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고립된 섬'을 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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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고립된 섬'을 살려라!
  • 이병기
  • 승인 2010.11.14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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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가정동 루원시티 제척지역, 인적 끊기고 빈집 많아 '주민 불안'


사람들이 빠져나간 건물 입구에 붉은색 페인트로 쓰인 글씨는 동네를 더욱 스산하게 한다.

취재: 이병기 기자

평일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대낮인데도 동네에 인적이라곤 하교시간에 맞춰 가끔씩 지나가는 아이들이 전부다. 적막함 속에 낙엽 구르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린다. 종종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 소리는 오싹함을 더한다.

골목 한편에 늘어선 건물 입구에는 붉은색 페인트로 '공가'와 'X' 표시가 써 있다. 사람이 빠져나간 빌라는 깨진 유리창이 흉측한 몰골을 드러낸다. 동네 안쪽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까지 들어가기 위해선 이 '유령도시'를 지나야 한다.

인천 서구 봉수초등학교 주변에는 현재 가정동 루원시티 도시재생사업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철마산 바로 아래 위치한 한성아파트 일대와 하나아파트, 뉴서울아파트는 도시재생사업 제척(除斥)으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세 곳의 아파트는 마치 도심 속에 '고립된 섬'과 같은 형국이다. 앞쪽으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텅 빈 건물들이, 뒷편으로는 철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특히 한성아파트 일대는 그 현상이 더욱 심하다. 교회나 중국집은 물론 아파트단지 내 슈퍼마켓도 모두 사람이 떠나간 빈 건물뿐이다. 이곳 주민들은 "저녁 반찬으로 두부나 콩나물을 사려고 해도 언덕을 넘어 가든지, 차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제척된 아파트를 제외하면 동네 전체가 죽어 있다.


낮에도 이럴진데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주민들의 불안감은 증폭된다. 더욱이 겨울을 앞두고 더욱 짧아지는 해는 동네를 일찍 잠들게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동네 입구에 위치한 봉수치안센터 경찰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사건이나 사고 등 범죄가 없는 편이다"라고 말한다.

봉수치안센터의 경우 주간에 근무자 3~4명과 순찰차 1대가 치안을 담당한다. 밤에도 인력은 비슷하지만, 자율방범대 6명이 추가로 순찰에 나선다.

또 구청에서 지원하는 봉사단 10명과 루원시티 자체 경비원 40명이 방범활동에 나선다. 하지만 이들이 도시재생사업 전 지역을 감당하다 보니 구석구석을 일일이 돌아보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위쪽 붉은색 네모가 한성아파트 주변, 아래가 뉴서울아파트와 하나아파트

"범죄도 없고, 사람들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면서 기자에게 확언하듯 말하던 한 경찰이 지나가는 20대 여성에게 묻는다.

"아가씨, 동네 무서워요?"

지나가던 여성은 "당연히 무섭죠"라며 "새벽에 나올 때 빈집 근처에서 술취한 노숙자들을 봤어요"라고 말한다. 무안해진 경찰들은 "범죄는 없지만, 무섭긴 무섭다"라고 말한다.

경찰은 "사람이 나간 집들은 문을 잠궜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주변을 쉽게 둘러봐도 빈집에 들어가기는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치안센터 내부 화이트보드에도 '고등학생 담배피거나 종이에 불 붙여, 순찰 강화'란 지시가 써 있다.

실제로도 지난 9월 초, 사람이 떠난 반지하 단칸방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날이 점점 더 추워지면 노숙자나 불청객에 의해 대형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아파트 단지 내 슈퍼마저 얼마 전 문을 닫았다.

한성아파트 주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작년에 성폭행 사건이 한 건 발생했고, 김길태 사건 이후부터 경찰도 민감해진 것 같다"면서 "신고된 사건은 없었지만, 컴컴한 곳에서 누가 쫓아와 도망치는 등 미수로 그친 사건은 몇 번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밤에는 남자 혼자 다니는 것도 무섭다"면서 "서구청에서 동네 안쪽까지 들어오는 셔틀버스를 준비했다고 들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 동네 곳곳에는 '도움을 요청하면 해드린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또 뉴서울, 하나아파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청아아파트와 태화미성2차 아파트를 지나야 하는데, 최근 들어 각 동마다 경비원들이 한 명씩 배치됐다. 

주민들은 "미수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방범 활동을 강화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인천시는 최대한 빨리 가정동 루원시티 사업계획을 마무리짓고 추진에 들어간다지만, '고립된 주민'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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