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재창조는 마을사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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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재창조는 마을사람에 있습니다"
  • 류재형
  • 승인 2016.02.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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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의 섬, 문갑도] (3)세상에 나온 문갑도

(사진1) 1960년대 새우잡이가 한참이던 시절 문갑초등학교 모습
 
문갑도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1,300여명이 살면서 새우와 게, 그리고 민어가 많이 잡혀 부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던 섬입니다.

1960년대 말까지 30여척의 배가 조업을 했고, 새우젓을 담는 옹기를 만드는 독 공장도 3군데나 있었습니다. 1964년에는 문갑도 주민이 스스로 결성한 연극팀들이 덕적도로 원정가 공연할 정도로 여유로운 섬의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심한 바다모래 채취와 바뀌어진 해양환경으로 인해 살 길이 막막한 젊은이들이 떠나가고 평균 연령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대부분이고 약 50가구에 80여명이 사는 조용한 섬이 되었습니다.

문갑도는 약 400여년 전 강릉김씨 입도조가 섬에 들어온 후 서당을 열고 한학을 공부하는 씨족사회가 번창하였고, 섬의 외형이 글을 읽는 선비의 책상과 닮았다 하여 문갑도(文匣島)라 이름 지어졌고, 글 읽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문갑풍월(文匣風月)이라고도 불리웠습니다.



 (사진1-1) 1960년대의 초등학생 모습, 당시에는 목재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사진2) 1960년대의 문갑해변에서의 마을 아이들


(사진3) 1964년 덕적도로 원정가서 공연한 문갑도의 연극팀


(사진4) 1970년대까지 왕성했던 문갑도의 김 수확


(사진5) 1981년 문갑초등학교 졸업식에 송사를 하는 졸업생


(사진6) 1990년 초의 문갑초등학교 운동장


(사진7) 1990년2월 문갑초등학교 교실


(사진8) 문갑도 주민 김현기님 모친의 장례식 장면으로 문갑해변에서 꽃가마로 마을 뒷산에 장례를 모셨다


(사진9) 1996년6월18일 문갑도 마을 입구에 있었던 유일한 논에 모내기를 하는 모습이고 지금은 메꾸어 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10) 2004년의 폐교된 문갑초등학교 모습으로 2012년 7월에 철거되었다


(사진10-1) 문갑초등학교 자리에 지금은 보건지소가 세워졌다
 
현재는 어업은 3가구뿐이고 주로 옹진군에서 실시하는 공공근로 사업과 여름철에는 바지락, 겨울철에는 굴을 캐는 일을 생업으로 하며 약간의 밭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엄나무를 재배하고 봄철에 엄나무순(개두릅)을 따 마을의 소득원으로 활용합니다.

왕성했던 새우잡이로 인해 주로 새우젓 옹기를 굽던 가마터가 3군데 남아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물독이나 간장 된장독도 많이 생산해 지금도 마을에는 많은 양의 독들이 남아 있습니다.

섬에는 현재도 3군데의 맑은 우물이 있는데 문갑해변에 소재한 문갑약수터는 맑고 풍부해 바위틈에서 나오는 석간수로 맛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마을 곳곳에 대나무가 많고 소사나무 군락과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있고, 서해에 존재하는 새들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한월리해수욕장은 모래도 곱고 오염되지 않아 아직도 바지락이 많이 나고 낙지도 캡니다. 인근 해역에서 계속되는 바다모래 채취로 인해 해변 모래가 많이 쓸려나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경관이 수려하고 하루산에서 내려오는 민물이 해수욕장 기수역으로 흘러나오는 보기드문 천해의 자원을 이루고 있지요.

주민 구성는 모두 문갑도가 고향인 사람들이고 외지인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1997년에 인천광역시는 인천 연안 유인 도서에 대한 도서, 자연 경관, 자연 생태계 기초 조사를 수행하였습니다. 2003년에는 2년에 걸쳐 인천시에서 해양환경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인천의 섬을 전수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인천광역시에 속한 섬에 관한 전수조사가 어떤 형태이든 전문 조사가 없었던 상황입니다. 당시만 해도 섬에 대한 관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경관이 좋은 백령도나 잘 알려진 2-3개의 섬과 낚시를 위주로 한 섬 여행이었습니다.

당시 인천광역시는 육지의 경관을 다지기에 여념이 없었던 시기이죠. 1995년부터 2002년까지 8년을 재직한 최기선시장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인천의 세계화에 많은 노력을 했었고,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이후 8년을 재직한 안상수 시장은 문화도시, 국제도시 건설을 목표로 8년간 송도신도시가 탄생된 혁혁한 공(?)을 세웠지요. 하지만 당시에도 섬에 관련된 삶이 질이나 문화예술은 항상 뒷전에 밀렸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2003, 2004년의 인천 섬에 관련한 행정가와 환경관련 전문가 13명의 2년에 걸친 조사는 인천 섬 관련 큰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회에 걸친 보고서발간과 사진전시회는 인천시민에게 큰 반향을 가져왔습니다.
 


(사진11) 2004년9월3일 인천앞바다바로알기 탐사팀과 마을주민과의 회의


(사진12) 2003년과2004년에 발간한 해양탐사 보고서
 
이를 계기로 2005년부터 3년간 도서해양환경보존 관리계획을 수립하고자 조사 연구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2007년에 보고서를 발간합니다.

2003년 당시 인천앞바다 바로알기에 참여했던 인천대학교 해양학과 최중기교수의 주관으로 인천광역시와 인하대 서해연안환경연구센터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사진13) 2007년 9월에 발간한 인천 연안도서 해양환경 조사 및 보전 관리 계획 책자
 
2004년에는 문갑도의 발전소가 지어져 전기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2009년에는 군의 사업비 3억8천만원을 들여 선착장과 마을 진입로 공사를 완공하였습니다. 차도선이 접안할 수 있도록 보완공사도 2012년에 공사를 마쳤습니다. 당시 홀수 날에만 들어오던 배도 차도선으로 바뀌면서 하루에 1차례씩 운항하게 되었습니다.

 

(사진14) 2004년 7월 완공된 문갑발전소를 들러보는 해양탐사 팀


(사진15) 2009년 7월 선착장과 마을 진입로 공사


(사진16) 2012년 문갑 선착장의 차도선 접안을 위한 보강공사


(사진17) 2011년10월29일 옛 해양호 모습(황찬 촬영)


(사진18) 2012년 취항한 차도선 나래호
 
2010년에는 주민이 참여하고 제안해 진행된 [토탈빌리지 조성사업]을 통해 낙후된 지역의 경관을 개선하고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목적으로 경관과 건축물, 시설물 및 식재를 지원받아 섬의 경관을 개선하였습니다. 인천광역시 최초의 경관협정사업으로 시비 9억원과 군비 9억원을 들여 2011년 8월 준공되었습니다.

 

(사진19) 2009년의 마을모습 입구 모습


(사진20) 2012년 7월 토탈빌리지 조성사업으로 가꾸어진 마을 입구의 연못과 정자


(사진20-01) 토탈빌리지사업 전의 2009년 주택


(사진20-02) 토탈빌리지사업 후 2014년 모습
 
2010년에 와서 2년간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에서는(문화분과의 전문위원) 인천의 유인도를 탐사한 후 문갑도를 시범적 마을만들기로 선정하였고 2012년부터 3년간 연속사업으로 문화예술을 통해 마을만들기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그 결과 2014년부터 마을 분들이 자생적으로 인천 섬 최초의 축제를 시작으로 매년 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사진21) 2012년-2014년까지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에서 발간한 문갑도 조사보고서


(사진22) 2012년11월 인천의제21 문화분과 전문위원들의 문갑도 탐사


(사진23) 50년 만에 문갑도에서 영화를 상영하다(2013년5월)


(사진24) 2013년7월 인천시립극단의 찾아가는 공연


(사진25) 2014년9월 자구리축제에 문화공연


(사진26) 2014년 자구리축제에 사진을 통한 문화적 접근


(사진27) 2014년 9월 자구리축제에 문갑도 주민

 2012년 7월에는 [사람이 사는 섬, 사람이 찾는 섬] 이라는 주제로 인천의제21 문화분과에서 주관한 포럼이 열려 전문가의 열띤 발제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인천일보 환경관련 기자이었던 노형래씨가 [바다 그리고 섬을 품다]라는 현장기자가 본 10년간의 섬이야기를 저술한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사진28) 2012년 7월 [사람이 사는 섬, 사람이 찾는 섬] 이라는 주제로 인천의제21 문화분과에서 주관한 포럼


(사진29) 2012년 11월 인천일보 기자였던 노형래가 발간한 인천 섬 10년간의 이야기 책자
  
최근에는 버려진 땅을 이용해 과수를 약 600평 정도 식수하고 산채, 고사리, 방풍나물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마을 전 세대가 가입해 마을기업을 만들고 공동의 수익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2014년부터 2년간 인천문화재단의 문화예술지원사업으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예술가와 활동가들의 참여도 있었고, 삭막한 마을 담을 벽화로 장식하고, 외지의 전문가와의 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섬을 가꾸는 자문 역할과 소통을 이어 왔습니다.

마을 분들의 사고방식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고 마을이 활기차졌습니다.
인천의 섬 중에서 거의 외면당하던 섬이 서서히 홍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1월 25일에 방영한 SBS [물은 생명이다 문갑도 편]에서 문갑도를 방문한 섬연구소장 강재윤 시인은 ‘관광객을 위한 개발이 아니고 주민을 위한 개발이어야 하고 섬의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긍정적인 모습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2014년 유정복 시장이 들어서서 인천가치 재창조를 하기 위해 인천의 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참으로 고무적인 일입니다.

더불어 근래 50년 만에 [문갑도에 날개달기]가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사진30) 그림그리기 재능기부 협약을 통해 문갑도에 벽화가 그려지다
 
바닷가에 인접한 주택으로 문갑도 유일하게 슈퍼를 운영하던 신종열님 댁입니다. 어르신 나이가 드시면서 방으로 개조해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문갑도의 유일한 약사이었고, 5년간 부녀회장직과 2번의 표창을 받으셨고 매일 미국에 있는 딸이 전화로 안부를 묻습니다. 또 뭍에 사는 아들가족이 때 마다 들어옵니다. 이 분의 가장 큰 보물은 가족입니다.


(사진31) 마을 점방을 운영하던 신종열님 댁(2004년8월)


(사진32) 2013년 토탈빌리지사업으로 단장된 신종열님 댁 점방은 없어지고 구들을 깔아 사랑방으로 변했다(박우일 촬영)


(사진33) 신종열님 댁에 걸려있는 가족사진들(박우일 촬영)


(사진34) 신종열님이 가장 아끼는 보물인 주판(박우일 촬영)


(사진35) 신종열님이 미국에 있는 따님과 통화를 하고 있다(박우일 촬영)


(사진36) 신종열님이 100년이 넘은 문갑감리교회에 예배를 보러간다(박우일 촬영)


(사진37) 2014년 추석 신종열님 댁 가족
 
역사는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으며 적응하고 마을사람들이 삶의 가치를 창조합니다.

섬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고 가치의 재창조 또한 마을 사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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