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은 날아다니고 … "아비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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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은 날아다니고 … "아비규환"
  • 이병기
  • 승인 2010.11.23 2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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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연평도 포격 탈출 주민 인터뷰 …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23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 북한이 발사한 포탄 수십발이 떨어져 연평도 곳곳이 불타고 있다.
(사진=연평도 여행객 제공)


취재: 이병기·이혜정 기자

간만에 연평도에서 해병대에 복무하는 아들을 만났다. 남편과 함께 면회를 신청하자 아들은 휴가를 내고 나왔다. 세 가족은 행복한 한때를 보냈지만, 3일 후 벌어질 '아비규환'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바로 인천으로 출발하려 했지만, 배가 뜨지 않아 3일 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23일 오후 2시 반께, 오랜 기다림 끝에 연안부두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민박집을 나섰다.

승합차를 타기 위해 길가로 나선 순간 대포소리가 났다. 남편과 나는 무작정 민가가 있는 쪽으로 뛰었다. 사방에서 유리가 깨지고 집에선 불이 났다. 땅이 흔들리고 천둥소리가 이어졌다. 아수라장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벗겨진 신발을 신을 새도 없었다. 나는 맨발로 남편과 함께 다시 차 쪽으로 달려갔다. 바로 그때 머리 위로 포탄이 지나갔다. 우리는 차 밑으로 숨어들었다. 생지옥에 온 듯했다. 공포가 밀려왔다.

정신이 없어 맨발로 도망쳤다는 하미순씨가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방공호로 들어가면 다 죽어!"

누군가 외쳤다. 우리는 차 뒷쪽에 위치한 방공호 대신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선착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배는 출발한 상태. 우리는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두 팔을 흔들면서 다시 돌아오라고 외쳤다. 배가 떠나고 섬에 남겨지게 될 일을 생각하니 공포는 극에 달했다.

다행히 배가 머리를 돌렸고 나와 남편은 무사히 배를 탈 수 있었다. 

하미순씨와 우두재씨는 연평도에서 군 복무 중인 아들을 만나러 갔다가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경험을 했다. 

23일 연평도 포격 현장에서 탈출한 시민들이 저녁 5시께 연안부두에 도착했다. 배 위에서 보이는 그들의 표정은 언뜻 봐선 무덤덤해 보였다.

배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자 취재진이 몰렸다. 그냥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몇몇은 취재진 인터뷰에 당시 현장을 설명했다. 인터뷰에서 상황을 떠올린 사람들은 그 동안 쌓아뒀던 공포심을 풀었다.

"12시쯤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연평도로 들어갔어요. 2시 반이 조금 못돼 부두에 내렸는데, 잠시 후 갑자기 5발 정도가 하늘에 뜨더니 불빛이 계속 났어요. 너무 놀랐죠. 처음엔 사격훈련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옆집에서 날아온 파편으로 우리 집 벽과 바닥이 무너졌어요. 문짝도 나가구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는데, 불기둥이 10개 이상 솟았어요. 그때야 훈련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너무 무서웠어요."

임기혁(51)씨는 당시 순간을 생각하며 몸을 떨었다.

"송신소가 폭탄을 맞아서 집전화도, 휴대폰도 먹통이 됐어요. 우왕좌왕했죠. 오래 살았던 주민들은 바로 대피했는데, 3년밖에 안 된 우리는 어떻게 할지 몰랐어요. 배를 타야 한다고 생각했죠. 선착장에 갔을 땐 배가 떠난 상태였어요. 나처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울고불며 돌려달라고 하자 다시 배가 돌아왔죠. 3시20분쯤 다 같이 출발했어요." 
 
장은혜(31)씨의 얼굴은 창백했다. 배에서 내렸을 때까지도 두 아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마중나온 어머니를 본 이후에야 손에서 힘을 풀었다. 얼굴엔 긴장이 가득했고, 아직까지도 정신이 혼미한 듯 취재진 질문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신성희(51)씨는 여객터널 앞에서 그물손질을 하고 있었다.

신씨는 "처음엔 어제 사격한다고 방송이 있어서 연습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폭탄이 너무 많이 터져서 북한의 공격이라고 직감했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몸이라도 나와야 할텐데' 하는 생각에 집에 전화해 보니 아내에게 통화가 안 됐다"면서 "집으로 가 보니 아내와 3명이 나와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섬 전체가 시꺼멓게 변하자 정신도 없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면서 "여객선을 타고 나오는데도 불꽃이 팡팡 터졌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배가 떠났을 때 동료들하고 통화했는데, 개인 어선을 타고 나온다고 했다"면서 "그 뒤로 전화가 안 된다"고 걱정했다. 그는 "말도 못할 정도로 기가 막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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