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거기서는 안 외로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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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거기서는 안 외로와여?"
  • 김인자
  • 승인 2016.11.08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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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그리움의 바람

어제 아파트장에 들어온 홍어가 맛있어보이기에 세 팩을 사서 하나 먹고
안삭힌거 한 개 삭힌거 한 개 이렇게 두 개를 챙겨 내가 좋아하는 기린맥주 두 깡 사가지고 할무니 집에 댕겨가는 길?
"이게 뭐라꼬?"
"기린 맥주~"
"술모가지가 길어서 기린인가? 술이름이 참으로 벨스럽구만."
"맥주이름이 기린이에요, 할무니 일본맥주."
"일본술이라고? 나는 일본놈들건 안 먹는다." 하실줄 알았는데 "김선생 니가 갖고 왔으니 내 특별히 먹으께." 하신다.
그런데 울 할머니 기린맥주 한 모금 목에 넘기시고는 미간을 잔뜩 찌뿌리신다.
"아고야,이게 뭔 맛이고? 이게 술이고? 밍밍한게 암맛도 없구만. 이걸 그래 돈을 주고 사먹나~~~"
하신다.
"왜요? 할무니 맛없어요?"
"맛읍다. 니맛도 내맛도 아니고. 톡 쏘는 맛도 없고. 술이란 것이 모름지기 목구녁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맛도 없고. 뭐 영 그렇네. 음흉시러븐 것이 딱 일본놈들 닮았구만. 그래도 안주가 좋으니 술이 맛이 읍어도 술술 넘어가기허네." 하시며  맛나게 드신다.
"내 핑생 이런 요사스러븐 술도 먹어보고?시상 좋긴 허다."





맨정신에 집에 가는건 첨인듯 ?
할무니들 한 잔씩 따라드리면서 건배 짠 ~하다보면 한 입이 한 잔 되어 알딸딸 기분좋아 집에 오곤 했는데?
예전엔 막걸리 다섯 통도 모자랐었는데?
역시 술은 좋은 사람과 마셔야 맛있는 것을...
오늘은 일부러 쪼꼼만 마셨다.
안 울라꼬?
우리 할무니들과 '건배 짠~'하며 맛난거 사다드린다는 핑계로 책읽어드린다는 핑계로 할무니들 꽁무니 쫒아다닌지 삼십 년이 넘었었다. 그리고 내가 찾아뵙던 열여덟번째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어느새 반 년이 지나가고있다.
새벽에 돌아댕긴다고 늘 걱정이셨던 울 할머니들.
그립고 그립고 그리웁다.
오늘은 울 할머니가 사시던 집 언덕배기에 앉아 혼자서 기린맥주를 마신다.

"니 그게 맛있나?"
"그냥 먹는건데, 할무니..."
"뭐 좋다고 맛없는걸 먹고있냐? 입도 짧은 것이. 니 차 갖고 왔나?"
"갖고왔지....."
"뭐라꼬? 차를 갖고 왔는데 대낮부터 술을 먹는다꼬? 얘가 얘가 미친나?"
"할무니랑 늘 그랬는데..."
"그때하고 지금하고 같나?
하이구야, 내가 김선생 니때문에 죽어서도 눈을 못감는다. 이놈아야.."
"알았어~ 알았어.할무니 걱정안하시게 술 다 깨고 나면 그때 운전할거니까  걱정하지마세요,할무니."
"니 진짜로 그래야한다."
"네..."

"할무니.."
"와.."
"할무니, 거기선 안 아파여?"
"안 아프지."
"거기서는 안 외로와여?"
"그럼, 안 외롭지."
"다행이다."
"나 여기서 잘 지내니까 암 걱정마라. 그러니까 김선생아, 니도 아프지말고 내걱정도 하지말고 건강하게 씩씩하게 잘 살거라.
알았지 ?"

바람이 분다.
그리움의 바람이
저 하늘끝으로 분다.

잘 지내니
잘 지내거라

바람이 내게 전해준 말
울 할머니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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