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풀르고 한동안 실컷 돌아댕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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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풀르고 한동안 실컷 돌아댕겼는데...
  • 김인자
  • 승인 2018.04.03 0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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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아들집으로 출근하시는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예에, 안녕하세요?"
윗층할아버지시다.
"지금 오세요, 할아버지?"
"예, 지금 출근하는 길입니다."
 
아침마다 아들집으로 출근하시는 할아버지. 윗층 할아버지는 아들 집에 와서 공무원인 아들과 며느리의 5살 아이를 봐주신다.아침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후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아들내외가 퇴근해서 올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아이를 돌보신다. 그러다 며느리나
아들이 퇴근해서 오면 그제서야 할아버지도 할머니와 당신들 집으로 퇴근하신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이면 다시 아들 집에 오셔서 자는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고틈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부지런히 당신 개인 일들을 보신다. 그러다 오후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저녁을 해먹이고 데리고 놀다가 아들내외가 퇴근해서 오면 또 당신들 집으로 돌아가신다.
그러기를 벌써 삼 년을 해오고 계신 윗층 할아버지.
3년 전 엘리베이터에서 할아버지를 처음 뵈었을 때 할아버지는 심하게 떼를 쓰며 우는 아이를 업어 달래가면서 어린이집에 데리고 가셨다.할아버지 뒤에서 할머니는 난감한 얼굴로 따라가셨고. 한밤중에도 쿵쿵거리며 뛰어다니고 새벽에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우는 아이.간혹 1층 현관에서 마주치면 부끄러워 아빠 뒤로 숨는 아이.
다른 집 아이들과는 다르게 윗층 아이는 유독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많이 받는거 같다. 내가 처음 아이를 봤을 때도 심하게 보채며 우는 아이를 달래가며 업고 어린이집에 데려가는 사람도 할머니가 아닌 할아버지였고 가끔씩 아이를 업고 나와 아파트 주위를 서성이며 아이를 재우는 분도 할아버지였다. 보통의 경우는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아이를 돌보는데 윗층 아이는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주로 아이를 돌보신다.할머니는 그저 뒤에서 별말 없이 따라다니시고 유독 울음이 많은 아이를 얼르고 달래는 건 늘상 할아버지 몫이었다.
 
"할아버지, 오늘 출근 복장이 아주 캐주얼 하신데요?"
"그래요?"
"예,청바지가 아주 잘 어울리세요.할아부지가 청바지입으시는 거 흔한 일 아니거든요."
"왜요? 많이들 입지않나? 이게 아주 편해요.어딜 가든 좋고 행사만 아니믄 어디서든 다 입어도 흉이 안되니까."
"올해 할아부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멫이나 되 보여요?"
"육 십 아홉?"
"에~~(할아버지 좋으신가보다.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진짜아?"
"예, 진짜여."
"일흔 셋"
"우와, 전혀 그렇게 안보이세요."
"하하, 진짜요?"
"예,진짜지요.
할아버지는 진짜 영~하세요.
할아부지처럼 이렇게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분은 처음 뵈었어요."
"하하, 증말루요?"
"예에 증말루요오 ~~
할아부지들 청바지 잘 안 입으시는데."
"왜요? 많이 입고들 다녀요."
"그래요?저는 처음 봤어요."
"이게 아주 편해요. 이거 입고는 서울이고 어디고 다 가도 되고 뭐 형식차려야되는 곳만 빼믄 다 입고 가도 되니까~
더러움도 들타고 아주 편해요.
내가 직장다니면서 몣 십 년을 넥타이 매고 다니다 퇴직하고 그거 풀르고 나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드만요."
"하하 그러셨어요?"
"퇴직하고 나는 넥타이로 목 안 쫄라매니 그르케 좋드만. 친구도 만나고 산에도 가고 놀러도 댕기고."
"예에~~~할아부지 산 좋아하시는구나아."
"엄청 좋 아하죠. 안가본 산이 없으니까.
넥타이 풀르고 한동안 실컷 돌아댕겼는데 아들이 겔혼하고 손주를 앵겨주니까 이거 또 꼼짝을 못하네."
"그래도 아드님네는 좋으시겠어요. 엄마랑 아부지가 자식을 키워주시니 얼마나 좋아요?"
"좋다마다요. 요즘 우리 같은 에미 애비찾기 힘들어요.
내가 친구도 엄청 좋아하는데 손주 키워주면서 꼼짝을 못하니까 친구들이 왜 그렇게 사냐고 해요."
"그러시겠어요."
"손주니까, 내 새끼니까 봐달라니까 보는거지. 아휴 이거 보통 힘든게 아니거든.
내 새끼 키울땐 돈 벌러나가느라 힘든거 몰랐는데 애들 키우는거 이거 진짜 보통 일 아니에요.
집사람이 늙어서 여기저기 죄다 아프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내 알겠더라고요."
"그니까요. 할아버지도 조심하셔야해요. 할아버지도 어린이집 갈 때 손주 늘 업고 데려다주시던데요."
"업고 데려다주지 않으면 안간다고 울고 불고 하니까 할 수 없이 업고 갈 수 밖에."
"허리 아프세요. 걸어서 가게 하셔야죠."
"그럼 좋은데 아침에 지에미랑 떨어질때 울고 불고 하는게 안스러워서. 그게 또 그래요."
"예. 그러시죠. 아침에 아들집에 오셔서 저녁에 몇 시에 할아버지 집으로 가시는 거예요?"
"첨에 애들이 봐달라고 할 때는 아침 6시에 와서 저녁 일고 여덟시에는 가는거로 했는데.
그게 잘 안돼요. 아들이랑 며느리가 공무원인데 늦게 퇴근해서 이거저거 하다보믄 밤 12시나 되야 집에 가지요."
"아구 힘드시겠어요."
"내 새끼 보는거니까 힘들어도 좋아서 하는데 친구들 못 만나고 내가 여행 좋아하는데 여행을 자주 못가니까 그게 좀 힘들지."
"예, 그러시겠어요.
저번에 보니까 재활용도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하시던데. 힘드신데 아들 며느리 시키지죠."
"대부분 아들 며느리가 하는데 가끔가다 늦게 오면 우리가 하죠. 애들은 두라고 하는데 벌겨놓은걸 또 한 주 내깔겨 두는 것도 그렇고 해서 우리가 치우는거지.
애만 보는게 아니어서 그게 좀 힘들지.
 
에구 할마씨들 처럼 내가 수다가 길어졌네.손주 오기 전에 친구들하고 산에 후딱 갔다오기로 했는데.
담에 또 봐요. 이쁜 선생님."
청년할아버지가 청바지를 입고 차에 오르신다.설레는 봄바람타고 친구들 만나 봄산에 가신단다.
안전산행하세요~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할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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