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판단, 사실과 다를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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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판단, 사실과 다를 지도 모릅니다"
  • 최원영
  • 승인 2018.09.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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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판단하기 전에 묻기


 


풍경 #94. 묻기가 먼저입니다!

 

  ‘경청은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고 합니다. 작든 크든 갈등은 서로 소통이 부족해서 일어나곤 합니다. 한 예로, 상대방의 행위를 자기 나름대로 추측하고 판단해서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때 더 심화됩니다. 그래서 건강한 소통을 위해서는 판단을 내리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합니다.

 
저녁에 자주 찾았던 동네 호프집에 어쩐 일인지 중년남자가 대낮에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바텐더는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남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찰스, 자네, 딸꾹질 멈추는 법 알고 있어?”

  찰스는 단골손님인 그가 딸꾹질이 그치지 않아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하고는 갑자기 사내의 등짝을 세게 후려쳤습니다. 깜짝 놀라면 딸꾹질이 멈춘다는 민간요법이 생각난 모양입니다. 그러나 남자는 무척 당황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내가 아니고, 차 안에 있는 아내가 그러는데….”

  찰스와 중년남자 모두 당황했을 겁니다. 이런 경험이 찰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저도 같았습니다. 누군가 제 인사를 받지 않으면 속으로 ‘저 사람, 무척 교만하고 버릇이 없네.’ 라고 단정 지었고, 연락도 없이 약속시간에 늦는 친구를 보면서는 ‘이 친구,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판단했었습니다.


  “왜, 인사를 받지 않았니?” “왜 이렇게 늦은 거야?”라고 물으면 상대방이 설명을 할 텐데도,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상황을 짐작하고, 짐작한 그것을 그의 인격이라고 규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강한 소통을 방해했던 겁니다.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불신이 생기고, 불신은 서로의 우정과 신뢰에 금이 가게 합니다.

  그래서 물어야 합니다. 뻔하다고 여긴 것조차 온화한 말투로 물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쓸데없는 불신의 벽이 생기지 않습니다.  

 

   《리더의 칼》이라는 책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던 공자 역시도 묻지 않아서 오해를 한 사례가 나옵니다.

  초나라 왕이 공자에게 관직을 내렸고, 공자도 기꺼이 응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제자들을 거느린 공자 일행이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의 벌판을 지날 때였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초나라에 오면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받을까 두려워하던 초나라 대신들이 사람을 보내 공자 일행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공자 일행은 일주일 째 한 끼도 먹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배고픔은 고사하고 스승인 공자가 일주일째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던 제자 안회가 마을로 내려가 쌀을 조금 구해왔습니다. 밥이 거의 다 되었을 때였습니다. 공자는 초조한 눈길로 제자 안회와 밥솥을 번갈아 훔쳐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회가 솥뚜껑을 열더니 밥을 한주먹 쥐더니 자기 입속에 넣는 게 아닌가요? 그걸 본 공자는 씁쓸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군자가 되라고 가르쳤는데 저토록 착한 안회마저도 굶주림에 굴복해버렸으니 말입니다.

  드디어 밥이 다 되었고, 안회는 공손히 공자 앞에 밥을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몸을 일으키더니 가시 돋친 말을 했습니다.

 

  “아까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을 뵈었는데, 아버님이 말씀하시길, 꼭 깨끗한 밥으로 제를 올려야지 누가 먹던 밥을 써서는 안 된다고 하시더군.”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간파한 안회는 솔직하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까 밥이 거의 다 되어갈 때 나무 재가 들어간 것을 발견하고는, 지금 상황에서 그대로 내버릴 수는 없어 제가 그걸 집어먹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제자를 무턱대고 의심부터 한 일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눈으로 사물을 봐야 하니 당연히 눈을 믿어야겠지만, 그 눈도 다 믿을 바는 못 되는 구나. 게다가 또 마음으로 일을 생각해야 하니 당연히 마음도 믿어야겠지만, 그 마음 역시 다 믿을 바는 못 되는 구나. 아,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이 정말 쉽지가 않구나.”

 

  우리는 언제나 남들을 판단하며 삽니다. 쟤는 착하고, 쟤는 멍청하고, 쟤는 똑똑하고, 쟤는 어리석고…. 그러나 우리의 이런 판단이 사실과는 다를 지도 모릅니다. 이 판단은 주관적인 판단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소통의 가장 큰 장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젠 물어보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너’와 따뜻한 관계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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