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목에 걸리셨다고 식사를 다 못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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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목에 걸리셨다고 식사를 다 못하셨어요."
  • 김인자
  • 승인 2018.08.2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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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신통방통 소화제
 
"이거 엄니가 만들었어?"
"응, 내가 만들었어."
"우와 울 엄니 잘 만드셨네. 근데 뭐 만드신 거여요 엄니?"
"편지 쓰는거."
"편지 쓰는거? 이거 카드 아닌가? 근데 엄니 카드안에 글씨가 없네?"
"원래 그런거야."
"으응, 원래 그런거야?"
"응, 첨부터 글씨는 없었어. 근데 겉에 빨대는 있었는데 그건 없어졌어."
"빨대가 있었는데 없어졌어?"
"응, 원래는 있었는데 없어졌어."
"엄니가 갖고 오다가 잃어버렸어?"
"아니, 거기서 없어졌어."
"거기서 없어졌어? 거기가 어딘데?"
"내가 아침마다 가는데."
"엄니 아침마다 어디 가시는데?" "핵교가지. 늙으이들이 대니는 핵교. 선생님도 있고 간호사 선생님도 있고. 거기서 선생님이랑 이걸 만들어서 장에다 넣어 뒀었는데 집에 올때 보니까 없어졌어."
"아, 그랬구나."
"응, 근데 빨대가 필요해?"
"아니, 엄니가 원래 빨대가 있었다고 하니까 없어서 물어본거지.
근데 엄니 이 조그마한 컵 속에 뭘 이렇게 잔뜩 많이 넣었어?"
"민정이하고 민지하고 너하고 모두 같이 노나먹으라고 내가 색깔별로 골고루 하나씩 가져왔지."
"가져올라믄 많이 좀 가져오지. 이걸 누구 입에 부쳐? 간에 기별도 안가겠네, 엄니."
"에그, 그런 말 하는거 아니다.선생님이 모두 다 똑같이 나눠줬니라. 그러지 않아도 서로 많이 갖겠다고 싸울까봐 선생님이 아예 공평하게 나눠줬어. 맛만 보믄 되지. 뭘 그걸 배불리 먹을라고 허냐."
"아, 그르셨구나."
"여럿이 나눠 먹는건 욕심 부리고 그럼 못쓴다."
"예, 엄니."
"많이 먹어서 맛이냐? 서로 같이 나눠 먹는 재미지. 내 돈주고 사먹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남들 먹을때 맥놓고 있는 것도 보기 그러니 자기가 먹을 만치만 가져오면 되는 것이지."
 
울 엄니가 사랑터에서 미술치료 시간에 만든 예쁜 카드를 집에 가지고 오셨다.
"너하나 꺼내 먹고 민정이랑 민지 하나씩 주고 그럼 되겠다."
울 심계옥엄니는 당신이 종이카드에 그려서 색칠한 과일이 진짜 과일인 줄 아신다.
"너는 얼음은 먹지마라 설사할라. 얼음은 내가 먹을테니."
"엄니는 찬거 드셔도 되고?"
"그럼, 나는 암꺼나 다 잘 먹는다."
에고, 엄니가 암꺼나 다 잘 드신다고? 정말 그랬음 내가 걱정이 없겠네 엄니...

 
"여보세요~사랑터예요."
"예, 안녕하세요 선생님."
울 심계옥엄니가 다니시는 치매주간보호센터인 사랑터에서 또 전화가 왔다.
늘 그렇듯 사랑터에서 전화가 오면 난 가슴부터 철렁 내려 앉는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사랑터에서는 여간한 일이 아니면 보호자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 사랑터에서 오는 모든 전화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단 우리집의 경우엔 사랑터에서 오는 전화는 우리 심계옥엄니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다.
 
"선생님, 울엄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자주 있는 일인데도 이런건 훈련이 안되는 것 같다. 사랑터선생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때 까지 기다리는 그 수분이 몇 시간이 지나가는 것처럼 바짝 긴장이 된다.
"아니, 별일은 아니고요?"
간호사선생님이 별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할머니들에게 별일 아닌건 없다. 내 경험상. 분명 무슨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도저히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서 내가 먼저 간호사 선생님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선생님 혹시 저희 엄니가 쓰러지셨나요? 하고 여쭤보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핸드폰을 쥐고 있는 오른손 손등의 힘줄이 거칠게 툭툭 튀어 나왔다.
"쓰러지신건 아니신데?"
"그럼요? 선생님 울 엄니에게 무슨 일이?"
"예, 심계옥 어르신이 점심때 식사를 하시다가 음식이 목에 걸리셨다고 식사를 다 못하셨어요."
"목에 걸리셔서요?"
"예, 어르신들 식사하시다 목에 걸려서 식사 중단하시는 분들 많으세요.
그래서 저희도 어르신들 드시는 음식은 신경을 많이 쓰는데?"
"예, 선생님 지금 울 엄니는 어떠신가요?"
"예, 지금은 괜찮으세요.
저희가 바로 소화제를 드렸거든요.
소화제 드시고 괜찮아지셨어요."
"예, 감사합니다 선생님."
식사하시다가 또 목에 걸리셨구나.
"어르신 식사 못하셨다고 말씀드리려고 전화드렸어요. 저희도 어르신 식사하실 때마다 좀 더 신경 많이 써서 살펴드릴께요 보호자님께서도 집에서도 각별히 신경써주세요."
"예,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들 식사하시다가 목에 걸리면 정말 위험하거든요."
"예, 선생님."
 
사랑터 간호사선생님께 전화 받은 그날 나는 여느때와 똑같이 엄니께 오늘 점심은 무슨 반찬을 해서 드셨냐 여쭈었다.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늘은 내가 특별한 걸 먹었다."
"특별한 거? 특별한 거 뭘 드셨는데 엄니?"
분명 간호사선생님이 엄니가 식사도중에 음식물이 목에 걸려서 식사를 못 하셨다고 했는데 엄니는 특별한 걸 드셨다 한다. 엄니가 내가 걱정할까봐 뭐 맛난걸 드셨다고 말씀하시려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그거 참~ 신통방통하기도 하지. 내 생전에 그런걸 다 먹어보고."
"뭘 드셨는데 엄니? 그렇게 맛있었어요?"
"그러게 달찌근허니 맛도 있고 묘하더라."
"묘하다고요? 그게 뭔데 엄니?"
"나야 모르지. 내가 아까 점심때 밥을 먹다가 목구녘에 걸렸는데 간호사선생님이 그걸 보구는 재까닥 요만한 병에 든걸 주더만. 그걸 먹으니까 깜쪽 같이 내려갔어. 멕힌 하수구 펑 뚫리듯 시원하게 쑤욱.
집에 그거 한 병 있음 좋겠드만. 내가 간호사 선생님한테 이름 좀 종이에 적어 달라고 했는데 그 종이랑 빨대가 없어졌다.
내가 뭘 먹을 때마다 목구녘에 자꾸만 걸려서 이러다 죽나부다 했는데 새 약이 있으니 나는 이제 살았다."
 
어서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울 심계옥엄니를 살려준 신통방통약이 무엇인지 간호사 선생님에게 여쭤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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