
  • 승인 2016.01.2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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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섬이야기⑩] 이세기 / 시인


▲섬에서 연날리기(굴업도)
 
섬 명절은 유별난 구석이 있다. 무엇보다도 섬은 이웃간 유대가 강하다. 험난한 섬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로 똘똘 뭉쳐 운명을 함께 나눠야했기 때문이다. 섬문화가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기보다는 고유문화의 계승이 강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명절이 되면 외지에 나갔던 일가들이 다 모여든다. 이 때만큼은 섬은 흥겹고 모든 게 풍성하다. 윗목에 담가 둔 술항아리에서는 보글보글 술 끓는 소리가 난다. 마음조차 넓어진다. 이웃도 옹기종기 모여 살다보니 모두 친척이나 진배없다. “아재”, “아수”, “동서”, “동상”하면서 가깝게 지내는 것이 섬이다. 그러니 이웃집 밥상에 수저가 몇 개인지까지 훤히 알 수 있다.

설날인 정월 초하룻날이 가까워지면 어른 아이들이 따로 없이 마음이 들뜨기 마련이다. 하지만 새해 첫날을 맞는 마음가짐이 정결해야 했다. 어른들은 섣달 그믐날까지 모든 빚을 갚았다. 이를 두고 ‘헌 빚 갚는다’고 한다. 일부러 찾아가 묵은 감정과 빚을 청산했다. 묵은 빚을 안고 새해를 맞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들은 제석(除夕)날에 귀신이 신발을 가져가면 일 년 내내 불길하다는 속설을 믿었다. 그래서 제석날 밤에는 신발을 감추고 뜬눈으로 밤을 새다가 잠이 들곤 했다. 체를 마루 벽에 걸어놓는 풍습도 있었다. 속담에 귀신이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밤을 새다가 날이 밝으면 도망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신발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밤늦게까지 지키다가 끝내 잠이 오면 신을 부엌에 놓고 부엌문을 닫은 다음에야 잠들었다. 지금이야 이런 풍습이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에는 수세(守歲) 풍습이었다.

새해 첫날에는 아침 일찍 깨끗한 설빔으로 차려입고 차례를 지냈다. 듬북국과 숙주, 고사리, 무수(무)나물 등 온갖 나물과 풍요를 상징하는 가장 잘생기고 큼직한 조기를 올린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동네 어른들께 세배를 다녔다. 아이들이 오면 어른들은 새해 신수점을 치다가도 물리고 세배를 받았다. 세배를 하고 나면 세뱃돈을 주고는 덕담이 끝나면 식혜인 감주가 나왔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올해로 떡국을 몇 그릇 먹었나?”라며 새 나이를 물었다.

새해에는 언행을 무엇보다 조심했다. 새해 첫날부터 삼일 동안은 반드시 이를 지켜야 했다. 이 기간에는 바른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남을 하대하거나 궂은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좋은 말만을 하게 했다. 상 귀퉁이에 앉지 말아야 하고, 남의 집 문지방에 앉거나 밟지 말아야 한다.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해야 했다.

배가 있는 집은 뱃고사를 지냈다. 뱃고사에는 시루떡을 반드시 올렸다. 집집마다 시루에 시루떡을 하느라 부뚜막에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다된 시루떡을 이고서 배에 오르면 본격적으로 뱃고사가 시작됐다. 배의 이물과 고물, 대꼬작(배 중심에 있는 기둥)에 생솔가지와 대나무를 치장하고, 오색기를 내달았다. 시루떡과 돼지머리, 조기와 약주를 올려 제를 지냈다.

제가 끝나면 아이들에게 떡을 나눠줬다. 아이들도 덩달아 좋아했다. 선창은 동네 사람들로 북적였고, 오색기를 펄럭이는 어선으로 장관이었다. 이 때 덕담도 서로 나누는데, “올해도 개구리 소리가 많이 들렸으면 좋겠네.”라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개구리가 많이 울면 연평도에서 조기가 많이 잡힌다고 믿었다. 개구리 우는 소리가 조기 우는 소리와 비슷한 데에서 연유된 것이다.

문갑도에서는 정월에서 보름까지 두레굿을 했다. 두레굿은 마을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목적도 있지만 풍물놀이를 통해서 만물을 깨우고 흥을 북돋으면 비로소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두레굿은 젊은 청년들이 주동이 되어 열 명 정도가 풍물패를 만들어 동네의 이 집 저 집을 다니면서 풍물놀이를 했다. 한복을 차려입고 고깔모자를 쓴 풍물패가 마당으로 들어오면 집 주인은 백설기, 감주, 막걸리로 술상을 준비해 대접한다. 양재기에 쌀을 담고 그 위에 돼지고기나 돼지머리를 얹었다. 그 집에 특별한 손이 있으면 돼지머리를 올렸는데, 돼지 콧구멍이나 생쌀에다 돈을 꽂았다. 두레패가 “이 집에 건강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선창을 하고는 천천히 장단을 치기 시작하여 점차 가락을 빠르게 했다. 흥이 오르면 모두 춤을 추고 신명난 난장이 이루어졌다. 한 집당 4, 5시간 신명나는 풍물놀이가 끝나면 부엌에 들어가 건강을 축원하며, 복을 받으라는 덕담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두레굿은 보름동안 온 마을 가가호호를 돌며 한 집도 빠짐없이 했다. 두레굿으로 마을은 온통 꽹과리와 북, 장구, 징, 소고, 태평소 소리로 가득 넘쳤다.

두레굿의 백미는 마지막 날인 보름 때 짚으로 짚배를 만들어 띄어 보내는 것이다. 짚배는 대성배, 대장배, 띠배라고도 한다. 짚세기로 띠배를 만들어 고물과 이물에 솔가지를 꽂아놓고 생쌀, 과일, 떡 등을 넣는다. 짚배를 띄우기 전에 먼저 갠변인 바닷가로 나가 생쌀로 고시래를 한다. 그리고는 물살이 섬 밖으로 나가는 선창이나 부리 쪽에 가서 되도록 섬에서 멀리 떠나도록 배를 띄운다. 짚배가 마을 바닷가로 돌아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무사안녕과 무병장수, 만선을 기대하며 액(厄)까지 싣고 멀리 가기를 소망했다. 짚배는 홍역 등 마을에 병이 들어 액막이굿을 할 때에도 띄어 보냈다. 마을의 무사안녕과 액운 없기를 바라는 소원을 가득 실은 짚배가 파도를 넘실넘실 넘어서 아득히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곤 했다.

두레굿이 끝날 즈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이에 흠뻑 빠진다. 대보름날에 절정이 된다. 오곡밥을 일찍 먹고 집에서 나와 쥐불놀이와 연날리기하는 아이들로 아침부터 온 동네가 붐빈다. 깡통에 숯을 넣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정신없이 논다. 아침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내 더위 사라”하며 서로 자신의 ‘더위팔기’를 위해 서로 질세라 이름을 불러 대답을 받기 위해 목청껏 외치기도 한다.

섬은 그야말로 정월에서 보름까지 축제의 한마당이다. ‘오늘이 곧 지상천국’인 셈이다. 이 기간만큼은 섬이 온통 사람들의 흥으로 웅성거렸다. 어른들은 윷판을 벌리는데 첫판은 보통 새해 길흉을 점치는 윷을 던졌다. 왁자지껄 웃음바다가 따로 없었다. 이날만큼은 화평을 도모하고 서로 묵은 소원한 감정도 푼다. 낡은 것, 묵은 것을 떨쳐버려야 비로소 새해가 온다. 보름간의 한바탕 축제가 끝나면 비로소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열렸다.

지금은 섬에 이런 정월 세시풍속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더러 남아있기도 하다. 어른들은 예나지금이나 마주치면 언제나 “밥 먹었나?” 묻고는 한다. 평범한 이 한 마디 말을 통해 한 동네 이웃을 챙기고 속 깊이 헤아렸다. 섬공동체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은 섬이든 도시든 간에 설 풍속이라고 할 것이 따로 없다.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은 적막할 뿐이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매가리가 없다. 이웃지간조차 왕래가 뜸한 요즘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얼어붙은 엄동의 찬 돌 마냥 온기가 없다. 묵은 것을 떨치고 신생의 시간으로 가는 경계도 희미하다. 정신을 다잡는 초심이라는 게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불멸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바야흐로 생기 넘치는 봄을 맞으려는 공동체의 축제문화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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