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 자리에서 행복해야 할 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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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자리에서 행복해야 할 애들
  • 서영교
  • 승인 2016.08.10 0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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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북유럽에서 생각하는 우리 애덜 / 서영원(가원초교 교사)



북유럽 4개국을 여행하고 있다. 이 글은 여행 기간 중 만나게 된 우리 반 애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 반 애들을 위한 내 욕심에 대한 이야기이다.

 
1. 코펜하겐에서 자전거 타는 애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고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자전거 도로도 정말 잘 발달되어 있다.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안전하게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다. 안전헬멧을 쓰고 큰 어른들 자전거 사이로 열심히 자기 갈 길을 가는 어린애들을 보니 우리 반 두 명의 김군이 생각났다.

1학기 내내 자전거로 통학하면서 단 한 번도 보호 장구를 거르지 않고 챙겨 다닌 두 친구! 하교 할 때가 되면 혹시 잊을까봐 후다닥 사물함으로 가서 헬멧 부터 꺼내 머리에 쓰고 가방을 정리하던 모습이 너무나 똑같았던 두 친구! 방학 때도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다닐 거라고 했는데 지금도 당연히 보호 장비를 잘 착용하고 사고 없이 타고 다니고 있는지 궁금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안전하게, 사고 없이 잘 타고 다니길 바란다.

거기에 욕심 하나만 더 부리자면 규칙을 잘 지켜서 자전거 타고 다니는 이 친구들이 계속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우리 동네 어른들도 교통법규를 잘 지켰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친구들뿐만 아니라 자전거로 통학하는 모든 학생들이 안전하게, 안심하고 다닐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코펜하에서 자전거 타는 애들>


2. 베르겐에서 일하고 있는 애들

노르웨이의 베르겐은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항구도시다. 오래된 도시의 역사 만큼이나 멋스런 건물과 골목들 사이에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은 상가들을 거닐면서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오전 10시 30분이고 관광객들이 이미 도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이 많았다. 예쁜 천으로 만든 소품을 파는 것 같은 가게 앞에 가보니 요일별 가게를 열고 닫는 시간이 적혀 있었다. 빠른 날은 11시, 늦은 날은 오후 2시가 넘어서 열기도 하고 제각각이었다. 물론, 문 닫는 시간도 제 각각이었는데 오후 5시~6시 사이가 대부분이었다. 계산해보니 일주일 동안 영업하는 시간이 총 30시간 내외였다. 거기만 특별히 문 여는 시간이 적은건가 싶어 옆 가게들도 봤는데 거기서 거기! 비슷했다. 충격적이었다. '이 시간밖에 일을 안 해?' 란 생각에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랑 비교를 해보다가 비슷한 숫자 하나가 떠올랐다.
29!

우리나라 어떤 회사의 주당 근무시간은 아니고 공부가 일이라는 우리 반 5학년 애들의 주당 평균 수업시간수다. 월~금, 6.6.5.6.6교시! 총합29시간. 우연찮게도 베르겐 가게의 주당 영업시간수인 30시간 내외와 비슷하다.
'아직 한창 자라야 할 우리 애들은 다 큰 노르웨이 어른만큼이나 비슷한 시간을 일하고 있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가 계산이 틀렸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방과후학교, 학원, 집에서 푸는 학습지, 인터넷강의 등등. 정규수업에 알파를 계산하지 않았다. -실제 우리 반 21명 중 위에 언급한 알파를 하지 않는 학생은 10퍼센트 미만이다.-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우리 반 학생 몇 명은 거의 매일 집에 8시 넘어서 들어가기도 한다. 방과후학교 2시간에 학원 2시간 정도가 매일 추가되니 그 친구는 주당 49시간 정도를 일한다고 봐야겠다. 이제 겨우 12살인데 말이다. 아찔하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하루 6시간씩 하는 일주일짜리 연수를 듣다보면 연수가 끝나갈 즈음이면 지치게 된다. 그럴 때면 쉬는 시간에 옆 선생님께 '애들도 매주 이정도 앉아서 수업 듣고 있는 건 데 진짜 힘들겠어요.'라고 농담 삼아 수다를 떨기도 했던 경험이 생각났었는데, 반성해야겠다. 이 말을 들으면 우리 반 똘똘이 A군이 곧바로 '30시간만하면 할 만하겠어요!!'라고 냉큼 소리 칠 것만 같아서다. 주당 50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일(?)하던 우리 반 똘똘이 A군과 센스쟁이 B양. 그 외 서너 명 더 있는 그 녀석들은 방학을 맞이해서 그 시간이 좀 줄어들어 있는 건지 걱정이 된다.

그 녀석들 걱정에 더해 좀 큰 욕심하나 내보자면 지금의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학습량이 지금보다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주당 수업시수도 줄고 아이들의 과도한 학습부담도 줄어들 테니 말이다. 물론, 부모님들의 맞벌이, 안전하게 아이를 케어 할 장소와 인력부족 등 아이들을 집으로, 놀이터로, 운동장으로 보내기에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더미처럼 많지만, 먼저 현재의 과도한 학습량을 줄일 수 있는 교육적 조치가 과감히 실행되길 바래본다.

그래야 애들에게 쉴 수 있는 여유뿐만 아니라 그 여유 속에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돌려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테니 말이다. 이제 12살인데, 아직은 충분히 좀 쉬면서 공부해도 되는 한참 어린 나이인 애들이니 제발 좀 시간을 돌려줄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노르웨이의 베르겐 항구>


3. 지금, 그 자리에서 행복해야 할 애들

지난 5월 결혼식을 올렸다. 3월 개학 전에 결혼 관련 일을 다 끝내놓기 위하여 2월에 정신없이 준비할 때 둘이 정말 가고 싶은 곳을 원하는 만큼 가서 편하게 여행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었다. 미루면 평생 불가능하겠단 생각에 이번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아내와 함께 북유럽 4개국을 돌며 쉬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여긴 스웨덴이다. 여행의 후반부에 도달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방학을 되돌아보았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가고 싶었던 곳에 와 있는 이번 방학처럼 행복한 때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행복.
그러고 보니 방학 직전 우리 반 애들과 마지막으로 글쓰기한 주제가 '방학과 행복' 이었다. 자기가 할 일, 다른 사람들이 도와줘야 할 일 등 행복한 방학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썼었다. 글을 보니 크게 네 종류로 나뉘었다.
 
첫째, 친구들에게 당부하는 글인데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 놀기만 하면 2학기 공부가 힘들어지고 부모님께 혼나기만 하니 방학을 이용해서 공부를 적당히 해야 행복하다는 공부 권장형.

둘째, 방학 때 이런저런 하고 싶던 일을 해봐야 행복하다며 방학사용설명서라는 멋진 제목으로 다양한 일들을 권유하던 체험 권장형.

셋째, 더운데 이상한데 안 돌아다니고 집에 딱 눌러 앉아서 게임하고 TV 보고 잠 자는 게 진짜 행복이니 부모님이 그럴 수 있게 자유를 줘야 한다는 방콕자유보장 호소형.
마지막으로 방학숙제가 없어야 걱정 없이 방학을 보내서 진짜로 행복해질 수 있으니 그렇게 해달라는 숙제없는세상 주장형.
 
방학의 2/3가 지난 지금쯤 행복한 방학을 위해 다양한 주장을 했던 우리 반 애들은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방학을 보내고 있을까?
 
특히, 마지막 숙제 없는세상을 주장한 친구들에게 숙제를 완전히 없애주지 못한 담임으로서 더 바라는 바가 크다. 당장 그들의 행복을 내가 막아버린 웃지 못 할 상황이지만 최대한 줄이고 ‘우리 반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숙제를 하기’로 이야기하고 방학했으니 그 친구들이 나를 이해해주고 숙제의 압박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되어서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물론 다른 세 가지 주장을 한 모든 우리 반 애들도 지금까지 행복한 방학을 보냈고, 앞으로 남은 방학기간도 진정 행복하게 보내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라는 바다.
 
각자가 바라는 행복의 모습도 다르고, 그 이유도 제각각으로 다른 아이들이지만 어떤 형태든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아이들 주변의 어른들이 모두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최대한 도와주는 남은 방학기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지금 내가 가진 가장 큰 욕심이다. 물론 그 큰 욕심 안에는 인천가원초등학교 5학년 2반뿐만이 아니라 지금 방학을 맞이한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하고 모든 선생님들이 '방학 잘 보냈어요?'라고 물었을 때 '네~'라는 소리가 모든 학교, 모든 반에서 크게 합창으로 울리기를 먼 곳에서 기원한다.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 애들이 제일 행복한 방학을 보내는 애들이기를 쬐에끔 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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