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주민, 폭탄에 떨고 군청에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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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주민, 폭탄에 떨고 군청에 울고…
  • 이병기
  • 승인 2010.11.2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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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 시설 너무 열악 … "향후 주민대책도 없어 정말 서럽다"


옹진군청을 방문한 강기선(54, 왼쪽)씨가 취재진과의 인터뷰 중 
설움을 참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취재: 이병기·이혜정 기자

"어제부터 지금까지 굶은 거야. 무슨 해경에서 밥을 줘. 한 두 사람이야? 이게 뭐냐고. 6시간 배 타고 왔는데 찜질방에 내려놓고 아무 대책도 없어. 지금부터 죽으라고 하는 것밖에 더 되냐고. 우린 어디 갈 데도 없어. 이제 무서워서 살지도 못하겠어." - 옹진군청에서 이순례(62)씨

"전기가 안 들어와서 손전등으로 불을 비췄어요. 아빠가 스티로폼을 구해와서 바닥에 깔고 잤어요. 그래도 추웠어요. 이게 말로만 듣던 전쟁이구나 했어요. 무서워요." - 김규진(14, 연평중1) (이하 인천해양경찰 전용부두 도착 당시)

"라면 한 개 먹었어요. 배가 고팠는데 먹을 것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왔죠. 얇은 이불 하나 덮고 잤는데 당연히 추웠죠." - 이강훈(12)

24일 연평도를 탈출한 주민들의 원성은 거셌다.

전날 극한의 공포를 경험한 주민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대비소에서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오전 8시, 해양경찰 경비정을 타고 6시간 만에 인천에 도착했지만 '찜질방에 가 있어라'는 옹진군청의 무책임한 처사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갈 곳도, 먹을 것도 없이 달랑 몸만 빠져나온 이들은 옹진군청의 안이한 대비책에 다시 한 번 눈물을 훔쳤다.

인천 해양경찰 전용부두에 도착한 직후 만난 한 주민은 "초등학교에 있는 대피소에서 잤는데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서 "컵라면을 먹으려고 해도 물이 부족할 뿐더러 끓일 방법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권영희(54)씨는 연평 중·고등학교 대피소에 있었는데, 대피소 앞 뒤로 불이 난 상태여서 연기가 자욱했다"면서 "대피소 안까지 연기가 들어와 목이 아플 정도였으며 질식할 뻔했다"라고 말했다.

권씨는 "대피소에서 빵과 음료를 나눠줘서 끼니를 때우기는 했지만, 물이 없어 마시지 못했다"면서 "배는 고프고 무섭고 춥고, 그 공포감은 정말 '이러다가 죽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인천에 도착한 대부분의 주민들이 배고픔과 추위에 놓인 상태였다.

이날 오전 연평도를 방문했던 이재병 인천시의회 의원은 "대피소는 주민들을 위한 방어시설로 볼 수 없었다"면서 "네모난 콘크리트 상자에 불과했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주민들이 위험한 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에 대피소는 1주일 이상 거주할 수 있는 물품들을 갖춰야 한다"면서 "현대식 시설로 다시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세끼를 아무것도 못 드신 할아버지도 있었다"라며 "이제서야 구호물품이 도착해 남아 있는 주민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옹진군청 재난상황실 관계자는 "대피소 안에는 물과 양초, 손전등이 비치돼 있다. 비상식량은 군에 있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더 이상 대피소 관련 질문에 대한 답을 꺼렸다.

현재 연평도에 위치한 대피소 총 19곳 중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은 10곳으로 절반이 넘었다. 대피소는 대개 10평 규모. 20평이 4곳, 30평 2곳이다.

어떤 대피소는 주민들이 들어가기도 비좁은 공간에 학교물품이나 개인 물건이 쌓여 있어 비상 시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2곳에 대해서는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리 교회 근처 대피소는 내부철근이 보일 정도로 노후돼 있었으며, 구 충민회관 내 대피소는 흙에 밀려 무너진 곳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옹진군청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날 1시께 인천 해양경찰 전용부두에 도착한 340여명의 주민들 중 일부가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옹진군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옹진군청 1층에서 만난 이정숙(56)씨는 "마을엔 전기도 없고 수돗물도 없다"면서 "언제 들어갈지 막막하다"라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우린 인천에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언제까지 찜질방에 있으라는 거냐"며 "군청은 아무런 대책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재덕 군 주민생활지원실장은 "아직 숙소는 따로 잡지 않았고, 찜질방에 자리를 만들어 놨다"면서 "향후 대책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포탄에 명중한 주택 옥상 (이재병 시의원 제공)


파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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