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보구 싶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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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보구 싶으시지요?
  • 김인자
  • 승인 2018.03.27 0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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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반가운 소해순 할머니

"아이고, 이게 누꼬?"
소해순 할머니다.
"할머니~"
아야~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에게 뛰어가다가 앞으로 꽈당 넘어졌다.
"이런 이런 괜찮아?"
"헤, 괜찮아요.할머니 ~"

나는 넘어지기대장이다. 멀쩡하게 길을 잘 걷다가도 퍽하고 꼬꾸라진다. 뭐에 걸린 것도 아닌데 갑자기 앞으로 넘어지기도 하고 핸펀에 글을 쓰면서 걸어가다가 나무에 부딪쳐 엉덩방아를 찧기도 한다. 걷다가 앞에 턱이 보이면 저기 턱이 있네. 조심해야지하고 단단히 마음을 먹어도 걷다보면 영낙없이 조심하자 다짐했던 그 턱에 걸려 또 넘어진다. 이 정도면 대장별을 대 여섯 개 달아도 부족함이 없지싶다.
그래서 요즘엔 걸을 땐 넘어질까봐 아예 땅만 쳐다보면서 걷는다. 그래도 여전히 넘어진다. 사람에게 부딪쳐 뒤로 주저앉기도 하고 생각에 빠져 걷다가 나무에 부딪치기도 하고 여전히 넘어지는건 마찬가지다. 오늘도 역시나 집을 나서자마자 아파트 현관 턱에 걸려 넘어졌다. 하두 이런 일이 빈번하다보니 처음엔 넘어지면 아야~소리를 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앗싸로 소리를 바꿔서 냈다. 핸드폰 전화벨소리 바꾸듯 긍정적인 멘트로. 자꾸만 넘어지니까 내가 바보같기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해서 요즘엔 넘어지면 무 조건 앗~싸 라고 외친다. 그래도 넘어지면 여전히 민망하고 창피하다. 그래도 굿굿하게 나에게 최면을 건다. "앗싸 또 넘어졌구요오~오늘은 좋은 일이 생기겠네~"하고 말이다.

"진짜 괜찮아요? 이런 손이 까졌네."
"할무니, 저 괜찮아요."
"에구, 괜히 나땜에 넘어진거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괜히 내가 김선생님 불러가지고 넘어지게 한 거 아닌가몰라?"
"아녜요, 할무니. 원래 제가 잘 넘어져요. 그래서 걸어 다닐 때도 땅만 보고 걸어 다니는 걸요."
"에구 땅만 보구 걷는다고? 그르케 걸으믄 클나요. 앞두 보구 뒤두 보구 옆두 보구 여기저기 죄 살피면서 걸어야지. 어디서 머가 날라올지도 모르는데. 허긴 옆에 바싹 붙어가믄서 잔소리를 해도 넘어질라믄 넘어지더만. 우리 영감보니까."
"예,할머니."
소해순 할머니가 돌아가신 신병선 할아버지가 생각나시나보다. 눈가가 벌써 축축하시다.
"조심할께요. 할머니. 근데 어디 다녀오세요?"
"응, 마트에 . 머 살거 있나하고."
그러시면서 소해순 할머니가 내손을 가만히 끌어다 할머니 가슴에 넣으신다.
"에구 손이 왜 이렇게 차?
여자는 자고로 손발이 차믄 안 좋은데. 아직도 몸이 션찮은가?
장갑 좀 끼고 다니지.
손을 이리 깽깽 얼려가지고 다니나 그래."
"헤 봄이잖아요, 할무니. 겨울에도 장갑 잘 안꼈는데요."
"그름 못써. 자기 몸을 자기가 아껴야지. 나 아프믄 나만 서러.
가만보믄 우리 김선생님은 남들한텐 아주 잘하믄서 정작 자기 몸은 안 돌보는거 같아. 그름 안되.
지금은 몰라도 좀더 나이를 먹으믄 여기저기 죄 표시난다. 안 아픈데 없이 여기저기가 죄 아파. 그러니 어디 아프믄 재까닥 약국가서 약지어 먹구 그래야해."
"예, 할무니. 할무니도 그르셔야해요."
"나야 머 다 산 늙으닌걸."
"에구, 할무니 그런 말씀마셔요."
"으트게 어무니는 건강하신가?"
"예, 그만저만하셔요."
"그래 다행이구만.울영감이 살아생전에 김선생님 어무니 참 좋아했는데."
"그르셨어요?"
"응, 점잖구 경우 바른 어른이시라고 좋아라했어."
"예, 할무니."
"그르고보니 울 영감님도 뻑하믄 넘어졌다. 우리 김선생님처럼."


"하부지~~"
"오늘도 나오셨네."
벤치에 앉아계시는 신병선 할아버지에게 심계옥엄니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심계옥엄니를 본 신병선 할아버지가 앉아계시던 벤치에서 엉거주춤 일어나십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부지." 하고 내가 반갑게 인사를 해도 할아버지는 어 하시곤 딴청을 부리십니다. 그렇다고 환하게 웃어주지도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 눈이 참 따사롭습니다.
심계옥엄니가 신병선 할아버지 서계시는 곳까지 딸깍 딸깍 지팡이를 찍으며 걸어갑니다. 그러면 신병선 할아버지는 심계옥엄니가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한 쪽으로 비켜서십니다. 심계옥엄니가 앞에서 지팡이를 톡 톡 톡 찍으며 걸어가시고 그 뒤를 신병선 할아버지가 콩콩콩 짧은 보폭으로 따라 걸어갑니다.
심계옥 엄니가 앞에서 뭐라뭐라 이야기하시면 신병선 할아버지 뒤에서 뭐시라 뭐시라 고개를 끄덕이시며 열심히 들어줍니다.
그렇게 아침마다 우리 심계옥엄니 치매센터 가는 길을 배웅하셨던 신병선 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신지 벌써 이 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날도 좋은데 사진 한장 찍으까요~"
사랑터버스가 떠나고 할아버지와 함께 걷는길.
"하부지 거기는 어때요?"
"으응, 여기? 좋아."
"좋아요?"
"응, 좋아. 몸도 안아프고. "


심계옥엄니 사랑터 친구셨던 신병선할아버지.
치매에 걸리셨어도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소" 라고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손편지를 소해순 할머니에게 드렸던 사랑꾼 신병선 할아버지.
넘어질까봐 짧은 보폭으로 콩콩콩걸어서 아침마다 심계옥엄니 배웅나오셨던 신병선 할아버지.
그러다 자주 넘어지셔서 내 가슴 철렁하게 하셨던 신병선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 짝꿍이신 소해순 할머니의 따뜻한 품속에서 내손이 꼼지락 꼼지락 말을겁니다.


'할머니, 괜찮아요?
할아버지 보구 싶으시지요?
나도 할아버지가 보고싶어요.'
꽁꽁 얼었던 내 손이 소해순 할머니의 따뜻한 품속에서 살살 녹습니다. 그리고 신병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쓸쓸한 가슴을 사알살 위로해줍니다.
울지마세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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